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안 하던 짓 좀 해보려고요
귀를 찢는 락이나 정신없는 랩보다 잔잔한 발라드를 좋아한다.
허무맹랑한 SF 영화보다 <리틀 포레스트>나 <퍼펙트 데이즈>처럼 잔잔한 일상을 묘사하는 영화가 좋다.
구황작물, 떡, 견과류처럼 물기가 없어서 목 막히는 음식은 싫다.
롯데리아에 가면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새우버거를 시킨다.
이것이 내 취향이다.
이밖에도 내게 수많은 '좋다'와 '싫다' 리스트가 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호불호 목록이 지금의 나에게 꼭 맞는 취향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현재 나이 40대 초반.
사방이 막혀있는 울타리 속에 20대 때부터 내 취향이라고 믿었던 것들을 고집스럽게 가두어 놓고 '나는 이게 좋아'라고 만족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과감하게 울타리를 넘어 새로움에 도전할 기회를 나 스스로에게 주지 않고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늘 보는 것, 매일 먹는 것, 반복해서 만나는 사람' 속에서 나는 취향이 확실한 인간이 아닌 무색무취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새로운 환경에 놓이면 적응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기존에 시도해보지 않은 일에 도전하려면 단전에서 용기를 끌어올려야 한다.
새로움을 접하고 나서 '어? 알고 보니 나 이런 거 좋아하는 사람이었네!'를 발견하는 기쁨보다 '이것 봐. 역시 내 취향 아니라니까.'를 재확인하는 게 더 싫은 안정추구형 인간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와 성향이 똑같은 남편을 만나 10년 이상 같이 살면서 안정지향주의는 일상에 깊이 뿌리내렸다.
각자의 취향이 10년째 고정불변해서 대화 주제가 늘 거기서 거기다. 서로에게 더 이상 궁금한 게 없다 보니 권태로움이 찾아오는 주기가 짧아졌다. 그와 함께하는 삶은 안전하지만 신선함이 없다.
단조로운 일상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내가 먼저 미처 몰랐던 취향을 발견할 기회를 갖기보다, 남편의 관심사가 폭넓어져서 그가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해 주길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
이 지점에서 나는, 내가 무척 수동적이고 나태한 인간임을 깨달았다.
모두가 1인분의 인생을 책임지고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벅차다.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한 사람이 먼저 뭐라도 해보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나를 도구로 '적법한 범위 내'에서 그동안 안 하던 짓을 해보기로 했다.
3분짜리 노래 한 곡도 어느 구간에 이르러 변주가 있어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100세 시대를 살고 있는 내 인생에서 변주가 필요한 구간이 바로 지금이다.
집 앞 천변을 30분도 걷지 않는 나에게 당장 국토 대장정을 해보라고 채찍질하는 게 아니다.
신라면만 고집하지 말고 다른 신제품도 한번 먹어보고, 발라드 말고 힙합이나 락에 숨은 매력도 찾아보자는 거다.
확실한 자기 색깔이 있는 사람도 그 자체로 멋지다. 다만, 취향은 사회적 위치가 바뀌고, 나이가 들어가고, 건강 상태가 달라짐에 따라서 유동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최근에서야 들었다.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지금의 취향이 진짜 내 것인지, 새로운 시도에서 찾을 수 있는 취향이 있기나 한 건지 죽기 전까지 알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앞으로 야금야금 일탈하며 기존에 내 취향이라고 여겼던 것들을 파괴하는 실험을 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