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존재에 대한 물음을 다시 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존재는 세계를 필요로 하는가?’라는 질문은 철학사 전체에 걸친 무의식적 전제를 겨냥한다. 세계의 실재성을 전제로 한 하이데거, 사르트르, 들뢰즈, 나가르주나의 철학은 존재를 세계 속 현상으로 이해하고, 자유와 윤리, 의미를 모두 그 전제 위에서 구성해왔다.
그러나 본 글은 이 전제를 거부하고, 세계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급진적 존재론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존재는 인과에 개입하는 실재 개체이며, 그 존재는 특정한 인과 조건에 편입됨으로써 형식(form)을 이룬다. 존재는 고정된 실체도 아니고, 무의미한 흐름도 아니다. 그는 자기 형식을 구성하고, 그것을 전이시키며, 그 전이 구조 속에서 자유를 살아가는 실천적 개체이다.
존재형식론은 세계를 배제하면서도 의미, 윤리, 자유, 타자, 신, 해석의 가능성을 모두 존재 내부의 구조만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철학적 체계다. 존재는 자기 형식을 구성하고, 형식은 존재를 구성하며, 이 환형 구조는 외부 없이도 내부에서 전체를 만들어내는 자율적 구조를 형성한다.
4.1 존재형식론의 철학사적 의의
존재형식론은 세 가지 점에서 철학사에 기여할 수 있다:
• 존재 개념의 재정의: 존재를 세계 속 객체가 아니라, 자기 형식을 구성하고 전이할 수 있는 실천적 주체로 재정의함으로써, 실존주의 이후 정체되어 있던 존재론의 지평을 다시 연다.
• 자유 개념의 내재화: 자유를 외부 조건의 제거나 초월의 결과가 아니라, 존재 형식 간의 전이 가능성이라는 구조적 내재성으로 해석함으로써, 자유와 실천을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재정립한다.
• 윤리의 존재론적 기초: 타자를 인식의 바깥에 두면서도, 타자의 개입을 단순히 인식되지 않는 외부 자극이 아닌, 자신이 감당해야 할 형식의 조건으로 수용함으로써, 윤리를 외재적 명령이 아니라 존재 내부의 구조적 응답성으로 정당화한다.
4.2 타자를 돌보는 것은 나를 돌보는 것이다
존재형식론은 타자의 실재성은 감각되지 않더라도, 그 인과적 개입은 나의 존재 형식을 제한하고 구성한다는 점에서, 타자에 대한 무응답은 곧 창조의 왜곡이나 위축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즉, 타자와의 관계는 존재에게 외부적 부담이 아니라, 자유롭고 유의미하게 구성되기 위한 내재적 조건이다.
그러므로 타자를 돌본다는 것은 나의 존재 형식을 확장하고 구성하는 것을 돕는 일이며, 곧 나를 돌보는 것과 같다. 존재는 세계 없이도 스스로를 구성하지만, 타자의 개입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존재의 입장에서 존재 형식은 왜곡되며, 전이 가능성도 제한된다.
타자에 대한 응답은 선택이 아니라, 자신의 의미를 온전히 실현하기 위한 구조적 실천이다. 이로써 윤리와 자기 실현, 타자 사랑은 모두 같은 존재론적 기반에서 발생하는 존재의 내재적 응답성의 양태가 된다.
4.3 철학의 새로운 기회
존재형식론은 세계 없음의 전제 위에서, 존재, 자유, 윤리, 신, 의미, 이론을 모두 내재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드문 철학 체계이다. 그것은 허무주의의 변형도 아니며, 초월적 신앙의 변명도 아니다. 그것은 존재가 자기 안에서 세계를 대체하고, 의미를 생성하며, 타자와의 응답을 윤리로 조직할 수 있는 능동적 구조를 지닌다는 선언이다.
이 철학은 인간을 나약한 수동자가 아닌, 자기 형식의 설계자이자 응답 가능한 개체로 복권시킨다. 그리고 그 안에서 존재는 더 이상 ‘세계 속에 있는 자’가 아닌, ‘자기 자신을 구성하는 자’로 존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