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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연이 Nov 24. 2022

라면이 뭐라고

먹방을 즐겨보는 다이어터

의식적으로 라면을 먹지 않은지 8개월이 넘었다. 물론 다이어트 때문이다. 금주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이어트를 하게 됐는데 탄수화물과 나트륨으로만 이루어진 라면으로 배를 채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라면에 대한 두려움. 다이어트를 한다면 당연스럽게 금기해야 할 음식으로 대표되기에 라면을 먹으면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 같았다. 하나는 양에 차지 않아 두 개는 먹어야 할 것 같고 그러면 또 자책하며 괴로워하겠지.

지금도 맛있는 김치만 보면 라면부터 생각난다. 딱 두 개만 끓여서 매콤한 김치에 후루룩 먹고 싶지만,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한다.

난 내가 라면을 좋아하는 건지 싫어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십 때부터 라면에 두려움이 있었기에 라면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내 자신을 세뇌시켜 왔는지도 모르겠다. 라면만 먹으면 찾아드는 무거운 죄책감. 떡볶이나 치킨, 피자를 실컷 먹는 것보다 라면에 왜 그리 죄책감이 들었는지. 그리고 그 죄책감은 마흔이 넘은 지금도 여전하다.


며칠 전에 찜질방에 갔는데 마침 식당이 쉬는 날이라 먹을 것이 컵라면밖에 없었다. 찜질방에서 저녁을 해결할 생각에 배고픔을 참고 왔건만 컵라면이라니. 짜증 나고 실망스러웠지만 배고픔에 굴복해야만 했다. 그런데 아들들과 수다를 떨며 먹는 컵라면은 꿀맛이었다. 짜증 났던 마음이 어느새 행복한 만족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그랬는지 죄책감도 들지 않았다. 컵라면을 먹고 시원한 식혜를 들이켜니 더없이 행복했다. 라면을 먹고 죄책 감 없이 만족스러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니. 라면이 다시 보였다.


라면이 뭐라고 먹고 싶으면 먹으면 되는데 난 왜 이렇게 어려운 거 투성인지 모르겠다.

나는 ‘입 짧은 햇님’의 먹방을 즐겨본다. 양도 줄었거니와 맘껏 먹을 수 있는 성격도 아니기에 햇님을 보며 대리만족을 한다. 한 번은 시청자 중에 누군가가 다이어트 중이라 야식을 먹지 못한다고 하니 햇님이 그러면 치팅데이는 언제냐고 물으셨다. 그 말에 또 다른 분이 ‘에브리데이 치팅데이’라며 우는 이모티콘(ㅠㅠ)의 댓글을 달았나 보다. 그걸 보신 햇님이 “에브리데이 치팅 데이면 매일 행복한 거 아니에요? 근데 왜 우세요?”라고 물으셨다. 대다수의 여자들이 많이 먹은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햇님처럼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다. 햇님은 배부르면 행복하다고 하시는데 난 배가 부르면 불안하다. 너무 많이 먹은 건 아닌지 걱정부터 되고 소화를 못 시켜 괴로울 것을 뻔히 알기 때문이다.

햇님이 라면을 드시는 날에는 일명 ‘라면 부대’들이 들어와서 시청자 수가 훅 올라간다. 유독 라면 먹방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얘기다. 그들이 정말 라면을 좋아하고 자주 먹어서 라면 먹방을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나처럼 라면을 자주 먹지 못해서 대리만족을 느끼기 위해 좋아하는 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햇님의 라면 먹방이 라면에 대한 욕구를 풀어주는 건 사실이다. 물론, 반대로 욕구에 불을 붙이는 날도 있지만, 나는 대체로 대리만족을 잘 느끼는 편이다.


라면이 좀 더 영양가 있는 음식이었다면 이렇게 죄책감이 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라면이 인기 있지 않았을 테지.

한 번은 아들이 물었다. “왜 맛있는 거는 다 몸에 안 좋은 거야?”

몸에 좋고 맛있는 것들도 많지만 설탕이 많이 들어가고 조미료가 들어간 음식들을 자제시키다 보니 든 의문이었을 테다.

영양가 없는 것이 불만이라면 닭가슴살이라도 넣어 먹으면 좋으련만 그러면 또 라면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짜고 얼큰한 감칠맛의 끝판왕. 몸에 안 좋을 것을 알면서도 당기는 그 맛. 처음에는 국물 맛에 라면을 먹었는데 요즘에는 면을 후루룩 들이키는 맛에 라면을 먹는다. 국물 없이 면만 먹는 사람을 보면 왜 그렇게 라면을 맛없게 먹나 싶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된다. 국물과 함께 먹지 않아도 라면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입 짧은 햇님’의 라면 먹방을 보고 내일은 기필코 라면을 먹으리라 다짐했는데 끝내 먹지 못했다.

이십 대 때는 다이어트에 더 열을 올리던 시절이었다.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기에 어떻게 해서든 살을 빼고 싶었지만 집착하면 할수록 폭식과 폭음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그때 라면이 단골 메뉴였다. 평소에는 다이어트 때문에 꾹 참고 있었던 것이 한번 입이 트이고 이성의 끈을 놔 버리면 억누르고 있던 것부터 찾게 된다.

지금은 그때처럼 다이어트에 열정적이진 않다. 먹고 싶으면 떡볶이고 피자고 치킨이고 다 먹는다. 라면만 먹지 않을 뿐.


남편은 라면 없이 못 사는 사람이고 아들들도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라면 먹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벌써 라면에 중독돼가고 있는 것이다. 남편이나 아들들은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라 아무런 부담 없이 라면을 먹는다. 그것이 부럽고 신기하다. 아들들은 너무 살이 찌지 않아서 몸에 나쁘지만 않다면 더 자주 먹이고 싶은 마음이다. 남편을 봐서는 라면을 자주 먹는다고 살이 찔 것 같지도 않지만.


찜질방에서 아들들과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라면을 먹고 라면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변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에 와서도 라면을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럴 수 없었다. 하지만 라볶이에 든 라면은 또 잘 먹는다. 사리로서의 라면에는 죄책감이 덜 드나 보다.

언제쯤 라면을 죄책감 없이 먹을 수 있을까? 금주를 하고 라면을 먹는 것이 더 힘들어졌다. 이성을 마비시킬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나에게 라면은 다이어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마른 몸에 집착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라면과도 가까워지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라면을 먹고 싶은 마음에 풀무원에서 나온 라면을 쟁여 놓았다. 튀기지 않은 면이라 죄책감이 덜 들 것 같다. 이 라면은 유통기한이 지나기 전에 먹을 수 있으려나?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과 집착이 라면 하나에도 이렇게 고민하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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