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왠지 아양을 떨고 싶구나
어제 남편이 거실에서 잠들었다가 뒤늦게 안방으로 들어왔나보다. 평소라면 침대 모서리에 앉아 나를 지켜보고 있을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거실로 나오니 예상대로 소파 등받이에 몸을 붙이고 기다랗게 누워있다. 옷방에서 요가 자켓을 꺼내 요가복 위에 입고 나오려는데, 어느샌가 소리도 없이 쫓아온 녀석이 발 밑에 누워버린다. 그대로 철푸덕 앉아 한참을 쓰다듬고 있다가, 이러려고 옷방에 들어온 건 아닌데 싶어 겨우 몸을 일으켜 돌아섰다.
컴퓨터 앞에 앉으니 회색 털뭉치가 책상 위로 따라올라와 드러눕는다. 자, 이렇게 하면 쓰다듬기가 딱 좋지? 어서 쓰다듬어 봐. 맨날 이러시는게 아닌데, 오늘따라 한참을 그러고 있다. 은빛이 도는 턱과 정수리를 문질문질하니 지르르- 지르르- 하는 울림이 퍼진다. 이래서 오늘 글은 언제 쓰나.
오늘은 신라면에 대해 쓰려고 했는데. 자연스럽게 네가 오늘의 주제가 되겠구나. 커버 이미지로 쓸 사진을 찍기 시작하니 찰칵하는 소리가 거슬리는지 곧 일어나 가 버린다.
녀석의 이름은 후이(辉, Hui), 무려 빛날 휘 자를 쓴다. 중국에서 태어나 입양되었으므로 중국 고양이로서의 정체성을 존중해 중국 이름을 지어줬다. 후이(辉, Hui)는 중국어로 회색(灰)을 뜻하는 글자와 발음이 동일하다. 쓱 보면 회색일 뿐이지만 털 끝 은빛깔이 오묘해, 중의적 발음과 거창한 의미를 가진 글자를 골라 이름을 지어주었다. 은회색의 고귀한 나의 고양이. 가끔 정색하고 싶을때면 '고양이'를 성씨 삼아 '후이 고양이!'라고도 부른다.
후이는 중국의 어느 동네 펫샵에서 데려왔다. 선천적 기형으로 다리가 짧고(그래서 뭇 인간들에게 '상품' 가치가 높고) 성격이 곰살맞은 친형과 달리, 후이는 소심하고 평범한 고양이였다. 이미 5개월령이 다 되어가는데도 잘 먹지 못해 체구가 작고 말랐었다. 펫샵에서는 브리티시 숏헤어라고 했지만 그냥 봐도 믹스묘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브리티시 숏헤어는 좀 더 눌린 얼굴에 심술맞은 인상이다. (온갖 회색 고양이 품종을 공부해본 결과 후이의 생김새와 울음소리 모두 '샤트룩스'와 제일 가까워 보인다. 이리저리 섞여서 그렇겠지만서도.)
펫샵은 후이가 팔리지 않을 것을 예견하고, 동물 반려인 커뮤니티에 '무료' 입양 광고를 냈다. 1000 CNY (당시 한화로 약 18만원선)을 펫샵에 예치금 명목으로 낸 뒤, 펫샵에서 구매한 반려동물 물품 대금을 예치금에서 차감하는 조건이었다. 펫샵에 따라 다르지만, 그런 조건으로도 데려가는 사람이 없으면 유기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내가 동물을 사고 파는 행위에 얼마간의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친구가 입양 광고를 전달해줬다. 구멍가게나 다름없는 펫샵을 찾아가기 전까지는 본질적으로 매매나 다름없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철창 구석에서 한두발짝 앞으로 나왔다가도 이내 겁에 질려 다시 도망가는 녀석을 보았을 때, 이 녀석이다, 싶었다. 나도 후이도 혈혈단신 외로웠던 것이다.
나 혼자 살기에는 다소 크고 황량했던 집. 사시사철 냉기가 감돌았던 돌바닥. 숨소리가 크게 들리는 고양이가 든 켄넬을 먼저 내려두었다. 펫샵 예치금으로 결제한 저가형 고양이 화장실, 모래, 건사료를 차례로 다 들여오고 나니, 정신이 조금은 아득했던 기억이 난다. 녀석은 주먹이 들어갈까 말까 싶도록 좁은 거실장 선반으로 숨어들어가 밤새 나오지 않았다. 고양이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지. 추울텐데 싶어 선반 틈으로 담요를 넣어줬다. 그 후 이삼일간은 녀석과 숨바꼭질을 했던 것 같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은신처는 거실 화장실 변기 뒤였다.
후이 고양이는 여전히 소심하다. 신장병과 심장병을 고루 가져 병약하지만, 그의 눈은 총기로 가득하고 통통한 뺨으로 올라간 입꼬리는 야무지다. 걸을 때 꼬리가 등쪽으로 수평이 되다시피 휘고, 앞발을 내놓고 앉아있을 때는 늘 한쪽 발만 앞으로 쭉 뻗어둔다. '다른 고양이들은 모르겠고, 나는 이런 고양이다' 하고 선언하는듯 독특한 맵시가 있다고나 할까. 꽤 스토커 기질이 있어서, 나와 같은 공간, 조금 먼 발치서 나를 지켜보기를 좋아한다. 화장실 문을 닫고 볼일을 본 뒤 나올 때면, 문앞을 지키고 있다가 일어나 어디 있었느냐고 고함을 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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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스스로를 가누지 못하는 모든 것에 관심이 없던 때가 있었다. 작고 연약해서 소중한 것들을, 솔직히는 싫어하기도 했다. 폭신한 카스테라 촉감보다는 어떻게 해도 꿈쩍하지 않을 콘크리트의 견고함을 갈망했다. 곧잘 흐물해져버리는 내가 다시 형체를 되찾을 수 있도록 지지해줄 외벽이 필요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나보다도 더 흐물한 털뭉치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은.
암모니아 냄새를 풍기며 고양이 화장실에서 캐낸 대소변 감자의 갯수를 즐겁게 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