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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카 Stica Sep 27. 2023

76일차, 창작을 통한 성취

나를 조각한다는 마음으로

외출 준비를 모두 마치고 문을 나서기 직전, 굳이 서재에 들러 컴퓨터를 켜고 브런치를 확인했다. 지난주에 핸드폰 어플은 지웠기 때문에, 브런치 계정의 업데이트는 아이패드(사이즈가 크다보니 늘 손에 들고 있지는 않다) 또는 컴퓨터를 찾아야 확인할 수 있다. 민트색 작은 동그라미를 발견하면 항상 그렇듯 기쁘다. 아직 약 5분쯤은 더 밍기적거릴 수 있어.


다른 사람의 글 한편을 읽었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쓴 어떤 글을 읽고 응원하고 싶다, 고 생각했었다. 오늘 읽은 글은 지쳐 있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게 기대하는 것보다 결과가 안 나온다고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지독한 자기연민도 아니었고, 분노도, 원망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많이 지친 글이다. 이따금씩 내가 되뇌던 독백들과 완전히 동일한 내용들도 더러 있었는데, 남의 글로 읽자니 낯선 생각들과 감정들이 모래바람처럼 불어왔다. 여느 때와는 달리 패배감이나 미약한 수치심은 담기지 않은 바람결.


치과를 가는 지하철에서, 입속 마취를 하고 누워서, 거즈를 꽉 물고 걸어오는 길, 집에 돌아와 고양이들 점심을 차려주는 일련의 동작들에서 생각했다. 무엇이든 창작을 통해 사회적 의미에서의 성취를 하려면, 그 결과물을 원하는 사람들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 창작물이 제공하는 가치란, 미학적 의미에서의 가치도 당연히 있지만 효율적으로 정보를 전달하여 소비하는 사람의 시간이나 에너지를 절약해준다거나, 그가 실질적 응용을 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돕는 데에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글을 써서 '성공'하려면 1) 전달력이 우수한 실용 정보 컨텐츠이거나 2) 문예적 관점에서 일정한 일관성이 있는 독창성을 가지고 있거나 3) 작가의 개인적 서사에 관심이 생길 만큼 호감 가는 인물로서의 브랜딩이 뒷받침해줄 때, 화두를 던지거나 통찰력을 제공하거나... 하는 등의 방식이 있겠구나, 하고 나름 머릿속으로 정리를 했다.


1)의 경우 내가 특별히 전파하고 싶은 소식이나 정보, 기술이 없는 탓에 도통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그런 의욕이 있었으면 회사를 계속 다녔을 것이다. 2)의 경우 감히 욕심을 내는 것이 부끄럽기는 하지만 도전을 해보고 싶어 소설을 쓰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성공의 확률이 제일 낮은 방안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3)의 경우, 나는 조금도 유명하지 않으므로 당장 성취를 일궈낼 수 있는 방식은 아니다. 내게 '그럴듯한' 면모가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이제 그런 라벨에 기한 기대나 요구에 갇히기는 싫다. 다른 한편으로는 모순적이게도, 망했을 때 다시 나를 꿰맞출 수 있는 규격을 완전히 포기하기 두려운 찌질함도 고백해야 할 것이다.




'사회'는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이기 때문에 '사회'에서 인정받는 성취는 사람들로부터 얻는 수 밖에 없다. 나의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내밀한 정신활동으로서의 글쓰기. 나를 알고 싶지 않은 무수한 이들에게는 그저 무익한 전기와 데이터 낭비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영원히 변연이 없는 나무토막을 깎아 나를 만드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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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주는 위로의 형태 중 한 가지는 보편적인 인간 특질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 문학상에 대해 쓴 장에서, 시종일관 하고 싶은 말을 시원하게(쪼대로) 하면서 마치 판소리 중 추임새를 넣듯 '솔직하게 말하게 해주신다면'을 거듭했다. 당연히 일본어와 일본문화 특성에 기인한 것이겠지만, 하고 싶은 말을 내뱉는 동시에 그런 말을 하게 해달라고 연신 허락을 구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하루키도 나름 찌질한--적절하지 않은 표현이겠지만 다른 것이 생각나지 않아-면이 있네, 라며 찌질한 그와 찌질한 나를 한층 더 좋아하게 되었다.


더 좋아하고 싶은 마음으로 쓰다보면, 위로하는 마음으로 쓰다보면 언젠가는 만나지 않을까? 나를 알고 싶은 사람들, 내가 알고 싶은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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