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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친구 없어요?

네. 꼭 있어야 돼요?

by 춤몽

"동네 친구 없어요?"


초등학생 아들이 있는 나는 이 질문을 자주 듣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없다, 일부러 사귀지 않는다'라고 답한다.


그들이 칭하는 '동네 친구'는 '친구'라는 개념이 증발한 '교육과 관련한 정보 교류 인맥'일 테니까.




평일 오전에 아들이 등교하면 순도 백 퍼센트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러 나 홀로 노트북이나 책 한 권을 들고서 동네 커피숍에 갈 때가 종종 있다.


꽤 이른 그 시간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테이블을 채운다. 90프로 이상 내 또래의 여성들로, 아침에 아이들을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에 보내놓고 얼굴 알고 지내는 엄마들끼리 티타임을 갖는다. 좋다. 소중한 자리다. 엄마들 또한 사회적 동물이니만큼, 육아기의 고충을 나누고 조언을 얻고 공감을 주고받으면서 오늘 남은 하루를 살아낼 용기를 얻는 시간이니까.


그러나 또 한편으론, 엄마로서의 부족함과 불안감, 초조함을 덧씌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를 가진 엄마들은 영어 유치원과 일반 유치원 사이에서 고민하고,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있는 집은 사립 초등학교에 이미 원서를 내고서 탈락할까 봐 손톱을 깨문다. 초등학생이 있는 집은 A 어학원과 B 어학원의 정보를 서로 공유하고, 더 나아가 그 자리에 없는 어느 집 자녀의 영어 레벨은 벌써 중학생 수준이더라까지 이르면 몇 초간 침묵이 흐른다. 물리적으로 짧지만 심리적으로 긴 시간이 그들 사이를 굽이굽이 통과한다.




그들의 얘기를 귀 기울여 들어보면 모든 대화의 시작과 끝은 '자녀 교육'이다. 정확히 말하면, '인성 교육'도 아니요, '적기 교육'도 아니요, '자녀 사교육' 또는 '조기(선행) 교육'이다.


평소에 자녀와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자녀의 최근 고민 사항은 무엇인지, 내 아이의 기질과 장단점은 어떠한지에 대한 내용은 철저히 배제된 기괴한 대화가 오간다.


영어 파닉스를 뗐는지 아닌지, 수학 선행은 몇 학년 과정을 하고 있는지, 책을 일주일에 몇 권 읽는지에 대한 얘기가 오간 자리에는 저마다의 표정이 눈밭 위에 찍힌 발자국처럼 또렷이 남는다.


1번 테이블: 뿌듯한 엄마 A와 불안한 엄마 B

2번 테이블: 불안한 엄마 C와 초조한 엄마 D와 낙담하는 엄마 E


그쯤 되면, 글 몇 자 써보겠다고 타닥타닥 타자를 치고 있는 내가 비정상 엄마인가 싶을 때도 있다.


서두에서 언급했다시피 나는 동네 친구가 없다. 아니, 안 만든다. 내게 거창한 교육 철학 같은 건 없다. 그저 조기 교육보다 적기 교육이 타당하다는 쪽에 좀 더 기운 입장이고, 'ABC'보다 '가나다'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보다 확고하다.


교육관에 정답이 어디 있겠냐마는, 나는 내 나름의 교육관을 소신 있게 지켜 나가기 위해서라도 오늘도 혼자임을 택한다.


이렇게 이 동네에서 자발적 외톨이로 산 지 어느새 10년이 넘어가고 있다.



(+ 아이 교육을 계기로 만난 동네 엄마들이 진정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로 발전한 경우도 많을 거예요^^ 그러한 사례와 여지까지 부정하는 글이 아님을 알아주시기를..)





#초등사교육

#동네엄마

#동네친구

#자녀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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