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못한 이유를 재취업에서 찾고 있다니요
브런치가 자꾸만 나의 요즘 관심사를 물어왔다. 그때마다 나는 흐린 눈을 하고서 검지 끝으로 알림을 쓱 날려 버렸다.
작가란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 쓰기를 멈추지 않는 열정과 직업의식이 있는 자'라고 한다면 나는 작가가 아니다. 다시 브런치 앱을 열어 글 쓰는 여유를 찾기까지 넉 달이 걸렸으니까. 이 말인즉슨, 전공이나 전 직장군과는 전혀 무관한 일로 다시 경제 활동을 시작하게 된 지 4개월이 지났다는 말이다.
교육산업계의 지식 노동자였던 나는 십 년의 경력 단절 끝에 복귀한 사회에서는 유통판매업계의 육체 노동자로 살기로 했다. 예전에 받던 시급에서 4분의 1토막이 난 근로계약서에 고분고분 서명을 하고,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옆도 뒤도 안 보고 눈가리개를 한 채 경주마처럼 내달렸다. 산더미처럼 쌓인 상품 박스를 나르고, 물건을 진열하고, 까칠한 고객을 응대하고, 포스에서 바코드를 찍었다.
재취업을 하고 한 달간은 극심한 근육통에 시달렸고 전에 없던 오십견 증상으로 어깨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아 첫 월급을 정형외과와 한의원에 고스란히 갖다 바쳤다. 50평 남짓한 매장에서 하루 평균 1만 5천보를 걸으며 생긴 족저근막염은 아직 치료를 시작하지도 못했다. 내가 네 번의 월급을 받는 사이에 어떤 이는 3개월의 수습 기간을 버티지 못하고 퇴사했다.
근무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다는 조건이 처음에는 초등학생 아들이 있는 내게 퍽 매력적으로 다가왔는데, 실상은 내 상황에 결코 유리한 조건이 아니었다. 5시간 근무하기로 한 날이 12시간 근무가 되어 있기도 했고, 어떤 주는 토요일과 일요일 모두 출근해야 했다.
올여름은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 고갈 상태로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엶과 동시에 현관에서 허물어지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취미 생활은 사치였고 가족 여행은 감히 엄두도 못 냈다. 아들에게 내어 준 엄마표 간식 개수와 강아지와 함께하는 산책 횟수가 얼마나 줄었는지는 엄마로서, 애견인으로서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다.
각설하고 지금까지 내가 이렇게 혀가 길었던 이유는 글을 쓰지 못한 시간에 대한 변명을 하기 위해서다.
오늘, 4개월 만에 도서관에 가서 책 일곱 권을 빌렸다. 대출 기한 내에 다 읽지 못할 게 명백하면서도 과욕을 부렸다. 채우지 못한 정신적 허기가 날뛰어 통제불능 상태가 된 것이다.
묵직해진 가방을 짊어진 등줄기에서 쪼르륵 흘러내리는 땀을 식히려 나만의 힐링 카페에 들어갔다. 아이스커피와 갓 구운 스콘 하나를 주문하고서 창밖을 바라봤다. 노랗게 익은 은행 두 알이 나무에서 톡 떨어져 내리막 차로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자비 없이 내달리는 차량의 바퀴들을 요리조리 피해 경쟁하듯 구르는 은행 두 알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순간, 뭐라도 쓰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았다.
하늘이 이렇게 높고 푸른데, 딱 좋은 온도로 데워진 스콘이 여린 김을 뿜으며 내 눈앞에 놓여 있는데,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고작 보기만 해도 구린내가 코끝에 진동하는 은행 두 알에서 비롯되다니 참 희한한 일이었다.
다시 생각해 보아도 취업해서 글을 못 썼다는 건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희미하다는 걸 증명하는 꼴밖에 안 되지만, 오랜만에 '쓰고 싶은 마음'을 만나 그것으로 다행이라며 자위하고 있다.
'글감을 수집한다는 마음으로 일을 대하면 내일은 상자를 조금 가볍게 나를 수 있지 않을까'하고 긍정 회로를 돌리다가 머릿속에서 추석 직전의 유통업 장면 미리보기를 누르고 말았다.
내일부터는 지난주 입고 물량의 두 배가 기다리고 있고, 배송 요청은 열 배가 넘을 테니 추석이 끝날 때까지는 긍정 회로가 재가동되는 일은 없겠지 싶어 절망스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