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살이 배긴 상처는 어디로?
아픈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난 종종 아프길 바랐다.
죽길 바란 적도 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조금만 아파도 엄살을 부린다.
난 내가 아픈 정도가 아프다고 말해도 될 정도인지 아닌지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웬만하면 엄살이라고 여긴다.
병명이 정확지 않다면 나의 주관적인 통증을 신뢰하지 않는다.
고열이라도 나면 모를까.
주로 아플 때는 위염이나 생리통, 두통 때문이었으니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꾀병이라 여기기 딱 좋은 병명이다.
우울증에 시달렸을 초기에는 내가 우울증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저 너무 게으르고 나약해서, 하기 싫은 일과 사람들을 피해 어두운 내면으로 숨는다고만 생각했다.
우울증이 가장 심했던 이십 대 때는 불행했던 어린 시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침잠할 뿐 세상 밖으로 나오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다.
마치 우울증에 중독된 사람처럼 우울을 두 팔로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그러면서도 미치지는 않길 바랐다.
죽더라도 곱게 죽고 싶었으니.
나의 아픔은 누구에게도 공감받지 못했다.
생리통에 괴로워하며 바닥을 기어 다녀도 집에는 아프다고 말할 사람이 없었다.
생리통이 너무 심해 화장실에서 쓰러졌을 때도 혼자 알아서 정신을 차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나왔다.
이십 대 초반에는 십이지장궤양으로 고생을 했는데, 이 속 쓰림이란 것이 겉으로 티가 나는 것도 아니고 고통을 표출하는 방법은 인상을 쓰거나 짜증을 내는 것뿐이었으니 난 짜증 많고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속이 쓰림에도 짜증을 내지 않을 수 있다면 나의 짜증을 우울증의 탓으로 돌릴 수도 있겠다.
우울증에 걸리면 행동과 동기의 인과관계를 '우울'이라는 틀에 넣어 얼버무릴 수 있으니.
우울증 진단을 받았을 때, 엄마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딸이 우울증에 걸렸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나에게 죄책감을 느끼길 바랐지만, 엄마는 나의 나약함을 비난했다.
고생 한 번 하지 않고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서 마음의 병 하나 이겨내지 못한다고.
온실 속의 화초라...
난 한 번도 내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엄마는 내가 고통받을 만한 상황을 겪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새아빠에게 맞는 엄마를 7살 때부터 지켜봐야 했고, 엄마가 받은 폭력은 보복이라도 하듯 나에게 옮겨 왔고, 엄마는 오빠만을 끔찍이 아끼며 대놓고 차별을 했는데 ‘온실 속의 화초’라니.
마흔이 넘어 생각해 보니 엄마가 말한 '온실 속의 화초'에 담긴 뜻을 알 것 같다.
난 일을 하지 않으면 당장 내일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삶을 살지는 않았다.
반면에 엄마는 우리 집 가장이었고, 삼내매와 한 명의 인간이 엄마만을 바라보며 살았다.
엄마는 일을 거의 쉰 적이 없었다.
그래서 쉬는 법을 모른다.
모진 고생을 다 견디고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악착같이 삼 남매를 키워냈지만 진심으로 엄마의 희생을 감사해하는 자식은 없다.
엄마의 희생을 당연한 듯 받아먹고선 지난한 세월을 혼자 견뎌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엄마에게 많은 상처를 받았지만, 엄마가 없었다면 내가 어떤 인생을 살았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흰머리가 머리카락의 주인공인양 존재감을 뽐내며 쭉쭉 뻗어나가는 마흔의 나를 만날 수나 있었을까.
결혼한 지금도 엄마는 나의 울타리다.
세월의 풍파를 정통으로 맞아 성한 곳은 없지만, 제 몫은 충분히 해내는 울타리.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가 투명해서 평소에는 존재 유무도 모르고 살고 있지만 엄마가 돌아가시면 삶을 견뎌내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
말도 못 할 고통을 겪으며 치욕스러운 삶을 이어온 엄마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느낀다.
엄마가 곁에 없었다면 난 엄마를 영원히 이해하지도 용서하지도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보다 더 끔찍한 건 엄마의 유일한 사랑 방식인 ‘희생’을 뒤늦게 깨닫고 죽는 날까지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다.
한 동안 난 일찍 돌아가신 아빠를 원망했다.
왜 자신의 몸을 그렇게까지 방치하며 함부로 대했는지 따져 묻고 싶었다.
혹시 정말 죽고 싶어 그랬던 건 아니었냐며.
친할머니는 결혼해서 애까지 있는 아들에게 손찌검을 하셨다고 한다.
엄마와의 결혼을 반대해 엄마는 결혼식을 올리지도 못하고 시집살이를 해야만 했다.
다 큰 아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비수 같은 말로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건 얼마나 쉬웠을까.
그 상대가 미천하다 여겨지는 며느리라면.
그 시절 엄마가 연탄가스를 마시고 죽으려 하셨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친할머니는 자신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식이든 누구든 벌레만도 못하게 여기셨던 듯하다.
큰 아들인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나의 오빠가 있음에도 작은 아빠의 자식을 장손으로 정하시려 하셨을 정도니.
아빠는 오빠와 나를 끔찍이 아끼셨다니 떠나실 때 아쉬움이 없진 않으셨을 테지만 의심스러운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진심으로 삶을 등지고 싶었던 건 아닌지.
할머니의 분노에서, 어쩌면 그보다 더 큰 할머니를 향한 분노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지.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 아빠의 지난한 삶을 가늠해 보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림잡아야 하는지, 부모라는 이름으로 자식에게 얼마만큼의 모욕감과 치욕스러움을 줬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꿈에서라도 아빠를 만난다면 아빠에 대한 원망을 쏟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들어주고 싶다.
가슴에 묻힌 아빠의 슬픔을.
요즘 다시 위염에 시달리고 있다.
위염은 스트레스와 맵고 자극적인 음식 탓이다.
스트레스를 매운 음식을 먹으며 푸는 스타일이라 나에게 스트레스와 위염은 떼려야 뗄 수 없든 끈끈한 관계다.
난 아이들과 반려묘를 사랑한다.
그럼에도 종종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만다.
며칠 병원 신세를 지고 싶다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건강이 필수지만, 건강이 삶의 목표는 아니다.
쿨한 척 말하지만, 위만 아파도 암은 아닐지 걱정하는 쫄보다.
외할머니가 위암으로 돌아가셨고, 엄마도 위염으로 고생을 하고 계시니 가족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정말 죽기로 마음먹는다면 일단 끊었던 술부터 다시 마시면 된다.
알코올 중독자의 뇌는 술의 노리개나 다름없으니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될 것이다.
마시고 싶을 때마다 술을 마시고, 먹고 싶은 음식은 걱정이나 불안을 거치지 않고 위로 바로 쑤셔 넣으면 그만이니.
<마음을 보내려는 마음>에서 박연준 작가의 아버지는 죽고 싶다는 말씀을 하시고 10년 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작가의 아버지는 술을 통해 죽음에 가까워지고자 하셨다.
“나는 죽는 일의 어려움을 회복하려는 몸의 속성, 몸의 의지, 몸의 항상성을 통해 알았다. ‘시간을 들여’ 죽기까지, 몸은 절대로!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박연준의 <마음을 보내려는 마음>
나의 아빠는 아마 알코올 중독자였을 것이다.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며 담배까지 태우셨으니 몸이 남아나지 않았을 터.
죽고 싶다는 생각을 실행으로 옮겼지만 본인의 생각보다 빠른 성공에 당황하시진 않으셨을지.
유전자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믿고 싶지 않지만,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나의 몸에는 외가와 친가의 안 좋은 유전자가 세포 알알이 박혀있을 것이다.
이십 대 때 자살을 생각했던 마음은 어느 쪽의 유전자였을까.
어린 시절 엄마의 자살 시도를 직접 목격한 적도 있지만, 엄마를 닮은 것 같진 않다.
일흔두 살에 위암에 걸리신 외할머니께서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셨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겐 그만한 결단력과 실행력이 없다.
엄마와 외할머니처럼 온 힘을 다해 삶을 살아내며 부딪히고 넘어지기를 수없이 반복한 적도 없다.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어찌어찌 오늘을 버텨 냈지만, 이제 남은 건 죽을힘 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됐을 때의 절망을 난 알지 못한다.
나에게 있는 건 나약함과 자기 연민뿐이었다.
술을 마시면 잠시나마 고통을 잊을 수 있다.
고립된 외로움도, 나를 저주하던 목소리도, 세상에 대한 원망도 술이 들어가면 흐릿해진다.
참고 봐줄 만할 정도로 뭉툭해진 자아는 삶의 의미나 존재 이유 따위 개의치 않기로 한다.
술과 맛있는 안주가 있는 한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
밝은 아침 햇살에 발가벗겨진 자아가, 수치심에 치를 떨며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지언정, 술을 마실 수 있는 저녁은 어김없이 돌아온다.
요즘 내가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건, 실낱같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며 잊을 수 있던 고통은 날이 갈수록 몸집을 키워 나를 집어삼키려 했다.
맨 정신으로 마주할 수 없던 현실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내가 두려워 벌벌 떨었던 것보다 거대하진 않았다.
나의 과거는 결국 지나갔고, 현재의 난 늙어가고 있다.
늘어진 살과 주름, 흰머리는 싫지만 세월이 흐르며 어린 시절 상처에 굳은살이 박였다.
최근에는 그 굳은살을 살짝 떼 보기도 했다.
분명 아직은 아물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굳은살을 떼어낸 자리에 어떤 이질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를 정의하던 상처는 더 이상 나와 다른 이를 구분 짓지 못한다.
굳은살을 떼어낸 자리가 흔적 없이 사라진 건 아니다.
꿈속에서 여전히 난 30여 년 전의 그 집에 있지만, 그 집에서 겪었던 고통과는 무관하게 난 그저 조급할 뿐이다.
화장실이 막혀 볼일을 못 보거나 학교에 갈 시간이 코 앞인데 머리도 감지 못하고 있는 종류의 문제만이 산재해 있을 뿐이다.
“당신이 지금 이 에세이를 읽고 있다면 당신은 분명 어떤 특권을 가진 사람이다.”-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
나는 최근에야 알았다.
나에게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엄마’라는 특권이 있었다는 걸.
특권을 누리고 있으면서 특권인 줄 몰랐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가 가진 특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 한다.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삶이 지금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사치다.
지난날의 상처만을 생각하며 시간을 허비하면 자식들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엄마의 삶은 뭐가 되는 것인가.
내가 받은 특권에 건강한 삶으로 보답하고 싶다.
그럼에도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이 간절할 때가 있다.
꾀병은 그날을 위해 아껴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