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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몽당연필 Oct 12. 2022

기저귀 차고 다니는 어른은 없으니까

아이를 믿고 기다려 주세요

 "아이 한글 다 뗐어요?"


 "아뇨. 쉬운 받침 글자 정도는 읽을 줄 아는데 아직 쓰기는 못해요."


 "곧 학교 갈 텐데 얼른 한글 떼어야죠. 방문 학습지라도 시켜요. 한글 못 떼면 1학년 수업 어떻게 따라가려고... 아이 초등학교는 어디 보내실 거예요?"


 "요기 집 앞에 있는 초등학교에 배정되겠죠. 가까워서 얼마나 좋아요."


 "네? 외동아들인데 사립초 안 보내시게요? 공립이랑 사립은 학습 분위기부터가 완전 다른 거 아시죠? 솔직히 애가 공부 잘했으면 좋겠죠? 남의 집 딸들도 공부 잘하는 아들한테 시집보내고 싶지 않겠어요?"


 코앞에 있는 국공립 초등학교에 보낼 거라는 말(아직 2년이나 남았다!)에 정색을 하며 무례한 훈수를 두는 사람은 우리 아이와 같은 어린이집에 아들을 보내던 엄마였다. 그녀는 근처 사립초가 어디어디 있는지, 원서 접수는 몇 월부터 하는지 정보를 늘어놓다가 시계를 보고 깜짝 놀란다. 그러더니 놀이터에서 우리 아이와 신나게 뛰어놀고 있는 자신의 아들(우리 아들보다 두 살 어리다)을 신경질적으로 재촉한다.

 

 "OO아! 얼른 가야 돼. 누나 (사립) 학교 끝날 시간 다 됐단 말이야!"


 "띠러! 나 횽아랑 더 노꺼야!"


 "너 숙제는 했니? 이따 눈높이 선생님 오실 거야!"


 그녀의 아들은 흥이 식지 않아 벌겋게 상기된 채로 엄마 손에 이끌려 가면서도 아쉬움에 우리 쪽을 몇 번이나 돌아봤다. 눈높이 수학일지 눈높이 한글일지 모르는 수업을 듣기 위해 발길을 돌리는 4세 아이의 시무룩한 뒷모습이 안타까웠다.

 아이가 눈높이 선생님과 열공하는 동안 그녀는 손수 운전해 (사립)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을 모시러 가겠지. 딸은 엄마한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말하기도 전에 학원 앞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저는 하원한 아이와 집 앞 개천에서 월드콘을 핥아먹으며 물고기 사냥하는 왜가리를 구경하는 게 더 재밌는데요. 아이와 풀밭에 쪼그려 앉아 나무 막대기로 땅 파서 공벌레 찾는 게 얼마나 신나는데요. 그네도, 시소도 없는 조악한 놀이터지만 엄마가 공룡이나 괴물로 잠시 빙의하면 아이는 돌고래 소리를 내며 흥분한답니다.'라는 은 속으로 삼켰다. 그래 봐야 세상 물정 모르고 속 편한 소리 한다든지 이런 엄마가 초등학교 보내면 더 전투적으로 변하더라는 말을 들을 게 뻔하니까.


 내가 생각하는 '6세 아이의 엄마 역할'은 좋은 학원에 보내 좋은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터에서 아이가 노는 동안 휴대폰 들여다보지 않고 아이의 도전과 성장을 지켜보기, 내 아무리 피곤해도 자기 전 책을 한 아름 안고 와 읽어달라는 아이 부탁을 거절하지 않기 같은 것들이다.

 

 나는 내가 여섯 살 때 하지 못했던 것들을 내 아이에게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는 자주 행복한 얼굴로 말한다.


 "나는 엄마 아빠랑 노는 게 제일 좋아."


 그리고 나는 아이에게 지금은 세 가지만 잘하면 된다고 말한다.


 "오늘도 잘 자고, 잘 먹고, 잘 쌌니?"




 위 이야기는 작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던 아들은 어느덧 7세가 되었고, 내년이면 저도 초등학교 학부모가 됩니다. 아이는 눈높이 한글을 하지 않았어도 이제 잘 읽고 잘 씁니다. 가르친 적 없는데 두 자릿수 덧셈도 곧잘 합니다.


 100인 100색이니 교육관이 저마다 다른 것이 당연하지요. 아이의 기질과 특성, 재능에 따라 교육에 중점을 두는 부분, 가르치는 속도도 다르므로 교육 방식과 시기에 '정답'이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교육에 대해선 남에게 훈수를 둘 필요도, 타인의 훈수를 들을 필요도 없어요. (이 글 또한 '훈수'처럼 보이면 어쩌지요)

 

 저는 그저 앞으로도 내 아이의 속도를 존중하며 아이와 함께 꾸준히 성장할 생각입니다. 무한한 인내가 요구되는 그 과정 또한 '엄마를 성장하게 하는 힘' 아닐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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