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새해를 사는 아이들
길고 긴 연휴가 드디어 지나갔다.
큰아이가 독감에 걸려 연휴보다 더 일찍 학교를 쉬게 되면서 이번 방학은 유난히 더 길게 느껴졌다.
아이가 밤마다 열이 오르락내리락해
몇 시간마다 체온계를 들이밀었다.
혹시나 열이 더 오르지 않을까 마음 졸이다 보니
나 역시 며칠째 깊게 잠들지 못했다.
잠이라도 푹 자야 몸이 빨리 회복될 텐데.
그런데 이곳에서의 설날,
아니 이곳 사람들이 부르는
**Chinese New Year**는
조용히 지나가는 명절이 아니다.
연휴 며칠 전부터 밤새 이어지는 폭죽 소리.
처음 들었을 때는 정말 전쟁이라도 난 줄 알았다.
쿵, 쾅, 터지는 소리에 아이는 잠에서 깨고
겨우 다시 잠들면 또다시 폭죽이 터진다.
엄마인 나도, 아이들도
아직은 쉽게 적응되지 않는 문화 중 하나다.
일반 가정집에서도 불꽃놀이를 하고
심지어 콘도 집 안에서 창문 밖으로 폭죽을 터뜨리는 경우도 있다.
내가 본 가장 놀라운 장면은
콘도 공용 복도에서 중국식 폭죽을 터뜨리던 순간이었다.
순간 건물이 흔들리는 줄 알았다.
말레이시아에서 중국계 인구는 약 4분의 1.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설은 아주 큰 명절이다.
설 일주일 전부터 폭죽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리고
명절 당일 자정이 되면
온 세상이 동시에 불꽃놀이를 시작한다.
정말, 무서울 만큼 요란하다.
연기와 매캐한 냄새가 창문 틈으로 스며들어
아이들 방 창문을 급히 닫아주었던 밤도 있었다.
이 불꽃놀이는 음력 1월 15일,
차이니즈 뉴이어의 마지막 날인
**Chap Goh Mei**가 되어서야 끝이 난다.
학교에서도 차이니즈 뉴이어 행사를 한다.
요즘은 안내문에 ‘설날’이라고 병기해 주기도 하지만 행사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춘절이다.
붉은색 옷을 입고 오라고 안내하고,
한국인 친구에게는 한복을 권하긴 한다.
중국인 친구들은 전통 의상을 입고 등교를 한다.
사자춤 공연을 보고,
왜 폭죽을 터뜨리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배우게 된다.
작년 설, 큰아이가 물었다.
“엄마, 설날을 왜 차이니스 뉴이어라고 불러?
왜 학교에서는 떡국 먹고 세배하는 거라고
친구들한테 안 알려줘?”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나는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말레이시아에는 중국인들이 많고
공휴일로 지정된 날이 그 문화 기준이야.
그래서 이 나라에서는 차이니스 뉴이어라고 부르는 거야.”
작은아이는 그저
“차이니즈 뉴이어 파티한대!”
하며 신이 났고,
빨간 옷을 입고 가야 한다는데
한복이 빨간색이 아니라고
걱정을 늘어놓았다.
이곳에 와서 다른 나라의 문화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은 분명 큰 축복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아이들에게 한국의 명절과 문화,
그리고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충분히 심어주지 못한 채
해외로 나온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도 스친다.
해외에서 아이들과 살아간다는 것은
매일 새로운 고민이 생기고
그 고민을 하나씩 풀어가는 여정 같다.
어느 문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삶.
그래도 나는 아이들에게 말해준다.
“우리는 한국 사람이고,
그래서 설날에는 떡국을 먹는 거야.
하지만 여기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새해를 맞는 거고.”
아마 이 아이들은 두 개의 새해를
가진 채 자라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건
어쩌면 꽤 괜찮은 일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