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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연이 Feb 05. 2023

외면하지 않는 어른이고 싶다

‘더 글로리’를 보고

‘더 글로리’를 봤다. 어정쩡한 뒷북이다. 남편이 말하길 너무 재밌지만,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라고 했다. 학교 폭력에 관한 이야기란 건 알고 있었기에 폭력적이고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올 거라는 예상은 되었다. 나는 공포물이나 폭력적이고 잔인한 영상을 잘 보지 못한다. 지금은 슬픈 영화도 못 보는 겁쟁이가 되었다.


‘더 글로리’를 보게 된 계기는 현실도피였다. 글을 써야 하지만 쓰기 싫기도 하고, 그만둘 수도 없는 양가적인 감정에 이도저도 하지 못했다. 평소에 넷플릭스는 쳐다도 안 봤는데 어느 순간 넷플릭스를 둘러보고 평이 좋은 드라마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정말 시간 낭비를 한 드라마도 있었고, 뻔히 예상되는 갈등의 복선이 스트레스를 유발할 것 같아 끝까지 보지 않은 드라마도 있다. 그러다 더 이상 끌리는 것이 없어 ‘더 글로리’를 클릭해 버렸다. 남편이 “멋지다 연진아”를 외치며 성대모사를 했는데 도대체 그게 어떤 상황인지 궁금한 마음도 컸다.


역시나 주인공 동은이가 학교 폭력을 당하는 장면은 보기 괴로웠다. 하지만 스토리에 점점 빠져들어 멈출 수가 없었다. 주인공이 계속 당하는 장면만 나오면 아무리 좋은 영화나 드라마라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복수가 해결책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주인공을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이틀 동안 1부를 몰아보며 왜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알 수 있었다.


‘더 글로리’를 본 후 국민학교 선생님의 폭력이 생각났다. 4학년 선생님께 처음 뺨을 맞았던 기억이 난다. 한쪽 볼을 틀어잡아 반대쪽 뺨을 때리던 두껍고 큰 손.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 시절에는 선생님의 폭력이 문제 되지 않았다. 그리고 가족란에 새아빠의 이름을 적어낸 나에게 왜 아빠와 성이 다르다며 반 친구들 앞에서 다그치던 선생님도 생각난다. 엎드려뻗쳐를 하거나 책상에 올라가 무릎을 꿇은 채 몽둥이로 엉덩이나 허벅지를 맞은 일은 오히려 상처로 남지 않았다. 두렵고 아팠지만 다 같이 맞았기에 수치심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엄마가 학교에 자주 드나드셨다면, (물론 빈손은 아니었겠지) 건장한 남자 선생님께서 여자아이의 뺨을 그리도 세게 내리 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이 부자였다면 반 친구들 앞에서 모욕을 주지도 않았겠지? 아빠와 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말이다.


‘더 글로리’의 주인공이 안타까웠던 것은 철저히 혼자였다는 거다. 편히 쉴 곳도 어린 주인공을 지켜 줄 단 한 사람의 어른도 없었다. 엄마가 새아빠에게 폭력을 당하는 걸 숱하게 봐야 했지만, 그래도 나에겐 엄마가 있었다. 엄마가 매정하고 차가웠던 건 삶에 한 줄기 희망의 빛도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부부싸움이라도 한 날에는 아들들에게 화풀이를 하거나 톡톡 쏘아붙이는 나를 발견한다. 누구나 하는 부부싸움에도 자식에게 온정을 베풀 수 없는데 가정폭력에 망가진 몸과 영혼으로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던 엄마에게 따뜻한 보살핌을 받을 수 없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드라마 속 양호 선생님을 생각했다.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결혼을 해서 아이도 있고 직장을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라면. 사실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도 직장을 잃으면서까지 어려움에 처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었을까? 드라마를 보며 양호 선생님마저 아무 힘을 쓸 수 없다는 것이 절망스러웠다. 그리고 어린 시절 가정폭력을 당하는 엄마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절망감이 겹쳐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남의 가정사에 끼어들기는 어렵다.


나 또한 아들 친구의 가정폭력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아이는 엄마와 삼촌을 누나와 형으로 불렀다. 아마도 엄마는 아주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은 모양이다. 엄마는 따로 살고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과 함께 살았지만 삼촌은 정신적, 육체적 폭력을 가한 듯했다. 그리고 다른 어른들은 방관자이거나 가해자였다. 폭력의 정도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아이가 집을 안전한 곳으로 생각하지 않는 건 분명했다. 그러나 누구보다 가정폭력의 고통을 잘 아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더글로리’에 나오는 알면서도 외면하는 다른 어른들과 다를 게 없었다. 드라마를 보며 그들을 욕했는데 정작 현실의 나도 똑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요즘도 가끔 큰아이 친구가 생각난다. 아들과 같은 반이 아니라 얼굴 볼 일도 없는데 얄팍한 양심과 죄책감이 그 아이를 잊지 못하게 하나보다. 아마도 그 친구보다 더한 고통을 받고 있는 아이는 주변 곳곳에 있을 것이다.


꼭 돈이 많은 사람만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걸까? 마음과 용기가 더 중요할 테다.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지만, 그들을 외면하며 살지는 말자고 다짐했다. 적어도 있는데 없는 듯 투명인간 취급하며 살지는 말아야지.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넬 수 있는 어른이고 싶다. 지옥 같은 삶을 사는 아이들이 한 줄기 희망의 빛이라도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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