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클레어 티셔츠를 입는 아이들 사이에서
해외살이 3년 차.
국제학교 기러기 엄마 3년 차.
이곳에서 아이를 키우다 보니
하나 알게 된 것이 있다.
국제학교라는 공간 안에도 보이지
않는 계급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것.
겉으로 보면 다 비슷해 보인다.
아이들은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고,
부모들도 학교 행사 때면 비슷한 차림으로 아이들을 데리러 온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그 안에 아주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대화에서 알게 된다.
엄마들이 모여 앉으면 자연스럽게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 들어가면 어디 살 거야?”
"애들 학교는 그냥 보낼 거야?"
“우리는 목동 생각하고 있어.”
“강남 쪽 알아보고 있어.”
“공립초 보낼까, 사립초 보낼까 고민이야.”
"외국인 학교 보낼 수 있다는데 고민이야."
그 대화를 듣고 있으면
나는 가끔 조용히 듣기만 하게 된다.
나는 경기도에 산다.
한국에서는 아이들 키우기 좋은 동네
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이곳에서 학군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치 완전히 다른 세계 이야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목동, 강남, 사립초...
아이들 교육 이야기가 시작되면
그 지역 이름들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온다.
생각해 보면 이곳에 있는 가족들은
이미 어느 정도 여유와 선택이 가능한 집들이기도 하다.
지방에서 온 가족들도 많지만
아빠들이 대부분 사업을 하거나 회사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인 자유가 어느 정도 보장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엄마들의 대화는
거의 대부분 아이들 교육 이야기다.
해외대학을 목표로 할지,
한국에 돌아가면 어느 학군으로 갈지,
어떤 학교를 보내야 할지.
아이들은 그저 뛰어놀고 있는데
어른들 사이에서는 이미 몇 년 뒤 이야기가 오간다.
그리고 그런 대화를 듣다 보면
가끔 마음 한편이 작아진다.
사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열등감이라는 감정이 스쳐 지나갈 때도 있다.
그건 거창한 일이 아니다.
아주 사소한 장면에서도 느껴진다.
아이들 옷차림 같은 것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비싼 옷을 잘 사주지 않는다.
아이들은 금방 크고
어차피 뛰어놀다 보면 옷은 금방 낡는다.
그래서 편하고 망가져도 속상하지 않을 옷을 입힌다.
아이들의 취향도 있기 때문에 큰아이는 축구유니폼만 입고 작은아이는 핑크색 옷만 입는다.
그런데 아이들이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에 가 보면
몽클레어, 버버리, 아미, 스톤아일랜드 등등
반팔 티셔츠 하나에 30만 원이 넘는 옷을 입고 다니는 아이들도 꽤 있다.
처음에는 그저
‘와, 애들이 저런 옷도 입는구나’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장면을 몇 번 보다 보면
괜히 마음이 조금 작아진다.
내 아이들은 모를지 몰라도
나는 그 차이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큰아이가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엄마, 우리는 왜 여기서 안 좋은 차 타?”
순간 대답이 막혔다.
나는 말레이시아에서
이곳의 국민차라고 불리는 차를 타고 있다.
몇 년 살다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라
적당히 탈 차를 산 것이다.
그리고 말레이시아는
외제차나 한국차에 세금이 많이 붙어서
생각보다 가격이 꽤 비싸다.
그래서 나는 굳이
비싼 차를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학교 주차장에 가 보면
대부분의 차가 일본차이거나 외제차다.
포르셰, 벤츠, BMW.
그 사이에
우리 차가 조용히 서 있다.
아이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여기 평생 살 거 아니잖아.
그래서 그냥 편하게 탈 차 산 거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질문은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사실 아이들은 아직
그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른인 나는
이미 그 차이를 알고 있다.
그래서 가끔
그 차이 속에서 마음이 조금 작아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문득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배우 지창욱이 했다는 말이다.
사람이 자신의 수준에 맞는 소비를 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옷에 뭐가 묻어도
그냥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지.
차에 흠집이 나도
마음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지.
차를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편하게 타고 다닐 수 있는지.
그럴 수 없다면
그게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소비라고.
생각해 보면
내가 지금 타고 있는 차가 딱 그런 차다.
아이들이 문을 세게 닫아도
개의치 않고 다른 차가 내 차를 긁어
흠집이 나도 속상하거나 흔들리지 않는 차.
어쩌면 지금의 내 삶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조금 소박해 보일지 몰라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
아이들에게 더 좋은 것,
더 풍요로운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은
아마 모든 부모가 같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아이들에게 남는 것은
비싼 물건이 아니라
이곳에서 함께 쌓아 간 경험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