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버텨보는 해외살이 1

엄마는 아파도 아프면 안 된다.

by Jinny

해외살이 3년 차

기러기 엄마 홀로 육아 3년 차



큰아이가 B형 독감에 걸려 학교를

가지 못하고 있다.
작은 아이는 학교에 보내고,

큰아이는 집에서 돌보고 있다.

아이를 간호하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해외에서 홀로 육아하는 기러기 엄마에게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일까 하고.

아이들이 아플 때도 물론 힘들다.
나는 아이가 둘이기 때문에 동시에

아프지 않은 이상 전염을 막기 위해 한 아이를 격리시키고 한 아이에게 붙어서 병간호를 해야 한다.

그래서 더 힘들다고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가장 힘든 순간은 아이가 아플 때가 아니다.

엄마인 내가 아플 때다.

말레이시아에 와서 첫 이사를 할 때였다.

기존에 살던 곳에서 다른 레지던스로

이사를 해야 했는데 이사업체가 짐을 싸주거나 정리를 해주는 방식이 아니어서 나는 결국 셀프 이사를 해야 했다.



다행히 이전 집은 풀옵션 콘도라 가전과 가구는 그대로 두고리 가족의 짐만 옮기면 되는 상황이었기에 혼자서도 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혼자 짐을 싸고 옮기며 이사를 한 것이
결국 몸에 무리가 되었던 걸까.

해외 이주 후 1년 동안 한 번도 아프지 않았던 내가
결국 뎅기열에 걸리고 말았다.



뎅기열은 모기를 통해 전염되는 병으로
고열과 전신 근육통, 구토 증상을 동반하고
대부분 입원을 권유받는다.


하지만 나는 두 아이의 엄마이고
이곳에는 아이들을 맡길 사람이 없다.


입원은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몸이 부서질 것처럼 아파도
아이들 밥을 챙겨야 했고,
학교에도 직접 운전해 데려다줘야 했다.

배달 음식을 시켜도 한국처럼 집 문 앞까지
가져다주는 구조가 아니라
직접 로비까지 내려가 찾아와야 했다.

병원 역시 스스로 운전해 가야 했고
그 모든 일이 너무 버거웠다.

학교를 보내지 말까 수없이 고민했지만
결국 또 아이들을 태우고 나가야 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말하고 싶었지만
괜히 걱정만 끼칠 것 같아 차마 말하지 못했고
남편 역시 당장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게 지옥 같던 2주를 겨우 버텨냈다.

몸이 회복되는가 싶었지만 면역이 떨어졌던 탓인지
대유행 때도 피해 갔던 코로나에 결국 걸렸다.


매일 40도가 넘는 열이 오르고
온몸의 근육통은 가라앉지 않았으며
병원에서는 또 입원을 권했다.

하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집에서 버텨야 했다.

너무 아파 귀가 멍해지고 눈앞이 흐려졌고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러다 문득 너무 무서워졌다.



내가 쓰러지면
아직 어린아이들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까.

내 걱정이 아니라 아이들이 걱정됐다.

엄마가 일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아이들이 두려움 속에 남겨질까 봐
그 생각이 너무 무서웠다.


아이들을 위해 시작한 해외살이인데
내가 무너지면 오히려 아이들에게
큰 상처만 남기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해외에서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알 것이다.

가장 힘든 순간은 아이들이 아플 때도 아니고
생활비를 걱정할 때도 아니다.


엄마인 내가 아파 아이들을 돌볼 수 없을 때다.


그때 나는 다짐했다.

나는 아이들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기에
쉽게 무너지면 안 된다고.

아파도 버텨야 하고 힘들어도 견뎌야 하고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버텨야 한다.


그렇게 이곳에서 한걸음 더 단단해진 엄마가 되어간다.


가장 힘들고 두려웠던 순간을 떠올리다 보니,
아직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학교에서 아이를 잃어버렸던 날의 이야기다.

추후 이어지는 글로 그 일을 적어보려 한다.






작가의 이전글"너희 남편은 어디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