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존재: 인과에 개입하는 실재 개체로서의 나
존재형식론에서 존재는 단순히 ‘있다’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존재란 인과에 개입하고, 그 개입을 통해 특정한 결과를 발생시킬 수 있는 실재 개체, 곧 ‘나’를 가리킨다. 존재는 외부 질서에 의해 정의되는 객체가 아니라, 자기 내부에서 형식을 구성하고 그것을 통해 다시 자기 자신을 구성하는 능동적 중심이다.
전통적 존재론은 존재를 세계 내에 위치한 실체로 간주하거나, 세계의 구조에 종속된 항으로 이해해왔다. 하지만 존재형식론은 세계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존재는 세계 없이도 성립할 수 있다. 이는 존재가 세계라는 보편적 배경을 필요로 하지 않고, 스스로의 형식을 생성하며 그 형식으로 자신을 재규정하는 자기 구성적 환형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2.1.1 존재의 구조: 자기 구성적 환형 시스템
이 구조를 시각적으로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는 인과적 개입을, 두 번째 ->는 형식들의 구조적 통합을 뜻한다.
[존재 A] -> [존재 형식 a1, a2, a3 ...] -> [존재 A]
• 존재 A는 실재하는 단일 개체이다 (예: 나).
• 존재는 존재 형식을 생성한다.
• 각각의 형식은 특정한 상태, 감정, 판단, 결정을 포함한다.
• 이 형식들은 존재의 본질을 결정하지 않지만, 구조적으로 존재를 구성하는 역할을 한다.
• 결과적으로 존재는 스스로 형식을 만들고, 그 형식들의 구조를 통해 다시 자신을 구성하는 순환 고리를 형성한다.
이 구조는 세계를 외부 조건으로 삼지 않으면서도 존재의 지속, 변화, 의미 구성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2.1.2 반론에 대한 철학적 대응
반론: “존재가 인과에 편입되어 형식을 구성한다면, 그 인과적 관계들의 총합을 ‘세계’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은가?”
대응: 이 반론은 ‘인과’와 ‘세계’의 개념을 혼동한 데서 비롯된다.
• 인과는 존재와 존재 형식 간의 특정한 작용의 구조이다.
• 반면, 세계는 이 인과들을 총합하거나 일반화하여 하나의 실체처럼 간주할 때 발생하는 언어적 허상이다.
인과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관계다. 하지만 ‘세계’는 인간이 이미 일어난 인과를 설명하고 개념화하는 과정에서 관계들의 그물망을 실체로 오인한 비유적 개념에 불과하다. 따라서 존재형식론은 인과는 인정하되, 세계는 실체가 아니라 은유적 서술 구조로만 남긴다. 존재는 세계 위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형식을 생산하고, 그 형식으로 자기 자신을 구성함으로써, 이미 하나의 ‘내재적 전체’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2.1.3 요약: 존재 개념의 정리
• 존재는 실재하는 개체, 즉 ‘나’이다.
• 존재는 인과에 영향을 미치며, 스스로의 작용을 통해 형식을 생성한다.
• 생성된 형식들은 다시 존재를 구성하는 구조로 되돌아온다.
• 이 자기 구성적 환형 구조 덕분에, 존재는 세계 없이도 유지, 변화, 의미 생성이 가능하다.
• 세계는 존재를 가능케 하는 전제가 아니라, 존재의 형식들 사이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서술적 요약어(환유)에 불과하다.
2.2 존재 형식: 나의 상태이자 인과적 편입의 구조
존재형식론에서 ‘존재 형식’이란 존재(나)가 특정한 인과적 작용에 편입될 때 형성되는 일시적이고 구체적인 구조를 의미한다. 이는 감정, 태도, 행위, 인식, 판단 등 존재가 경험하는 상태 전체를 포함한다. 그러나 존재 형식은 자율적인 실체가 아니며, 존재와 분리된 외적 결과도 아니다. 존재 형식은 언제나 존재라는 실재 개체에 뿌리를 둔 구조적 양태다.
우리는 흔히 존재를 단일한 자아로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상황마다 전혀 다른 모습으로 기능하는 상태들—예컨대 ‘결단하는 나’, ‘불안한 나’, ‘침묵하는 나’, ‘애정 어린 나’—을 통해 스스로를 경험한다. 이때 이러한 상태들은 고정된 실체의 다양한 표면이 아니라, 존재가 인과에 개입함으로써 그에 따라 형성되는 형식적 구조들이다. 존재 형식은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정의된다:
• (1) 인과적 편입의 결과: 존재 형식은 존재가 어떤 인과적 조건에 참여함으로써 생기는 상태다. 즉, 존재는 단순히 외부 자극을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동시에 그 안에 스스로를 편입시킨다. 존재 형식은 그 편입의 구체적 결과이며, 존재가 참여한 인과 관계의 형상화된 구조다.
• (2) 구조적 통합의 단위: 존재 형식은 개별적으로 흩어진 사건이 아니라, 존재를 구성하는 구조적 단위다. 존재는 하나의 고정된 본질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생성한 형식들의 통합된 구조로서 실현된다. 이 말은 곧, 존재 형식이 실체는 아니지만, 존재를 구성하는 필수적 경로이며 지점이라는 뜻이다.
• (3) 전이 가능한 구성 상태: 존재 형식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존재는 끊임없이 형식 간 전이를 통해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이 전이는 외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 내부에서 구성되는 작용의 양태이며, 이 지점에서 자유의 발생 조건이 성립한다. 자유란 무한한 선택지를 향한 무가 아니라, 존재 형식 간 전이가 가능하다는 그 자체의 구조에서 발생하는 실천적 가능성이다.
2.2.1 예시를 통한 이해
한 사람이 슬픔을 느낀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슬퍼하는 인간’이라는 본질을 갖는 것이 아니라, ‘슬픔이라는 인과 조건에 편입된 존재 형식’을 통과하는 것이다. 만약 그가 그 상태를 반성하고, 타인에게 말을 건넨다면, 그는 ‘표현하는 나’, ‘연결되는 나’라는 또 다른 존재 형식으로 전이된다. 이러한 전이 가능성 속에서 자유가 발생하고, 동시에 윤리와 의미 또한 내부적으로 구성된다.
2.2.2 요약: 존재 형식의 철학적 지위
• 존재 형식은 존재가 생성한 인과적 상태이며, 동시에 존재를 구성하는 구조적 단위다.
• 그것은 실체가 아니지만, 존재의 실현 양태로서 실제적이다.
• 존재는 형식을 통해 스스로를 경험하고, 형식 간 전이를 통해 스스로를 변화시키며, 이 구조 안에서 세계 없이도 자유, 윤리, 의미를 가능하게 한다.
이로써 존재와 존재 형식 간의 구조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존재]: 실재 개체, 인과에 개입하고 영향 미침 -> [존재 형식들]: 인과적 편입으로 생성된 상태들 -> [존재의 구성]: 형식들의 구조적 통합 -> [형식 간 전이]: 자유의 발생 조건
2.3 자유: 존재 형식 간 전이에서 발생하는 내재적 가능성
자유는 전통적으로 외재적 조건을 초월하거나, 주체의 결단을 통해 쟁취하는 선언적 혹은 극복적 개념으로 이해되어 왔다. 실존주의는 인간을 ‘던져진’ 존재로 파악하며, 그 자유를 부조리한 세계와의 충돌 속에서 무를 끼워 넣는 결단의 능력으로 정의했다. 이러한 입장은 세계의 실재성을 전제하며, 자유를 언제나 투쟁과 고통의 산물로 간주하는 구조를 강화한다.
하지만 존재형식론은 이와 다른 길을 제시한다. 자유는 세계와 싸워 얻는 외적 권리가 아니라, 존재 내부에서 작동하는 무한한 형식 간의 전이 가능성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즉, 자유는 부조리를 초월하거나 회피하는 선택이 아니라, 부조리라는 형식을 다른 형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구조적 가능성 그 자체다.
2.3.1 자유는 존재 외부의 조건이 아니다
존재형식론에서 자유는 세계나 규범, 도덕률과 같은 외부의 질서에서 허용되거나 제한되는 상태가 아니다. 자유는 존재가 형식을 구성할 수 있고, 그 형식이 다른 형식으로 내재적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구조적 사실에 기반한다.
존재는 단일하고 지속적인 실재 개체로서 다양한 인과적 작용에 개입하며 스스로의 형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이 변화는 ‘선택지’나 ‘결단’이 아니라, 존재의 구조 안에 이미 내장된 무한한 전이 가능성의 실현이다.
2.3.2 자유는 형식 간 전이의 구조에서 발생한다
존재가 슬픔이라는 형식에 편입되어 있다면, 그는 반드시 그 상태에 머물러야 하는가? 존재형식론에 따르면, 아니다. 그는 자신의 구조 안에 이미 다른 형식으로 전이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예컨대 그는 ‘표현하는 나’, ‘떠나는 나’, ‘기억하는 나’라는 다른 형식으로 옮겨갈 수 있으며, 이러한 전이 과정 자체가 자유의 실현이다.
이때 자유는 무한한 가능성을 향한 열림(open-endedness)이 아니라, 실재 개체인 존재가 자신의 형식 구조를 전환할 수 있다는 구조적/내재적 가능성이다.
2.3.3 자유는 실천이자 자기 구성의 흐름이다
자유는 단순한 선택지가 아니라, 존재가 자신을 구성하는 흐름 속에서 스스로를 실현할 수 있는 실천적 구조다. 자유는 존재가 인과에 의해 소외되거나 결정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과에 개입함으로써 존재 형식을 형성하고, 그 형식이 다른 형식으로 변할 수 있다는 구조를 살아내는 일이다.
이 자유는 필연이나 무작위, 낙관이나 허무주의를 넘어서며, 존재가 세계 없이도 의미 있는 변화를 생성할 수 있다는 윤리적 조건을 내포한다.
2.3.4 요약: 자유의 존재형식론적 재정의
• 자유는 존재 외부의 허용이나 결단이 아닌, 존재 내부의 구조에서 형식 간 전이를 가능케 하는 내재적 조건이다.
• 자유는 가능성의 총합이 아니라, 존재가 스스로를 구성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방식이다.
• 자유는 ‘부조리를 초월한 상태’가 아니라, ‘존재 형식 간의 전이’에서 성립한다.
• 자유란 곧 존재가 자기 형식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이며, 그것은 존재가 존재인 한, 항상 가능하다.
2.4 타자와 제한된 자유의 인식
존재형식론은 존재를 인과에 영향을 미치는 실재 개체로 정의하며, 존재 형식은 그 존재가 특정한 인과 조건에 편입되어 구성한 상태적 구조이다. 자유는 이 형식들 간의 전이 가능성에서 발생한다. 그렇다면 왜 존재는 자유를 전면적으로 체험하지 못하는가? 왜 존재는 때때로 스스로를 제한된 존재처럼 느끼며, 마치 ‘세계 속의 나’라는 환상을 갖게 되는가?
그 이유는, 존재 형식을 구성하는 인과 조건에 ‘자신 외부의 개체’, 즉 타자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2.4.1 존재의 절대성과 타자의 침투
존재는 본질적으로 절대자다. 즉, 외부의 어떤 기반에도 의존하지 않으며, 스스로 인과에 개입하고 형식을 생성하는 실재 개체로서, 존재는 원리적으로 전면적 자유의 가능성을 갖는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존재 형식은 자신 이외의 개체들—타자—에 의해서도 구성된다. 즉, 존재 형식의 인과 구조는 자신뿐만 아니라 타자에 의해 함께 형성되는 구성장이다.
2.4.2 존재론적 무게의 비대칭
여기서 ‘자신’은 존재의 의식 안에서 경험되고 있는 존재, 즉 감각, 판단, 통제의 중심으로 나타나는 존재이며, ‘타자’는 자신의 의식 바깥에서 감각되지 않으나, 인과적 구조에 실재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존재를 의미한다. 자신과 타자는 존재이자, 함께 존재를 형성하는 창조자이다.
두 개체 모두 인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존재로서 동등하지만, 자신과 타자의 영향력이 동일하지 않다. 존재는 언제나 자신을 중심으로 구성된 형식 안에서만 감각질을 수용하기 때문에, 타자의 개입은 ‘제한된 자유’라는 체험의 형태로 나타난다
2.4.3 제한된 자유와 세계 환상의 생성
결과적으로, 존재는 스스로의 전면적 자유가 타자의 영향으로 인해 변형된 상태만을 체험하게 되며, 이를 통해 ‘나는 세계 속에 있다’, 또는 ‘내 자유는 외부에 의해 제한된다’는 허상적 자각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 세계 감각은 실재적 구조가 아니라, 존재 형식의 감각적 수용 구조 안에 타자의 영향이 섞여 있다는 사실의 체험적 결과일 뿐이다.
즉, 존재는 여전히 세계 없이 존재하지만, 존재 형식의 인과 구조에 타자가 실재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자유가 제한된 것처럼 체험하게 되며, 그 결과 ‘세계 속의 자신’이라는 현상학적 구조가 발생한다.
2.4.4 요약: 타자, 자유, 세계 감각
• 존재는 원리적으로 자기 형식을 구성하는 절대자이다.
• 그러나 존재 형식은 자신 이외의 타자와의 인과 속에서 구성된다.
• 이때 타자는 실재하지만, 의식되지 않은 채 인과에 개입하는 존재이며, 이는 존재가 자신의 자유를 제한된 것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 형식 전이의 실질적 감각은 존재의 구성 요소인 ’자신’에게만 일어난다. 세계는 실재하지 않지만, 존재는 타자의 개입으로 인해 자신의 형식 전이를 온전히 감각하지 못하며, 그로 인해 세계 감각을 구성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