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살, 나는 아직 자아실현 중이다.

달리기와 브런치로 나를 찾아가는 과정

by Jinny

해외살이 3년 차,

국제학교 기러기맘 3년 차




매슬로의 욕구단계 이론의 피라미드를 보면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 것이
바로 자아충족의 욕구이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고민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곳에서의 삶은
가디언 비자로 있는 나를

엄마의 삶 만 살게끔 한다.



사실 한국에서는 아이들이 어리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직장생활을

오래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2년 터울로 태어나
한 아이가 끝나면
한 아이로 넘어가기 바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일을 하지 않는 것과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은
꽤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할 수 있지만 내가 하지 않는 것은

선택의 영역이다.

하지만 하지 못하는 것은
나의 권리가 제한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엄마인 나의 아침은 늘 전쟁이다.

아이들 도시락을 싸고
아이들을 깨우고 씻기고

학교 시험이 있는 날에는
아이에게 시험 내용을 리마인드해 주고

방과 후 활동이 있는 날에는 준비물을 잘 챙겼는지
두 번, 세 번 확인해야 한다.



그 정신없는 사이
나도 대충 씻고 운동복을 입는다.

아이들이 준비하는 동안
나는 나의 자아충족을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면
대략 아침 8시.

그때 엄마가 아닌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나는 일단 달린다.

주 3~4회,
10km 정도를 달린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하던 운동을
계속해야 할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이제는 이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이 되었다.


매일 도장을 받는 것도 성취감이 있다.


덥고 뜨거운 날씨 때문에
땀이 비 오듯 흐르지만
그래도 달리고 나면

하루를 의미 있게 쓰는 것으로 시작해
오늘의 할 일을 완벽하게 해낸 듯한 느낌이 들어
내겐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덕분에 이제는 더운 날씨에도 적응이 되었고
10km 정도는 무리 없이 달릴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오늘도 러닝 완료




집에 돌아오면 대략 9시 반쯤.

집안일을 조금 하고

샤워를 하고 나면
갑자기 집이 조용해진다.



그때부터가
이곳에서의 긴 나의 낮 시간이다.



어떤 날은 콘도에 있는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책을 읽고
필사를 하기도 하고

가끔은 내가 이 시간에 할 수 있는

생산적인 일이 있을까 싶어
인터넷을 뒤적이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는 휴대폰을 들고 무언가를 보고 있다.

요즘 나의 도파민을 담당하는 것은
중국 숏폼 드라마다.

한 편이 1~2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내용은 꽤 고자극이다.

재벌가, 복수, 출생의 비밀,
갑자기 나타나는 숨겨진 자식 같은 이야기들.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들이
짧은 시간 안에 계속 터진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의 단순한 하루 속에서
그 짧은 이야기들이 묘하게 재미있다.

처음에는 그냥 가볍게 보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다음 화를 계속 누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원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예전부터 소설을 읽는 걸 좋아했고
좋아하는 드라마가 있으면

대본집을 사서 읽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숏폼 드라마를 보다 보면
자꾸 이런 생각이 든다.

나도 한번 재미있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



사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도
그런 마음 때문이었다.

지난 2년 동안 나는 이곳에서 시간을
꽤 많이 흘려보낸 것 같았다.



의미 없는 시간으로

내가 가장 빛나는 이 시간을

낭비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어느 날
조금 용기를 냈다.

혼자 끄적이던 글을
브런치에 올려보기로 했다.



대단한 글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살아온 시간과
생각들을 기록해 보고 싶었다.



부족하고 서툴러
많은 사람이 읽지 않는
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곳에 글을 쓰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씩 찾아가고 있는 중이니까.



36살이 되어도 나는
여전히 자아실현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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