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견뎌내는 해외살이 2

타국에서 아이를 잃어버린다는 것

by Jinny


해외살이 3년 차.

국제학교 기러기 엄마 3년 차.


36년 내 인생 통틀어 최악의 날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



그날은 평범한 금요일이었다.


금요일은 아이들이 일찍 하교하는 날.
11시 50분부터 픽업 장소에서 아이들을

기다릴 수 있다.
나는 늘 그랬듯 10분 전부터 서 있었다.


12시가 되자 작은아이가 담임 선생님의

인솔 아래 교실 밖으로 나왔다.
나를 보자 손을 흔들며 뛰어왔다.
아이의 선생님은 아이를 내게 인계했다.


나는 작은아이의 손을 잡고
큰아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큰아이의 반 보조교사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
하지만 큰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가끔 가방을 정리하느라 늦게 나오는 일이 있었기에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렸다.

1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담임교사에게 물었다.

“우리 아이가 아직 안 나왔는데요. 어디 있나요?”

그녀는 말했다.

“모르겠어요.”

같은 반 친구가
“화장실에 간다고 했어요.”라고 전해주었다고 했다.


그 학교는 JK부터 G12까지
모든 학년이 동시에 하교한다.
그 시간은 전쟁터처럼 붐빈다.


사람이 조금씩 빠져나가고

주변이 조용해질 무렵,
나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아이는 없었다.


그때부터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하교하는 문은 하나뿐이고
나는 그 문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테리아에 있었다.
아이가 밖으로 나갔다면 반드시 봤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학교 안에 있을 거라고 믿었다.


플레이그라운드, 교실, 뮤직룸, MPH, 교무실.

뒤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아이는 없었다.


작은아이의 손을 붙잡고
미친 사람처럼 학교를 뛰어다녔다.


마주치는 모든 교사와 학부모에게
아이를 봤는지 물었다.


이미 화장실에 없다는 걸 확인했을 때
담임과 보조교사에게
아이 위치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였다.


1시간이 지났다.


그때부터
머릿속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누가 데려갔나?
아이를 납치한 건 아닐까?
어딘가에 갇힌 건 아닐까?
혹시 내가 못 본 사이에 나간 건 아닐까?



가드(경비아저씨)는 말했었다.

“아직 안 나왔어요.”


이 학교는
보호자 확인 없이 하교를 시키지 않는다.
저학년은 혼자 나갈 수 없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그래서 1시간을,
학교 안에서 아이를 찾아다녔다.





결국 작은아이를 카페테리아에 앉혀두고
학교 밖으로 뛰어나갔다.


집으로 달려가 확인했다.
주변 상가를 뒤졌다.


2시간가량을 학교 주변을 뛰어다니며

아이의 이름을 목놓아 불렀다.


아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대사관에 연락해야 하나.
이 아이를 영영 못 찾으면 어쩌지.


타국에서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은
인간을 순식간에 무너뜨린다.


학교로 돌아와 다시 물었다.

담임은 웃으며 말했다.


“아직 못 찾았지만 괜찮아요.”
“다른 데 갈 만한 곳은 없나요?”


그 웃음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괜찮다고?

보호자인 내가 괜찮지 않은데.


벌써 아이가 사라진 지 3시간이나 흘렀고

아직 아이의 행방이 묘연한데 괜찮다고?



자신의 반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자에게

인계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

그 책임을 다 하지 않아 놓고는

괜찮아라고 하는 게 맞는 건가?





아이를 찾아 헤맨 지

4시간이 지난 뒤,
CCTV를 확인하던 학교 관계자가 말했다.

“아이가 다른 사람 손을 잡고 나가는 장면이 확인됐습니다.”



그 여자는
같은 반도 아닌 옆 반 친구의 엄마였다.


나는 몇 번 마주친 적은 있었지만
연락처도 모르는 사이였다.


학교에서 연락했고
그녀는 아이를 데리고 돌아왔고

4시간 30분 만이었다.


아이를 보는 순간
다리가 풀렸다.


안도감과 동시에
분노가 먼저 올라왔다.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에게 말도 없이 따라가면 안 돼.”
“엄마를 잃어버리면 영영 못 만날 수도 있어.”

"이곳은 한국이 아니야 너를 못 찾을 수도 있어"


그날 이후
담임에 대한 신뢰도
학교에 대한 신뢰도
모두 바닥났다.


나는 학교에 책임을 물었고
아이를 보호자 확인이 더 엄격한

학교로 전학시켰다.


그날의 공포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


한국도 아닌
이 낯선 땅에서
아이를 잃어버린다는 것.





그날 이후
나는 아이의 손을 더 세게 잡는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해외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용기보다 매일의 두려움을 견디는 일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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