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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카 Stica Sep 23. 2023

72일차, 성인의 친구 만들기

하지만 거절을 당하고 싶지는 않아

어느 식당의 테라스, 앞 테이블에 다소간 이질적인 조합의 남녀가 앉아 있다. 남자는 30대 초중반으로 보이고 여자는 그보다 열 살쯤 많아 보인다. 남자는 검은색 뿔테를 쓰고 검은색 폴로셔츠를 입은 단정한 모습인데 반해, 여자는 커다란 꽃들이 프린트된 쉬폰 블라우스를 입고 그 위에 기다란 검은색 스카프를 둘렀다. 새빨간 꽃송이 모양의 귀걸이가 잘 어울린다. 서로 인간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는 눈빛이지만 로맨스가 흐르지는 않는다. 깍듯이 존대하며 각자가 소속한 조직에 관하여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볼 때 직장 동료도 아니다. 


두 사람은 무슨 관계일까. 대화의 내용이 잘 들리지는 않지만 서로 영감을 주는 관계가 아닐까, 라고 내 멋대로 상상했다. 속해 있는 환경이 분명히 다르지만, 단 둘이 만나 맥주와 피자를 놓고 저녁식사를 할 만큼 상대방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사이. 부러웠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어.' 남편에게 말했다. 

'만나, 말로만 하지 말고. 우리 회사 직원들이라도 만나 보던가.' 

물론 내가 그들을 평소에 궁금해하기는 했지만 그들은 내게 '새로운 사람들'은 아니다. 나와 모종의 관계가 선행된 사람들이고, 그 관계는 내가 원하는 것보다 더 공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제까지 내게 주어진 단편적인 정보를 종합해 볼 때, 생각과 감정의 결이 나와 비슷하지는 않겠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사람이란 실제 만나봐야 아는 것이고 그들이 굳이 나를 만나고 싶어할지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확률적으로 친구가 되는데 성공할 가능성이 담보되지 않은 사람들을 시간과 정신력을 들여 만나보는 것이 (에너지가 매우 적은 나라는 개인에게) 필요한가, 이로운가에 대해 남편과 이야기했다. 남편은 친구가 되지 않아도 영감을 주고 받을 수는 있다, 고 했다. 맞는 말이지. 생각해보면 문제는 내가 사람을 대하는 일 자체에 굉장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 만나면 친구가 되는 것이 '성공'이라는 비현실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건가. 


'멕시칸 맥앤치즈'라는 식당의 시그니처 요리가 나왔다. 베이컨과 치즈를 넣어 오븐에 구운 맥앤치즈 위에 잘게 썬 토마토, 할라피뇨와 고수가 올라가 아주 맛이 좋다. 마카로니 두어개를 오물거리며 중얼거렸다. '요가원 원장님은 사십대 중반쯤 된 것 같은데, 이십년 동안 요가를 했다는 걸 보면 이십대 중반부터 요가를 한 거겠지. 어쩌다 그렇게 요가에 전념하게 되었을 지가 궁금해. 그 전에는 뭘 하던 사람이었을까. 어떤 마음으로 요가를 그렇게까지 좋아하게 됐을까.' 

'물어봐, 매일같이 얼굴을 보는데 그런것도 못 물어봐?' 


주말에도 쉬지 않고 수업을 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한가한 질문을 해서 시간을 빼앗아도 되나? 게다가 요가원 원장님은 유명한 사람인 것 같아보인다. 현역 요가 강사들도 지방도시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올라와 그의 수업을 듣고, 어떤 사람들은 요가매트에 그의 사인을 받기도 한다. 그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은 이미 차고 넘치지 않을까? 그 뿐만이 아니다. 타이밍도 어렵다. 지난 주 금요일, 날씨가 너무 추워 요가원에 들어서면서 '이제 너무 춥네요' 했더니 '큰일이네, 추워지면 더 나오기 싫어질텐데' 라고 하셔서 '그래도 나와야지요' 만으로 단답했을 때, 사실 나는 10월 초 위빳사나 명상 워크숍 때문에 열흘 정도 못 나온다고 좀 더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11월에는 치앙마이에서, 12월과 1월에는 포르투갈에서 지내다 올 것이므로 2월에나 재등록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내가 나오지 않는 것이 추운 날씨 때문이 아님을 미리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일이분 더 내 이야기를 듣고 싶을 만큼 내 일정 따위에 관심이 있지는 않을 것이라 단정했다. 


남편은 매일 가는 요가원에서 다른 요가 수련생들을 만나 밥 먹고 차 마실 수는 있지 않냐, 고도 했다. 님말 맞말. 역시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 매트 옆을 부산스럽게 오다니기 싫어, 요가원에 구비되어 있는 각종 물품 (스트랩, 요가블럭, 매트워시 등)을 별도로 구매해 들고 다니는 소심한 인간이다. 


며칠 전 다른 수련생과 요가와 관계없는 대화를 한두마디 나누긴 했었는데... 그녀가 먼저 내게 요가원 맞은 편 빵집을 가본 적이 있냐고 물어봐 준 것이다. 나는 몹시 반가워 그곳 빵 모두 맛있다고, 특히 사과파이가 아주 맛이 좋다고 신나서 떠들었다. 그러나 말을 마쳤을 때 우리는 이미 건물을 나와 있었고, 내 눈앞에는 자물쇠로 매어 둔 자전거가 있었으므로 나는 그녀를 보내주어야 했다. 지금 같이 가 보실래요? 라고 제안했어야 했을까.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계속 생각했다. 그녀는 아마 (대부분의 성인은 백수가 아니므로) 백수가 아닐 것이고 출근을 해야할 것이다, 라는 강한 추측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건네지 못한 말이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시간과 에너지가 아깝다거나, 남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라기보다는 그저 거절을 당하기 싫은 마음이었음을. 내게 관심이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거나, 나를 귀찮아하는 기색을 느끼기 두려웠다는 것을. 


거절당하면 어떻게 되는데? 거절값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돈이 안 든다. 거절당한 사람, 이라는 표식이 새겨지는 것도 아니다. 요가를 수련할 사지멀쩡한 몸에 흠집 하나 나지 않을 것이다. 삼십오살쯤 살았으면 마음에 방수포를 덮어두는 것보다 이따금씩 먼지를 털어내며 사는 것이 보다 효율적인 방법임을 터득할 때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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