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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연이 Feb 20. 2023

불안이 나를 덮칠 때

불안은 한순간에 찾아옵니다. 아무 일도 없을 땐 지루하고 심심하긴 하지만 불안하진 않습니다. 별일 없는 시간들이 계속 이어질 거라 생각하지요. 하지만 작은 틈만 생기면 기다렸다는 듯 불안의 문이 활짝 열립니다.


걱정거리가 생기면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잠도 설치고 종일 걱정과 불안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그런 날은 왠지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불안하니 여유가 들어와 쉴 곳이 없습니다. 뭘 해도 안정이 안 되고 카페인을 과다 섭취한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이런 날은 뭘 하면 좋을까요? 맛있는 걸 먹어도 평소처럼 기분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끊은 술 생각도 나지만 술은 나에게 해만 끼칠 것을 압니다. 나의 불안을 더 가중시킬 뿐이지요.


햇빛이라도 쬐면 좀 나을까 싶어 일부러 조금 먼 카페가지 걸어갑니다. 바람은 불지만 미세먼지도 없고 햇빛으로 에너지가 샘솟는 것 같습니다. 카페에서 디카인커피와 샌드위치를 먹는데 새로 도전한 메뉴가 입에 맞지 않습니다. 그래도 대충 허기를 채우고 책을 읽습니다. 좋은 글들이 눈에는 들어오지만, 어쩐지 마음까지 와닿지는 않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불안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습니다. 광합성으로 풀릴 불안이 아닌가 봅니다. 나에게 생긴 걱정거리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마음이 답답하고 스스로가 한없이 무기력하게 느껴집니다.

저녁을 먹으며 좋아하는 유튜브를 봅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재밌지 않습니다. 심장이 제 멋대로 날뛸 땐 요가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냥 자 버리고 싶지만 아이들을 챙겨야 하기에 맘대로 자버릴 수도 없습니다.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을 떠올리다 ‘불안의 밤에 고하는 말’이라는 책이 생각났습니다. 오늘처럼 불안했던 지난날에 사놓았던 책인데 그새 불안이 도망가 잊고 지냈습니다. 그 책을 읽어도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지는 못합니다. 자고 일어나면 내일은 괜찮을까요?


저는 불안에 상당히 취약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뉴스를 굳이 찾아보지 않습니다. 그런 자신이 부끄럽고 죄책감이 듭니다. 분명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뉴스들이 있는데 나의 세상만으로도 힘이 들어 그들을 돌아볼 여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좋아하는 팟캐스트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여둘톡)’를 들었습니다. 거기서 2월 초에 이태원 참사 백일 추모제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 참혹한 일을 어찌 잊고 지냈을까요?


‘여둘톡’ 작가님들은 추모 행사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시며 분통을 터트리셨습니다. 듣기만 해도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 돼버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일을 하는 그들도 자신들의 안위만을 생각했기 때문이겠지요? 나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끼치지 말자고 생각하며 세상일에 무관심했습니다. 유가족에게는 무관심도 큰 상처가 될 것입니다.


이태원 참사 마지막 희생자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참사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어린 생명이 있다는 것을. 그는 16살 고등학생이었고, 이태원 참사의 트라우마와 2차 가해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입니다.


‘여둘톡’의 김하나 작가님은 말하십니다.

“지금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자신의 너무 사랑하는 가족이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러 위험한 것도 아니고 어느 거리에 갔다가 주검으로 돌아왔어요. 그것만으로도 정말 너무 힘들 텐데 국가는 이들을 반체제 인사처럼, 반체제 인사 그룹처럼 묶어버리고 고립시키고 있습니다. 얼마나 당황스럽고 억울하고 힘이 들까요?”


‘불안의 밤에 고하는 말’에서는 ‘뉴스를 보지 않는 것은 전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너무 부끄럽습니다. 이태원 참사 당시에는 그렇게 뉴스를 열심히 보고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머릿속에서 치워 버렸습니다. 나의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작은 걱정거리 하나도 해결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입니다. 가슴 두근거림만으로도 어찌할 바 모르고 허둥대는 무능력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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