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문서, 제가 만든 거예요.”
말은 짧았지만, 증명은 길고 고통스러웠다. 몇 밤을 새워 만들었던 입점 제안서가, 나의 이름 없이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내가 만든 것’이라며 강의에 쓰이고 있을 줄은 몰랐다. 정성 들여 정리한 통계, 설득력 있게 짜맞춘 레이아웃, 그리고 수없이 고친 도표와 문장들. 그것은 단순한 파일이 아니라, 컨설턴트로서 나의 고민과 시간, 그리고 정체성이었다.
그 문서는 내가 직접 입지 자료를 찾아다니고, 현장을 다녀오며 찍은 사진으로 구성했다. 상권 분석 자료에는 실제로 발품을 팔아 조사한 인근 상가의 매출 추정, 유동 인구 흐름, 교통 접근성과 향후 개발 계획까지 담겨 있었다. 단순히 데이터만 모은 것이 아니라, 건물주가 가장 궁금해할 질문들을 예측하고, 그에 대한 솔루션을 제안하는 형식으로 구성한, 일종의 살아있는 컨설팅 자료였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어느 순간 내 손을 떠나 있었다. 내가 함께 작업했던 상대방은, 그 문서를 자신의 강의에 활용했다. 처음엔 무심코 내준 자료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유료 강의의 중심 콘텐츠가 되어 수백 명의 수강생을 모으고, 수천만 원의 수익을 창출하고 있었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그 강의 속에서 내 이름은커녕, 나의 기여에 대한 언급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강의에 사용된 화면을 수강생에게 전달받고, 녹취록을 확보하면서 사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분노보다는 황망함이 먼저 찾아왔다. 그동안 쌓아온 전문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만든 결과물이 이렇게 가볍게 다뤄질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깊이 다치게 했다.
그때부터 나는 내 권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다. 저작권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조차 없던 나였지만, 전문가와 상담하며 조심스럽게 법적 대응을 준비했다. 저작권법의 조항을 하나하나 읽어가며, 내가 지켜야 할 권리와 상대가 침해한 행위의 무게를 인식하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저작권이라고 하면, 예술가의 그림이나 작가의 소설, 작곡가의 악보를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로 저작권은 우리의 일상 속,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 기획서, 분석서, 제안서, 보고서, 발표자료, 수업자료까지. 누군가의 창의적 아이디어와 표현이 담긴 결과물이라면 그것은 곧 법으로 보호받아야 할 저작물이다.
나의 문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창작물이었고, 내가 가진 노하우와 지식의 정수가 담긴 저작물이었다. 내가 만든 콘텐츠가 나의 이름 없이 남용되는 상황은, 단지 저작권 침해라는 법적 문제를 넘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훼손당한 경험이었다.
그런 점에서 저작권은 단순히 금전적인 이득을 보호해주는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창작자에게 ‘당신의 이름이 이 작업에 깃들어 있다’고 선언해주는 보호막이다. 그리고 그 이름을 훼손하거나 도용하는 것은 단순한 도둑질이 아니라, 창작자의 삶을 짓밟는 행위다.
내 사건은 아직 진행 중이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창작자의 권리가 왜 중요한지, 그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어떤 상처가 남는지를 몸소 겪으며 깨달았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내가 만든 문서’라는 말은, 단순한 소유의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쏟은 시간, 고민, 열정, 그리고 정체성을 지켜내는 외침이다.
2025년, 나는 ‘저작권’이라는 단어를 더 이상 남의 일처럼 여기지 않는다. 내가 겪은 이 일을 계기로, 더 많은 사람들이 창작물에 깃든 노력을 이해하고, 그것을 존중하는 문화가 퍼지기를 바란다. 당신의 작업물이, 당신의 이름으로 남기를 바란다면, 저작권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제 나는 조용히 넘기지 않는다. 내가 만든 것에는 내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을 지켜내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이 글을 통해 모두가 알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