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뭐라도 해야지
육고기를 먹지 않은 지는 6개월쯤 됐다.
비건 관련 책을 한 권만 읽어도 육고기를 끊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문제는 유제품과 알류, 해양생물들인데 한 동안은 비건에 가까운 식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비윤리적으로 대량 생산되는 우유와 달걀을 먹지 않아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한다.
인간의 무분별한 해양생물 착취는 바다 생태계뿐 아니라 환경까지 위협받는다.
동물과 지구를 위해서는 육류는 물론, 유제품과 알류, 해양생물을 제한하는 식사를 하는 것이 옳다.
지구를 위해서는 그 밖에도 실천할 수 있는 목록이 많다.
플라스틱이나 일회용 사용 줄이기, 탄소 발자국 줄이기,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쓰레기를 줄이고, 소비 줄이기 등등.
의식적으로 배달 음식을 줄이려고도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또한 새벽 배송은 이미 나의 삶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의식 있는 삶을 동경한다.
경제가 어려워 자연스럽게 소비가 줄었고, 비슷한 이유로 해외여행은 물론 제주도조차 마지막으로 언제 갔는지 기억이 안 난다.
경제 사정도 썩 여유롭지 않지만 해외여행이나 제주도 여행을 피하는 건 같이 살고 있는 고양이의 영향이 크다.
우리 집 고양이는 어쩌면 혼자 만의 자유를 만끽할지도 모르지만 집사라는 인간은 잠시만 떨어져 있어도 눈에 밟혀 여행을 마음 편히 즐길 수 없다.
하루만 집을 비워도 고양이를 그리워하며 죄책감에 시달리니 1박 2일로는 택도 없는 해외여행이나 제주도를 꺼리게 될 수밖에.
마음은 이 나라도 가고 싶고 저 나라도 가고 싶지만 국내에도 아직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이 수두룩 빽빽이다.
굳이 비행기를 타야 하는 해외여행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두 달 정도는 비건에 가까운 식단을 유지했다.
빵을 너무 좋아하지만 통밀빵이나 치아바타, 깜빠뉴 같은 거친 빵만 먹었고, 빵의 유혹을 이기지 못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카페에도 가지 않았다.
채식을 오래 하는 사람 중에서도 유제품을 끝까지 끊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는 말에 오기가 발동했다.
어울리지 않게 완벽주의 성향이라 시작을 했다면 내가 정한 원칙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하찮은 인내심과 자기 합리화에 능통한 나의 완벽주의 성향은 불같이 타오르다 눈 녹듯 사그라진다.
마음이 느슨해져 우유와 버터, 달걀이 들어간 식빵을 먹었을 때의 황홀함이란.
먹방을 좋아하는 탓에 의지가 더 빨리 시들었는지 모른다.
채식 관련 책을 읽은 후, 오랫동안 팬이었던 유튜버였음에도 고기를 먹는 모습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고, 고기를 보고 입맛이 떨어지는 경험을 처음 맛보았다.
첫 경험의 충격은 언저 그랬냐는 듯 요즘은 치킨이나 돈가스, 초밥, 제육볶음 먹방에 침을 질질 흘리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맛있겠다”라는 말에 흠칫한다.
고기를 먹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꿈을 꾼 적도 있다.
채식을 하기 전까지는 한식이 채식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최고의 음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만만한 밀키트에는 고기가 함유되지 않은 음식을 찾기 힘들었다.
꼼꼼히 고른다고 고른 두부쌈장에도 고기가 들어 있었다.
외식할 일이 있어 심사숙고 끝에 평소 잘 먹지 않던 비지찌개를 시켰는데 고기를 발견했을 때의 당혹감과 배신감이란.
한식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어처구니없는 실수였지만, 외식을 하려면 어느 정도는 포기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치밀하지 못한 나에게 외식은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는 두려움의 장소인 동시에 막힌 숨통을 트여주는 인정의 장소이기도 했다.
베이커리에도 무식자인 나는 티라미수에 왜 돼지고기가 함유돼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점심 주 메뉴였던 샌드위치는 닭고기나 햄이 들어가는 게 기본이었고, 그도 아니면 참치나 달걀, 마요네즈, 치즈가 들어 있었다.
그 많은 과자에는 왜 소고기가 함유되어 있는지, 초코 다이제스티브를 너무 먹고 싶었지만 살 수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과자는 잘만 찾으면 먹을 만한 게 꽤 있다는 것이다.
못 먹는 음식들이 많은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과자를 먹으며 풀기도 했다.
건강에는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프링글스나 감자칩을 죄책감 없이 먹을 수 있다는 쾌감은 내게 깜짝 선물과도 같았다.
한동안은 빵에 대한 아쉬움을 우유가 함유되지 않은 과자들을 찾는 재미로 달랠 수 있었다.
꼬깔콘(고소한 맛)이나 포카칩이 최애 과자가 되었고, 떡볶이에서 어묵을 더 좋아하던 내가 떡 위주로 먹게 됐다.
어묵이 맛있어서 좋아했던 것도 있지만, 떡은 탄수화물 덩어리라는 생각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밥을 먹는 것도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역시 탄수화물 공포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느 채식의사의 고백>이라는 책을 읽고 생각을 고쳐 먹었다.
그 책을 읽고 녹말(탄수화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고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2002년 세계보건기구는, 정제식품, 동물성식품(육류 및 유제품), 지방첨가식품들이 비만과 당뇨와 각종 심혈관질환을 전 세계로 전염시키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 연구에 의하면 2020년이 되면 전 세계 모든 질병 중 2/3가, 음식습관과 연관된 만성질병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존 맥두걸의 <어느 채식의사의 고백>
20년이 넘도록 녹말음식이 다이어트의 적이라고 믿고 살았는데, 지방을 축적하는 범인은 따로 있었다.
“탄수화물이 지방으로 전환된다는 경고메시지는 만들어진 신화에 불과하다. 인간이 아무리 많은 양의 탄수화물을 먹더라도 신체에 저장되는 양은 아주 하찮은 정도다.”라고 존 맥두걸 박사는 말한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를 살찌게 하는 것일까.
“고기, 생선, 계란, 유유, 유제품 등 고지방식품을 먹고 나면, 장이 그 지방을 흡수해서 혈관으로 보낸다. 거기에서 수만 개의 저장용 지방 세포로 전환된다.“
“복부지방은 어디서 오는가? 되풀이하지만, 지방을 먹으면 그것이 바로 지방이 된다.”
나는 유독 배가 많이 나왔다.
몸무게가 줄어도 굶지 않는 이상 뱃살은 거의 빠지지 않았다.
빠진다 해도 먹으면 먹는 대로 부풀어 오르곤 했었다.
나는 누구보다 고기와 달걀, 우유와 유제품을 사랑했다.
물론 탄수화물을 줄이고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하면 어느 정도 살이 빠지긴 한다.
하지만 속이 편치 않았다.
고기를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되었고, 유제품이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속이 더부룩했다.
동물성 단백질을 먹으면 포만감이 생겨 탄수화물 섭취를 줄일 수 있다.
한창 열심히 먹던 저녁 식단이 토마토 오믈렛이었는데, 모차렐라 치즈가 넘치게 들어가 맛이 좋을 뿐만 아니라 배도 든든했다.
살이 빠지는 느낌이 들진 않았지만, 탄수화물을 섭취하지 않았으니 건강한 식단을 먹고 있다고 믿었다.
먹을 때는 모른다.
그것들이 내 몸속을 돌아다니며 염증을 일으킨다는 걸.
고기도 유제품도 해산물도 먹지 않고 보낸 첫 달, 생리 전 증후군이 상당 부분 호전됐다.
생리 전에는 별일 아닌 일에도 짜증부터 났는데 짜증과 분노가 줄고 무엇보다 부정출혈이 사라졌다.
생리 전만 되면 올라오던 뾰루지도 사라졌었는데 최근 유제품에 열린 마음이 되고부턴 다시 종기 같은 뾰루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육고기는 그 이후로도 계속 먹지 않아서인지 부정출혈은 재발되지 않았다.
이제는 안다.
내 몸에 유제품이 맞지 않는다는 걸.
몸은 아는데 입이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녹말음식과 채소만 먹으면 당연히 살이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매일같이 밤 800g을 먹어도 살이 찌지 않을 줄은 몰랐다.
이로 반을 자른 밤을 숟가락으로 퍼 먹느라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에 굳은살이 베이긴 했지만 살은 찌지 않았다.
아침에는 고구마와 밤을 먹거나 호박죽, 떡 같은 걸 먹고, 점심에는 현미밥에 각종 나물을 넣고 고추장과 참기름(식물성기름은 포기할 수 없었다)을 넣고 한 대접 비벼 먹고, 간식으로 또 밤을 까먹고, 감자칩을 먹었음에도 살이 빠졌다.
저녁을 간소하게 먹는 건 오랜 습관이라 열량으로 따지자면 밤과 감자칩, 두부부침 같은 것들이 더 칼로리가 높았을 것이다.
밤을 그렇게 먹고, 감자칩까지 먹는데도 살이 빠진다고?
사실 채식을 결심한 건 환경 파괴와 동물학대에 대한 죄책감에서 비롯되었지만, 난 음식과 몸무게를 따로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다.
요리를 자주 해 먹는 부지런한 채식주의자라면 식단을 지키기가 더 쉬웠을 수도 있다.
비건인들이 괜히 직접 요리를 만들어 먹는 게 아니다
하지만 난 요리에 소질도 없거니와 음식 만드는 걸 너무나 귀찮아한다.
식물성이나 비건 식품을 사 들여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이것저것 만들어 먹기도 했다.
채식을 하며 토마토 마리네이드라는 걸 처음 접했는데, 심심하고 거친 빵과 곁들여 먹기 좋았다.
샌드위치가 먹고 싶어 감자 샐러드도 두세 번 만들어 먹었는데, 호박 샐러드를 만들어 먹으려던 때에 퍽퍽한 빵에 질려 버렸다.
뒤늦게 포테이토 매셔를 장만해 놓고 한 번인가 썼나?
빵에 질려 끝까지 미덥지 않았지만, 점심으로 현미밥을 먹기 시작했다.
가장 간단한 메뉴는 비빔밥이다.
달걀 프라이를 적어도 두 개씩 넣어 비며 먹었던 터라 달걀이 들어가지 않은 비빔밥은 상상할 수도 없었는데, 먹다 보니 익숙해졌다.
마음이 해이해져 유제품과 달걀이 들어간 빵을 먹기도 하지만 비빔밥을 먹을 때는 굳이 달걀을 넣지 않는다.
원래 한식을 먹을 때 밥보다 반찬을 더 많이 먹어 그런지, 동물성 단백질을 함께 먹어 그런지, 소화가 안 돼서 힘들었는데 달걀이 들어가지 않은 현미비빔밥은 한 대접을 먹어도 소화가 잘 되었다.
12시에 밥을 먹고도 3시쯤부터 배가 고파 밤을 파먹으며 배고픔을 달래야 했다.
몇 개월이상 거의 매일 밤을 먹다 보니 지금은 권태기에 빠졌는데 밤을 먹으면 좋은 점이 많다.
배가 고플 때 일단 밤부터 먹으면 군것질을 줄이게 되고 허기를 달래줘 과식을 하지 않게 된다.
밤을 하나하나 까먹으면서 내가 진짜 먹고 싶은 음식을 생각한다.
밤을 먹고서도 먹고 싶던 음식이 당기면 먹고, 배가 좀 부르다 싶으면 간단한 음식으로 저녁을 대체한다.
아쉬운 건 점심에 과식을 했다 싶으면 저녁에 샐러드를 먹곤 했는데, 내가 집에서 간단하게 해 먹을 수 있는 건 두부부침 샐러드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매일같이 저녁마다 들기름에 두부를 부쳐 먹었는데 질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유제품과 육고기는 나와 별로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채식에 관한 책을 꾸준히 읽지 않으면 채식을 하려 했던 마음이 점점 뭉툭해지다 못해 뭉근해져 슬라임처럼 처음 모양을 잊어버리게 된다.
독하게 끊은 유제품을 어떻게 다시 절제할 수 있을지.
아무래도 새로운 채식 관련 책을 읽어야 할 듯하다.
내 손으로는 절대로 육고기를 사지 않겠다는 다짐도 의미가 없어졌다.
혼자 산다면 지킬 수 있었겠지만, 집에는 고기와 햄을 좋아하는 두 아들과 남편이 있다.
내가 안 사면 남편이 사 오는 데 내 손으로 사지 않겠다는 다짐이 뭔 의미가 있겠는가.
첫째는 로제떡볶이를 좋아하고, 둘째는 페퍼로니 피자를 좋아하는데 억지로 못 먹게 할 수도 없는 노릇.
그들이 지구 환경이나 비윤리적인 공장식 가축 생산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어 신념이 생긴다면 또 모를까.
그럼에도 확실히 고기를 먹는 횟수가 줄었지만, 남편이 자신이 좋아하는 햄과 소시지를 잔뜩 사다 놓는 바람에 아이들의 식단에 다시 햄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가족이 모두 채식을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테지만, 지금은 혼자 고군분투하는 걸로 타협을 해야 할 듯하다.
냉장고에 나뒹구는 햄보다 초심자의 마음을 되찾는 것이 급선무다.
며칠 전에는 회가 너무 먹고 싶더니 오늘은 감바스가 먹고 싶어 혼났다.
시댁 모임 자리에선 해산물은 먹지만(고기를 안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유별나다 생각하시니) 평소에는 가능한 자제 하려 한다.
그것도 이제는 흐지부지 되는 감이 없지 않지만.
어제는 오랜만에 가족이 함께 칼국수 집에서 외식을 했다.
팥칼국수가 있었음에도 난 김치해물칼국수를 시켜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벌을 받은 것인지 내 신발을 다른 사람이 신고 가는 바람에 가게 아줌마가 내주신 신발을 신고 집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오래된 신발이고 좋은 브랜드도 아니지만 편하게 신던 신발이라 아쉬웠다.
살면서 신발을 잃어버린 적은 또 처음이라(아마도) 당황스러웠지만, 맨발로 걸어 나오진 않아도 돼서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다른 사람의 발 모양대로 자리 잡은 신발을 신는다는 것이 그리 내키지 않고(체취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심지어 내 발보다 작은 신발이라 뒤꿈치가 나와 불편했는데 내 신발을 신고 간 사람은 불편함을 못 느꼈을까?
신발을 돌려드리러 칼국수 집에 다시 가야 하는데 비싼 신발도 아닌 데다가 오래 신은 신발이라 변상을 받기도 애매하다.
신발을 찾지 못하면 변상을 해주겠다고 했지만 가게 사장님 잘못은 아니니.
생리 전에는 맵고 자극적인 음식이 당긴다.
어느 저녁에는 매콤한 감바스가 그렇게 먹고 싶었는데 마라샹궈로 대신했다.
마라샹궈는 재료를 내 맘대로 고를 수 있어 고기나 해산물을 넣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정신없이 너무 많이 먹는 바람에 다음 날 아침까지 소화가 안 됐지만.
나는 이기적인 삶을 살았다.
세상에 나만큼 힘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고, 우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는 데에만 몰두해 살았다.
아직은 혼자 있는 시간이 가장 편하고 소중하지만,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지구에는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생명체가 살아가고 있다는 걸 마음으로 느끼고 있다.
여전히 인간을 쉽게 믿지 못하지만, 책 속에는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들을 걱정하고 고민하며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랩걸>을 보며 식물의 생명력에 놀라 헐벗은 나무를 달리 보게 됐고, <삶의 발명>을 읽으며 지나가는 개만큼의 눈길도 주지 않던 새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두려움 없이 살기 위해서라도 세계에 대한 앎이 바뀌어야 한다. 세상을 이전과는 다르게 알아야 한다. 알았던 것을 잊어버려야 한다. 다행히 어떤 앎은 지도다. 새로운 앎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새로운 삶을 살게 한다.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을 알게 되어야 가능성이 태어난다.”-정혜윤의 <삶의 발명>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고 해서 모든 걸 바꿀 수는 없다.
나 한 사람이 육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뭐가 얼마나 바뀌겠는가.
하지만 적어도 나의 삶은 변화를 통해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며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육식인들에게는 유별나다는 소리를 듣고 채식인들에게는 할 거면 제대로 하라는 말을 들을지라도 내 삶의 작은 변화를 나만은 느낄 수 있다.
마냥 밝은 희망이 아닌 씁쓸하고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 돛단배 같지만 이 불안정한 희망이 내일을 기대하게 만든다.
오늘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하더라도 내일은 지킬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 말이다.
대책 없는 낙관이 오늘도 나를 살게 한다.
별일 없이 지나간 하루에 감사하고, 항우울제를 털어 넣으며 오늘의 비루함을 지우려 고양이가 먼저 자리 잡은 침대에 조심스레 몸을 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