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연이 Jan 05. 2023

고작 1kg 차이일 뿐이야

겨울의 몸무게

가을부터 입이 터졌다. 식이장애를 걱정했던 여름의 나를 비웃듯, 기다렸다는 듯이.


금주를 하고 다이어트를 시작하면서 스스로 정한 마지노선이 있다. 작년 11월부터 그 선을 넘었고, 선을 중심으로 오르락내리락한다. 넘으면 우울했다가, 간신히 선 안으로 진입하면 가슴을 쓸어내린다. 고작 1kg 차이일 뿐인데.


1kg에 하루의 기분이 달렸다니. 삶이 너무 팍팍하다. 스스로 피곤한 삶을 선택한 것이다.


1, 2kg 차이는 보통 나 밖에 모른다. 얼굴이 좀 부었다고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귀한 보물처럼 꼭꼭 싸매여 숨겨진 뱃살을 누가 알겠는가. 게다가 난 의식적으로 배에 힘을 주고 다닌다. 오랜 골칫덩어리였던 뱃살.


난 먹으면 다 배로 갔고, 납작배가 제일 부러웠다. 꿈의 납작배를 작년 여름에 살짝 맛볼 수 있었다. 힘을 주지 않아도 쳐지거나 불룩 튀어나오지 않던 배는 나의 것이 아닌 듯 낯설었다. 그래서 더 불안했나 보다. 오래 유지할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알았기에


요즘 나는 식탐과 낮잠에 놀아나고 있다. 소파에 누워 포근한 이불을 덮고 있으면 잠이 솔솔 쏟아진다. 낮잠을 두 번 자는 날에는 자괴감마저 든다.

배를 채우고 책을 읽고자 편한 자세를 취하면 어김없이 낮잠 행이다. 편안하고 따뜻한 소파는 나를 놔주지 않고, 낮잠은 초콜릿처럼 달콤하다.


먹고 싶은 것은 또 왜 이리 많은지. 위만 작아지고 식탐은 그대로다. 예순이 넘은 친정엄마도 같은 말을 하셨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위에 부담이 갈 정도로 많이 먹으면 바로 화장실에서 게워내신다는 걸. 그래야 속이 편해진다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시는데 건강이 걱정됐다. 건강에 좋지 않다고 말했지만, 오랜 습관을 바꾸실리 없다.


나는 배를 보면 몸무게를 어림할 수 있다. 목욕탕에서 지지는 걸 좋아하는데 탕을 나와 내려다본 배 위에 하얀 줄이 쫙쫙 그어져 있었다. 배안으로 접힌 살은 뜨거운 물로부터 귀한 화초처럼 보호를 받은 것이다. 그 후로 열탕을 들어갈 때마다 배가 신경 쓰였다. 배가 접힐 것 같으면 의식적으로 배에 힘을 주고 허리를 쫙 폈다. 하지만 나 말고는 아무도 신경 안 쓴다. 다른 사람 배 위의 줄 따위.


몸무게에 대한 강박도 유전일까? 아니면 그저 여자라서 자연스럽게 강박적으로 삶에 녹아든 걸까?

엄마가 몸무게에 집착하지 않고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다. 엄마도 나와 같은 마음이시겠지. 하지만 우린 안다. 스스로가 살을 빼야겠다고 생각하는 한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걸. 남의 시선을 신경 쓰며 시작된 다이어트가 다른 사람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까지 신경 쓰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만족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말랐다고 해도 스스로 살이 많다고 생각하면 다이어트를 지속할 수밖에 없다.


왼쪽 아랫니 두 개가 임플란트를 기다리고 있다. 오른쪽으로만 씹느라 턱이 아프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씹는다. 위가 작아져 소화가 안됨에도 꾸역꾸역 집어넣는 꿋꿋함. 집념과 무식함으로 위가 제 크기를 찾아가고 있다.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1kg 정도는 눈감아 주기로 했다. 1kg만 더 더 하며 살을 빼온 것처럼 마지노선이 1kg씩 늘어날 수도 있다. 여름의 몸무게와 겨울의 몸무게가 같을 수는 없지. 먹고 싶은 음식을 맛있게 먹고, 운동을 꾸준히 하며 겨울을 나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라면이 뭐라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