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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Jul 19. 2021

사는 건 어차피 고기서 고기다

1.

내 친구 중에 K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또 M이라는 친구도 있습니다.

3명은 자주 만나는 친한 관계이죠. 그런데 K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기분파로서 만날 때마다 외치는 말 한 마디가 있습니다. “인생 머 있어!” 라는 건배사와 함께 술잔을 부딪치곤 하죠. 그런 K는 M이 적으이 못마땅합니다. 왜냐하면 한참 분위기가 오를 때 M이 호응을 잘 못해주기 때문입니다. M은 어떤 때보면 사람이 좀 바보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영락없이 저녁 9시쯤 되면 사람이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좀 불안해 보이는데 아닌 게 아니라 그때쯤 집에서 전화가 오기 시작합니다. 통화를 하는 걸 옆에서 들은 적이 있는데 무슨 큰죄라도 진양 안절부절 못하고 쩔쩔매는데 보기가 좀 딱해 보일 정도입니다. 한 마디로 M은 와이프와의 관계에서 보면 을 중의 을로 보입니다. 통화를 끝내고도 M은 나사 풀린 사람처럼 멍하게 있다 은근슬쩍 조용히 사라집니다. 집에서 불호령이 내렸기 때문에 본인도 어쩔 수없이 귀가를 서두른 겁니다. K는 혀를 차며 M의 처신을 타박합니다. ‘우리는 저렇게 살지 말자’ 라고 결의하면서 못난 놈이라고 흉을 봅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만났는데, 9시가 다 되었는데도 M이 별 동요를 하지 않습니다. 10시가 넘었는데도 의연하게 어디 2차 재미있는 데 없냐고 호기를 부리고 여유 만만합니다.

우리는 경악했죠. 세상에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K는 나의 얼굴을 쳐다보며 의아스러운 표정을 지었죠.

우리는 오케이 하며 “인생 머 있어!” 라고 큰소리로 합창하며 원샷을 하고 일어섭니다. 우리는 그렇게 2차 3차를 갔더랬습니다. 여전히 M의 휴대폰은 조용했고, 우리는, 특히 K는 뿌듯한 얼굴로 '내가 교육 좀 시켰더니 M이 대오각성했다' 라며 자화자찬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리가 좀 불안해집니다. 그 시간 때는 나도 좀 걱정되기 시작합니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거든요. 그때 갑자기 휴대폰 소리가 울립니다. 당연히 M이 일어나 밖으로 나갈 줄 알았더니 K가 전화를 받으러 나가더군요. 그런데 전화를 받고 오는 K의 얼굴이 영 어둡습니다. 말수가 적어지고 멍한 표정이며 들썩들썩 뭔가 좌불안석입니다. 아마도 집에서 전화가 온 거 같은데 와이프한테 한소리 들은 거 같습니다.

상황이 변했습니다. M은 여유롭기 그지없는데 큰소리치던 K는 '인생 머 있어'가 아니라 진짜 머가 있는 거 같습니다.

나도 중간에서 영 입장이 난처한데 K가 먼저 ‘나 먼저 일어날게’ 하면서 백기투항을 합니다. M은 꽁무니를 빼는 K를 보며 야릇한 미소를 짓습니다.   

 

2.

수박 한 덩어리 사러 마트에 들렀습니다.

과일 코너를 갔더니 한여름철이라 수박을 많이 갖다놓고 판매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수북이 쌓여있는 수박 앞에서 갑자기 신중해집니다.

남자가 쪼잔하게 수박 한 덩어리 는데 신중씩이나 기한다니 좀 겸연쩍습니다만,

그래도 제일 크고 싱싱한 놈을 골라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놈을 고르면 저 놈이 큰 거 같고, 저 놈을 찍으면 이놈한테 눈이 가고 얼른 결정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어떤 아주머니가 와서 스윽 훑어보더니 노련하게 수박 한 덩어리를 골라 끈에 넣습니다. 그 아주머니가 고른 수박이 되게 커보였습니다. 아뿔싸! 좀 전에 그 수박을 내가 점찍어놨는데 선수를 놓쳤습니다. 나는 할 수 없이 그 중에서 가장 커 보이는 수박 한 덩이를 골랐는데 막상 들고 가려니, 이런, 제일 작게 보인 겁니다.

내 눈은 믿을 수 없습니다. 아마 수박은 정직했을 겁니다. 수박은 정직한데 내 눈이 정직하지 못해서일 겁니다. 어느 놈이고 다 똑같은 크기일 텐데 내 눈이 간사했던 거지요. 거창하게 말하면, 세상은 그대로이고 정직한데 내가 세상을 삐딱하게 보고 있거나 기대가 컸기 때문에 불만이 생기는 것일 겁니다.    


3.

황희 정승에 관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황희 정승의 집에 있던 머슴 둘이 서로 자기가 옳다고 옥신각신 다투게 됩니다. 둘이 아무리 다퉈도 판가름이 나지 않자 황희 정승에게 가서 따져보자고 합니다. 먼저 머슴1이 황희 정승에게 자기의 주장을 펼치며 상대방을 탓합니다. 그러자 황희는 “그래, 네 말이 맞다.”라고 말합니다. 다음 머슴2가 와서 또 자기주장을 펼치자 황희는 “어, 듣고 보니 네 말이 맞네.” 라고 말합니다. 그걸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부인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묻습니다.

“아니 양쪽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데 어떻게 둘 다 옳을 수가 있습니까?” 라고 하니 황희 정승이 대답합니다. “어, 그러네. 부인 말도 맞구려.”    


4.

나는 불행하거나 실망스러운 일을 겪으면 스스로 위로하듯, 또는 속상한 일을 겪은 사람을 보면 위로랍시고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다. 이 정도이길 얼마나 다행이야. 액땜했다 생각하자.”

삶은 결코 어느 한편으로 유리하게 끌리거나 반대로 불리하게 작용하는 건 아닙니다. 호사다마이고 새옹지마입니다. 세상 살다보면 갖가지 일을 겪는데 어느 구름에 비 들었는지, 햇살이 들었는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저 나의 행복과 불행은 공평하게 절반씩이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한 일입니다. 실제로도 그런 거 같습니다.

삶을 거시적으로 보면 수많은 일상과 크고 작은 사건들은 다 피장파장입니다.    

내가 자주 가는 삼겹살 고깃집이 있습니다.

그 식당 벽면에는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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