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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몽당연필 Sep 28. 2022

예쁜 것만 가질래

내 취향을 찾아가는 즐거움

 광택 나는 흰색 하이그로시 싱크대 선반, 핑크색 벽지, 짙은 오렌지색과 크림색 투톤이 어우러진 암막 커튼...


 엄마의 의견을 따라 신혼집을 꾸몄다. 하이그로시 선반이 얼룩져도 닦기 쉽다, 신혼집이니 생기 있게 핑크 핑크 해야지 등 엄마만의 논리와 이유가 있었고 나는 내 주장을 강하게 밀어붙이기엔 그 당시 취향에 대한 줏대가 없었다. 기껏해야 다이어리와 문구류 따위에 관심 있었을 뿐, 인테리어는 더 큰 어른들의 일(?)로 여긴 '어른 아이'였다.


 그리하여 우리 집은 엄마 취향을 반영하는 가구와 색채로 채워졌고, 엄마가 쓰지 않고 아껴뒀다면서 하나, 둘 우리 집에 가져다 둔 식기와 주방용품이 부엌에서 당당히 메인 위치를 차지했다. 


 처음에는 좋았다. 이거 사려면 다 '돈'이니까. 아싸, 돈 굳었다.

 딸네 공간을 꾸미고 살림을 채우며 엄마도 대리만족을 느끼시는 것 같아 굳이 말리지 않았다. 


그러나 8년이 흐르는 동안 살림 내공이 늘면서 나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나는 의외로 정리수납법과 가구 배치 같은 것에 꽤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정리수납전문가 자격증을 따고 풍수 인테리어와 색채 심리 등을 공부하면서 '내 취향이 아닌 것'이 확고해졌다.


 실리콘으로 된 싸구려 냄비 손잡이(심지어 강렬한 레드!)가 거슬려 요리하기 싫어지는 날도 있고, 엄마가 남대문 시장에서 사 오신 두 켤레에 8천 원 하는 실내용 슬리퍼에도 애정이 생기지 않았다. 친정에 식기가 차고 넘친다며 박스에 담겨 온 코렐 접시와 플라스틱 락앤락도 더 이상 반갑지 않았다.


 그렇다고 막상 버릴 수도 없는 이유는, 엄마는 우리 집에 자주 오시는 편이라 그것들이 없어지면 '어디다 버려 버렸냐', '버릴 바엔 다시 나한테 줘라', '새로 사려면 돈 드는데 왜 헛돈 쓰냐' 같은 잔소리를 속사포처럼 쏘아댈 게 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엄마 나름대로 딸을 생각해서 가져다준 물건이 버려지거나 처분된 걸 아시면 엄마가 서운해하시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이런 이유, 저런 걱정들로 결단을 내리지 못하여 결국 '내 취향이 아닌 것'들은 여전히 우리 집에 머물고 있다.



 

 설레지 않는 것들을 수시로 마주할 때마다 신경이 곤두서는 일은 여기까지.

 내 마음이 가는 것에 에너지를 모을 때가 됐다.


 멀쩡한 싱크 선반을 당장 내 취향대로 무광에 엔틱 손잡이가 있는 것으로 바꿀 수도, 차가운 대리석 식탁을 따뜻한 원목으로 바꿀 수도 없지만 소소한 것부터 내 취향으로 채울 생각이다.


 오늘은 노란 들꽃이 수놓아진 리넨 앞치마를 하나 주문했다. 우리 엄마가 알면 무슨 앞치마 쪼가리를 4만 원 주고 사냐고 하실 테지만 우리 집 살림 주체는 '나'이고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내가 입을 것'이므로 내가 끌리면 그만이다.


 올해는 겨울이 오기 전에 주황색 암막 커튼을 뜯어 내야지. 새로 달 커튼을 무슨 색으로 할지, 어떤 디자인으로 할지 한동안 즐거운 고민에 빠지겠구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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