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에 관한 로망-
부부관계에 있어 남자들의 요망사항 중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내 ‘마님’에게 ‘서방님’이라는 호칭을 들어보는 것이다.
나는 유교사상에 찌든 가부장 남성도 아니고 권위적인 사고를 가진 꼰대도 아니다.
나는 누구보다 여성을 존중하고 페미니스트 주장에 귀 기울이기도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서방님!’ 이라고 한번 불러주는 게 그리 어려운 것인가?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지위가 낮아지는 것도 결코 아닌데 말이다.
옛말에 ‘현녀경부(賢女敬夫)’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어진 여자는 남편을 공경한다는 뜻이다. 마음속으로까지야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립서비스 정도로 불러만 줘도 감지덕지이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그 호칭 한번 들어보려고 오늘도 나는 마님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쓰는 중이다.
나는 비교적 집안일에 협조적이다. 설거지는 내 취미생활 중의 하나이다. 설거지야말로 마님이 시키지 않아도 일부러 한다. 깔끔하게 설거지를 하고 나면 때가 벗겨져나간 것처럼 심신이 개운하다. 몸이야 좀 고되지만 필링이 되는 느낌이다.
두 번째 재활용쓰레기통 비우기도 기본이다. 한 김에 까짓것 음식물쓰레기도 버려줄 수 있다. 내 임무 중의 또 하나는 빨래 개키는 것이다. 예전에는 빨래 너는 것도 포함되었지만 요즈음은 빨래건조기 때문에 개키기만 하면 된다. 티브이 보면서 빨래 개키는 것이야 식은죽 먹기다. 청소기로 이곳저곳 쓱쓱 미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 별 바쁜 일도 없으니 마트와 세탁소까지 다녀오지 머.
일을 다 끝내고 나면 마님이 흐뭇한 얼굴로 수고했다고 다소 격려를 해준다.
이쯤 되면 어떤 남자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혀를 찰지 모른다. 우리 엄마가 보면 남자가 그 꼴이 뭐냐며 내 등짝을 세게 내리칠지 모른다.
나는 외벌이고 마님은 전업주부이다.
마님은 집안일에 관한한 대장이지만 주로 지휘권을 행사하는 편이다.
나는 그래도 그다지 불만이 없다. 지금껏 거의 그렇게 생활해왔고, 그런 일 좀 했다고 남자로서 내 위상이 실추된다거나 평등해야 할 부부로써 내가 손해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마님의 기세등등한 태도에 주관 없이 휘둘리거나 쪽도 못 쓰고 쥐어 사는 쪽팔린 남정네도 아니다.
오래 전에 최희준 가수가 부른 ‘엄처시하’ 라는 노래가 있다.
엄처시하(嚴妻侍下), 그 뜻은 엄한 아내 아래에서 아내를 모시며 살아가는 남편이라는 말이다. 그 노랫말은 이렇다.
열아홉 처녀때는 수줍던 그 아내가
첫아이 낳더니만 고양이로 변했네
눈밑에 잔주름이 늘어가니까
무서운 호랑이로 변해 버렸네
그러나 두고보자 나도 남자다
언젠간 내손으로 휘어 잡겠다
큰소릴 쳐보지만 나는 공처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아저씨들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어쩐지 서글프고 씁쓸하다.
하지만 나는 살뜰히 챙기는 애처가도 아니지만 공처가도 결단코 아니다.
세계와 가정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서 그냥 알아서 처신하는 것이지,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비굴하게 살지는 않는다.
나는 마님이 시키고 말건 웬만하면 군소리 하지 않고 더 알아서 하는 편인데, 까놓고 말해서 그놈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서다.
그러나 우리 마님은 내가 부탁하는 것은 좀처럼 들어주지 않는다.
오늘도 마님의 안색을 살피며 살짝 떠보았다.
“뭐야, 서방님? 에이 싫어.”
“한번 불러봐 주라. 응?”
“닭살 돋는단 말이야. 난 못해!”
“진짜 너무하네, 그래 관둬라!”
나의 간곡한 청을 마님은 가납하지 않으셨다.
코맹맹이 소리로 쌩긋쌩긋 애교를 떨어달라는 것도 아니고
다만 이름 한번 불러주는 게 뭐 그리 어렵고 닭살 돋을 일인가...
괜히 말 꺼냈다가 무참히 거절당하고 보니 뻘쭘하고 민망했다.
그리고 솔직히 서운했다.
그 청이 수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담스러운 것도 아닐 터, 살아온 세월이 몇 해인데 그까짓 립서비스 한번 못해주는가 말이다.
오히려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방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서방님 소리를 들으려면 서방님 같은 사람이 돼봐. 돈도 많이 벌어오고 호강시켜 줘봐, 열 번도 백 번도 한다.’
마님은 연애시절과 신혼 초기에는 나를 ‘오빠’라고 불렀었다.
애를 낳고서도 한동안은 계속 오빠라고 부르더니 언젠가부터 ‘○○이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 ○○아빠라는 호칭이 솔직히 별로다. 나는 나고 내 마음은 아직 청춘인데 그 호칭이 주는 느낌 그대로 그냥 누구 아빠로 살아야 하는 의무적인 삶이 싫었다. 그 호칭 변화와 함께 예전에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애교도 사라져버렸다. 예전 호칭으로 돌아가진 못하더라도 그 문제를 한번 짚어가야 할 필요성을 느꼈었다.
그래서 벼르고 있던 중에 최근에 그 문제를 거론했던 것이다.
‘여보, 자기야’라는 호칭도 있지만 우리는 사대부집안 배운(?) 사람답게 호칭도 점잖고 품격 있게 부르면 서로가 좋지 않겠는가 라고 설득했다. 나도 종종 마님을 ‘○○엄마’라고 부르긴 했지만 언제든지 ‘부인(夫人)’이라고 부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고 실제로 그렇게 부르기도 했다. 부인은 군부인의 준말로 군주(君主)의 아내라는 말이라고 한다. 흔히 자기 아내를 마누라라고 부르곤 하는데 사실 마누라는 옛날에는 아내의 극존칭으로 사용했다고 하지만, 요즘 시대에는 왠지 천박하고 무시하는 느낌의 뉘앙스가 있어 개인적으로는 그 호칭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나의 거듭된 상소에도 불구하고 마님은 통촉하지 않았다.
실망을 한 나는 한숨을 내쉬며 궁리하다 이렇게도 제안을 해보기도 했다.
“서방님이라고 불러주면 불러줄 때마다 1만원씩 준다.”
“진짜?”
“그래, 야, 돈 벌기 너무 쉽다.”
“....”
마님은 내 파격적인 제안에 관심을 보이더니 잠깐 고민하는 거 같았다.
마님이 그 미끼를 덥석 물어주기를 나는 기다리며 마님의 입에서 ‘서’자가 언제 나오나 입술만 쳐다봤다. 마님의 입술이 살짝 움직이더니, 이렇게 말하였다.
“그래도 나 안할래!”
“엥, 왜?”
“도무지 그 말이 안 나와.”
“뭐!”
나의 작전은 또 한번 실패로 돌아가고 상처 입은 영혼은 황망히 집을 빠져나왔다. 동천을 터벅터벅 걸으며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돈을 더 쓸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들었다.
그때 아름다운 사자성어가 내 머리에서 노래를 불렀다.
‘거안제미(擧案齊眉)’
아! 오늘도 까칠한 마님을 모시고 살며 삼식이, 간큰 남자 어쩌고 하는 비아냥거리는 소리까지 들어야 하는 어깨 축 쳐진 남정네여, 옛날에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었다네.
『후한 때 양홍(梁鴻)이란 학자가 있었는데, 그는 비록 집은 가난하지만 절개만은 꿋꿋해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가 지은 〈양홍전〉의 한 구절에, '매귀처위구식 불감어홍전앙시 거안제미(每歸妻爲具食 不敢於鴻前仰視 擧案齊眉;양홍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 아내는 늘 밥상을 차려 양홍 앞에서 감히 눈을 치뜨지 않고 밥상을 눈썹 위까지 들어올려 바쳤다.)'라는 말이 보인다. 사실 양홍보다도 그의 아내가 더 대단하다. 남편을 깍듯이 공경하고 극진한 내조로 집안을 화목하게 꾸려 남편으로 하여금 마음놓고 학문을 파고들어 명저(名著)를 저술할 수 있게 하였으니 말이다.(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우리는 양홍의 아내가 그립습니다.
“역시 서방님이예요!”
그 한 마디는 황량한 들판에 봄이 오듯 우리의 힘을 불끈 솟구치게 합니다.
나의 로망.
마님, 어떻게 안될까요? ^^
나는 비친 달이고 마님은 나를 존재하게 한 하늘의 둥근 달이 될 터인데...
♣‘마초이즘’을 주장하는 글은 절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