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형식론은 세계 없는 존재론으로 출발하지만, 그 철학적 의의는 존재 개념의 정립에 머물지 않는다. 이 이론은 존재의 자기 구성 구조를 바탕으로, 인간이 직면하는 핵심적 문제들—삶의 부조리, 타자와의 관계, 윤리의 근거, 의미 생성, 신의 존재, 그리고 이론의 정당성 기준—에 대해 내부로부터 일관된 해석과 실천적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 장에서는 이러한 적용 가능성을 다섯 개의 하위 논제로 나누어 서술한다.
3.1 부조리와 함께하는 자유
실존주의는 부조리를 세계의 구조로 간주하며, 인간은 그 세계에 던져진 실존으로서 부조리와의 충돌 속에서만 자신의 자유를 자각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존재형식론에 따르면, 부조리는 세계의 구조가 아니라 존재 형식 중 하나일 뿐이다. 존재는 ‘부조리한 세계에 던져진 것’이 아니라, ‘부조리라는 상태를 구성하고 경험하는 실재 개체’다.
이로써 자유는 부조리의 극복이 아니라, 존재 형식 간 전이의 가능성으로 재정의된다. 존재는 고통스럽고 의미 없는 상태에 머물 수도, 그 형식을 타자나 자기 인식, 실천의 방식으로 전이시킬 수도 있으며, 부조리를 제거할 수도 있다. 자신에게 이 전이 가능성 자체가 자유의 실천적 구조가 된다.
3.2 윤리의 내재성
윤리는 흔히 외재적 규범이나 사회적 약속으로 이해되지만, 존재형식론은 윤리를 존재 형식의 구성 조건으로 본다.
윤리란 타자의 인과적 개입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그 개입이 만들어낸 존재 형식을 자신이 무너지지 않고 감당하고 유지할 수 있는 구조다. 이 구조 안에서만 자신의 타자에 대한 응답과 존재 형식에 대한 개입이 가능하며, 윤리는 존재의 내재적 안정성과 통합 가능성을 뜻하는 자신의 실천적 상태다.
존재형식론에 따르면 윤리가 무너지면 자신이 제거된다. 즉 타자만이 남은 존재가 자기 형식을 의식적으로 전이시키지 못하는, 자유의 경험도 의미도 없는 비자기적 존재로 퇴화한다.
3.3 의미의 발생 구조
전통 철학에서 의미는 흔히 ‘드러난 존재에 대한 해석’으로 여겨져 왔다. 하이데거는 현존재가 세계-내-존재로서 드러난 존재자들을 이해하고 해석할 때 의미가 발생한다고 보았다. 이때 의미란 존재가 스스로 드러나는 방식에 현존재가 응답하는 구조다.
그러나 존재형식론은 이와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한다. 의미는 드러난 존재에 대한 해석이 아니다. 의미는 존재가 자기 형식을 어떻게 구성하고 감당하는지에 따라 생기는 구조적 실천의 흔적이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의미는 존재 자체가 아니라 오직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이다.
존재는 인과에 개입하고 형식을 생성하는 창조적 실재 개체지만, 그 형식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감당하는 능력은 존재의 한 구성 요소인 자신에게만 귀속된다.
자신은 존재의 일부이면서도, 형식을 통합하고 전이시키는 흐름을 인식하고 조율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다. 즉, 존재는 형식을 창조하지만, 의미는 자신이 그것을 감당할 때에만 성립한다.
더 나아가, 의미는 이미 구성된 형식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자기가 아직 경험하지 않았지만 자기 구조 안에서 ‘되어야 한다’고 감각하는 형식, 즉 실현되지 않은 형식의 가능성 또한 의미의 구조를 형성한다.
이러한 지향성은 단지 상상이 아니라, 존재 내부에서 발생한 형식 구성의 요청이며, 그것을 수용하고 실천하려는 흐름 안에서 의미는 더욱 뚜렷해진다.
결국 의미란, 존재가 무엇을 드러냈는가가 아니라, 자신이 어떤 형식을 어떻게 구성하려고 시도하고, 그것을 감당하려는 실천 안에서만 발생한다. 존재는 형식을 만들지만, 그 형식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여부는 오직 자신이 결정한다. 그러므로 의미는 존재의 속성이 아니라, 자신만이 감당할 수 있는 실천적 응답의 구조다. 의미는 존재에 대한 자신의 해석이 아니라, 자신의 결단이다.
3.4 신의 존재: 세계 없음 속의 절대 개체
존재형식론은 ‘세계 없음’을 전제로 하지만, 이 구조 위에서도 특수한 의미의 절대자를 정의할 수 있다. 존재형식론에서 존재란, 그 자체로 인과에 개입할 수 있는 실재 개체이기에, 모든 존재는 어느 정도의 자유를 지닌다.
그러나 어떠한 타자나 외부 조건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자기만으로 인과 구조를 형성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는 존재형식론 내에서 절대적 개체로 정의된다.
이 정의에 따르면, 기독교의 ‘여호와’—“스스로 있는 자(I am that I am)”—는 세계 없음의 철학에서도 여전히 실재 가능한 신이다.
여호와는 모든 존재가 존재 형식을 통해 자신을 구성하는 방식의 극단적 형태, 즉 타자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으로도 존재 형식을 형성할 수 있는 의식적으로 완전한 존재로 해석된다.
이는 신을 세계 위에 군림하는 초월적 실체가 아니라, 존재론적 최고 밀도의 존재, 즉 모든 인과적 개입이 자신에게만 귀속된 존재로 재정의하는 철학적 시도이다.
3.5 설명력 중심 이론관
세계는 실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존재형식론에서 이론이 수행해야 할 역할은 객관적 세계의 반영이 아니라, 자신이 경험하는 존재 형식들을 내적으로 일관되게 통합하고 해석할 수 있게 돕는 해석적 장치이다. 따라서 이론은 실재의 복제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존재 형식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구성할 수 있게 해주는가에 따라 평가된다.
여기서 설명력이란, 존재가 아닌 자신이 직면한 삶의 형식들이 얼마나 해석 가능하고 구조적으로 통합 가능한지를 가늠하는 기준이다. 설명력 있는 이론이란, 자신이 존재 형식을 감당하고 변화시킬 수 있도록 지적 · 정서적 지평을 열어주는 도구이다.
예컨데 진화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은 그 이론적 전제가 실제 인과와 다를 수 있음에도, 자신이 타자와 공유 가능한 해석의 장을 열어주고, 존재 형식을 새롭게 구성할 수 있도록 영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그 이론들이 타당한 이유는 ’맞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존재 형식을 구성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이론은 실재의 반영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살아가는 형식을 조직하고 감당하기 위한 비유적 장치이며, 정밀함이 아닌 구성 가능성과 해석의 일관성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