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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죠?

6년차 천사, 당신에게 가는 길

by 춤몽


한동안 잊고 살았다, 그녀를.

죽음 이후 2~3년간 불쑥 예고 없이 꿈에 찾아오던 그녀의 방문이 뜸해진 지 오래였다.


추석 명절을 포함해 일주일의 꿀맛 같은 안식주(?)에 김고은 배우를 좋아했던 나는 <은중과 상연>이라는 드라마를 정주행 했다.


시청한 드라마 회차가 차곡차곡 쌓이는 만큼 눈물 콧물로 젖은 수십 장의 휴지가 복리로 늘어났다.

배우들의 내공 있는 연기와 감정선을 톡톡 건드리는 대사에 매료되어 정신 붙들어 맬 사이 없이 끝나버린 작품.


그저 오랜만에 좋은 작품 만나 기쁘고 반가웠다는 마음, 그뿐이었다.


그런데 그 후 유튜브에서 호스피스 닥터니, 존엄한 죽음이니 하는 영상들이 잇따라 뜨는 것이다. 넷플릭스로 시청한 드라마를 유튜브가 감지했을 리 만무하다. (아닌가? 그렇다면 더 무섭고.)


'왜지? 뭐지?'


연관 관계를 더듬다가 문득 잊고 있던 그녀의 기일이 일주일도 안 남았음을 알게 됐다. '벌써 나를 잊은 건 아니지요?' 하는 그녀의 애교 섞인 음성이 귓가에서 이명처럼 울렸다.


'그래, 갈게. 내가 너무 무심했지?'


나는 면허를 딴 지 꽤 오래됐지만 아는 길 이외에는 자신감이 90도로 꺾이는 운전자다. 게다가 내비게이션을 못 본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오늘은 비까지 내리는 바람에 시야 확보도 쉽지 않다.


'그래도 간다, 너에게. 네가 지켜줄 테니까. 그리고 오늘은 너의 친구이자 나의 동료가 동행하니까.'


미숙한 운전 실력으로 어느 추모원의 꼭대기를 향해 굽이굽이 주행하면서도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에 불미스러운 일이 내 앞에 닥칠 거라는 의심은 1도 개입할 수 없었으므로.


막상 도착하고 나니, 몇 년 전 기억을 더듬어도 그녀가 잠든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 둘은 서로의 탈모를 걱정하며 비를 맞으며 추모원의 천사들이 잠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기 바빴다. 빗줄기를 헤치면서

그녀의 묘비명을 보물찾기 하듯 뒤졌다.


그리고, 드디어 그녀를 만났다.


그녀의 무덤 앞에 놓인 가족사진은 빛이 조금 바랬지만, 그 안에서 빛나는 가족들의 모습은 여전했다. 장인에게서 그녀의 하얀 손을 건네받은 남편, 눈웃음이 그녀와 똑 닮은 어린 딸과 아들은 어제 본 듯 생생한 그 모습 그대로였다. 지금은 길 가다가 봐도 모를 만큼 컸겠지만.


그녀 앞에 쭈그려 앉아 단정한 길이로 정돈된 무덤 위 풀을 눈으로 훑으며 속으로 말했다.


'잘 지내고 있지요? 늦어서 미안해요.'


그때 빗줄기가 가늘어지며 산허리에 안개가 기대 누웠다.




그녀에게 인사하고 가파른 내리막길 위를 네 바퀴가 구르는 동안 비가 완전히 그쳤다.


6년차 천사인 그녀가 나의 수호천사를 자처한 것이리라 믿는다.


짧은 우리의 방문이 머나먼 그곳에까지 반갑게 가 닿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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