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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연이 Jan 07. 2023

새해 다짐에 금주는 없다.

중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다

금주를 한 지 330일이 지났다.

TV나 유튜브에서 술방을 보면 술 생각이 나지만 참는 것이 힘들지 않다.

술 마신 다음날 드는 자괴감과 숙취가 얼마나 큰 괴로움인지 알기 때문이다.


새해가 되면 다이어트, 금주, 금연을 다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행히 이제 나는 다이어트만 신경 쓰면 된다.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쳇바퀴처럼 스스로를 속박하는 것은 다이어트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다이어트는 나를 옭아매지만, 건강을 해치지는 않는다.

올바른 다이어트는 몸을 더 건강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술은 순간의 즐거움 외에는 모든 날이 고통이었다.

마음과 몸을 병들게 했고, 자유를 뺏어갔다.

나에게 일 년 365일은 술을 마시는 날과 마시지 않는 날로 나뉠 뿐이었고 하루가 그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머릿속은 온통 술 생각뿐이었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 재밌는 TV를 볼 때, 비가 오고 눈이 내려서, 날이 더워서, 외롭고 힘들어서.

술 마실 이유를 대자면 끝이 없지만 이유 따위 필요 없이 해가 지면 술 생각부터 났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술을 마시지 말아야지 다짐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다짐은 지우개로 지운 연필 자국같이 옅은 흔적만 남는다.

해가 힘없이 떨어지면 옅은 다짐마저도 속절없이 물속으로 가라앉아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다.


양을 줄이고 빈도를 줄이는 것은 효과가 없었다.

평생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드는 행운의 그 순간을 단숨에 움켜잡아야 한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큰일이 날 줄 알았다.

그러나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술에 취해 죄책감과 자괴감에 시달리던 날이 최악의 날들이었으므로 더 이상 나빠질 일은 없다.


금주를 하고 나를 맞이해준 것은 말짱하고 깨끗하고 선명한 정신이었다.

얇은 얼음막 옷을 입은 계곡물을 깨고 들어가 머리를 담근 듯 마비되어있던 이성이 깨어났다.


난 내가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인 줄 몰랐고, 술을 마시지 않고도 저녁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다는 걸 몰랐다.


금주를 하자 무거운 돌덩이를 떼어 낸 것처럼 홀가분해졌다.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요즘은 술로 허비한 수없이 많은 시간들을 메꾸느라 마음이 바쁘다.

하지만 낮잠을 자거나 책을 읽으며 뒹굴거리는 시간도 잊지 않는다.

조급한 마음을 접어두고 느리게라도 성장하는 사람이고 싶다.


올해는 나이를 먹는 것이 서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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