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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향 Galadriel Jun 13. 2022

자두 사세요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그저 당신 앞의 삶을 즐겨라

올해도 자두를 파실 건지요? 동해의 작은 포구마을, 좁은 시장통에서 커다란 바구니 가득 자두를 들고 앉아 자두를 파실 건지요? 자두를 팔아볼 생각이라 하셨지만 자두 사란 말은 절대로 하지 못할 것 같은 당신... 하여, 당신 곁에 쭈그리고 앉은 나는 "자두 사세요"를 외치고 말았습니다.


"할머니, 양순자 할머니, 한 번은 꼭 뵙고 싶었는데 제가 할머니 책을 너무 늦게 만났습니다.  한 시절 할머니의 글을 읽으며 위로받고 용기 얻어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냈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하셨잖아요. 그냥 마포에서 일산으로 이사 가는 것 같은 것일지 모른다고도 하셨었어요. 지금은 어디 즈음 계시려나 궁금합니다. 다음 생에서 혹시라도 할머니를 만나 알아보거든 정채봉 작가가 엄마에게 그럴 거라고 했던 것처럼 할머니 앞에서 이 세상 살면서 억울했던 거 한 가지 고자질하고 한 번은 엉엉 울어보고 싶습니다." 라며 지금은 고인이 되신 양순자 할머니의 책 "어른 공부"를 읽어주셨지요. 저에게 "자두 사세요"를 외치게 하신 당신은 햇살 좋은 봄날 자작나무 숲길을 산책하듯 낭독을 즐기는 자신을 "모두의 아저씨 책 읽는 자작나무"라고 소개하셨습니다. 


자작님! 12만 그루의 자작나무(구독자)를 기르고 계신 "책 읽는 자작나무님!    

자작님이 할머니 앞에서 억울했던 한 가지 고자질하고 엉엉 울어보고 싶으셨던 것처럼 저도 한때, 울고 싶은 때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엉엉 울고 싶을 만큼 억울한 일도 인생이 왜 이리 불공평하냐고 꺼내놓을 거리도 사라지고 '인생이 다 그렇고 그런 거지 뭐'하고 살고 있었습니다. 두어 달 전입니다. 험하지도 높지도 않은 산을 올랐다가 하산길에 넘어져 척추를 다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진통제 몇 알 먹고 쉬면 나을 줄 알았는데 날이 갈수록 통증이 심해지면서 혼자 앉고 눕는 일조차 힘들어졌습니다. 그때 살짝이 우울이가 찾아와 같이 살자 하더군요. 우울이 와 동거하며 읽고 쓰는 일이 힘들어진 내가 할 수 있는 건 평소에도 좋아하던 듣는 일이었습니다. 알고리즘을 따라 올라오는 영상을 접하며 책을 소개해 주는 '북 튜버가 정말 많구나' 했습니다.  한 번만에 녹음을 하고 단번에 제작된 영상은 단 한편도 없겠지요. 30십여분 정도의 영상을 위해 몇 시간을 수고하고 때로는 며칠을 고심해 만들고 기쁘게 올려놓으실 겁니다. 그렇게 수고를 즐기는 많고 많은 북 튜버 중 제가 유일하게 구독하고, 매번 듣지만 아주 가끔 댓글을 남기는 "책 읽는 자작나무"에 한 뼘이나 길어진 더듬이를 얹어 놓았습니다. 책의 내용에 따라 오르내리는 목소리의 높낮이와 적재적소에 꾹 눌러 찍은 쉼표로 무채색 활자에 화사한 색상을 덧 입혀 생기를 불어넣으시는 자작님...  '타고난 걸까, 노력의 결과일까?'라고 중얼대며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고 편안하게 낭독하시는 책을 들으며 위로받고, 과하지 않은 유머와 위트에 자주 웃습니다. 


엊그제 올리신 영상에선 책 읽는 유튜버인 당신이 책 읽기 슬럼프에 빠져 있다고 하셨습니다. 구글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이유도 설명해 주지 않고 자꾸만 삭제하라는 유튜브 측의 요구에 백오십 개가 넘는 귀한 영상을 모두 삭제하셨다고요. 오랜 시간 고심하고 연구해서 시즌1,2,3을 제작했지만 길을 찾지 못했다 하셨습니다. 당신은 시즌4, 그 새로운 형식의 화면 구성을 해야 되는데 책이 읽히지 않으니 영상을 제작할 수 없다면서도 풀이 죽거나 초조해 하기는커녕 너털웃음을 쏟아 놓으셨습니다. 그러고는  특단의 조치로 당분간 삭제된 영상에서 하나씩 골라 재 편집해 올릴 거라 하셨죠. 그 말 끝에 비음을 살짝 섞고 반음 올린 목소리로 한마디 덧붙이셨어요. "괜찮죠? 아흐응 된다고 해 주세요"라고요. 순간, '내가 지금 책 읽는 나작나무 듣는 거 맞아' 하며 배배 꼬이는 어깻죽지를 부여잡고 알지도 못하는 자작님 전화번호를 누를 뻔했답니다. 평소 진중하고 깊은 당신의 음색 어디에 이런 애교와 교태를 숨겨 놓으신 걸까요? 그 반전에 웃지 않을 자 누구겠는지요. 몇 번 되돌려 "아흐응"을 듣는데 나를 바라보던 우울이가 화들짝 문을 열고 나가더군요. 


처음 북 튜버를 시작하고 아무도 구독하는 이가 없어 자신이 꾹 눌러 구독했다는 고백은 신선했습니다. 첫여름의 상큼한 오이향 같았지요. 오이향 덕분이었을까요. 어느새 4만 구독자가 된 영광을 안게 되었다고 기뻐하셨던 날을 기억 하시는지요? 4만 구독자 달성 이벤트로 로고가 새겨진 파랑과 노란색 머그잔을 원하시는 분은 "자두 사세요"라고 댓글을 달라 하셨지요. 그날 인트로에서 회사 앞 뜰에 자두나무가 수백 송이 꽃송이를 피웠다며 자두가 열리면 내다 팔거라 하셨어요. 동해의 작은 어촌마을 시장통에서 후줄근한 아저씨가 자두를 팔고 있으면 자신인 줄 알라셨어요. 자두를 내다 팔거라 하셨지만 자두사란 말이 나올 것 같지 않았던 당신은 구독자 이벤트를 빌미로 구독자들에게 "자두 사세요"를 외치게 하신 거지요. 이벤트에 참가한 몇 백명의 구독자들이 소리 높여 "자두 사세요"를 외치며 자두를 팔아야 했습니다. 흘러버린 시간 탓도 있지만 지금은 삭제된 영상이라 그날 올려주신 책의 저자나 제목은 기억에 없습니다. 하지만 족히 삼백 개는 넘었던 것 같은 댓글들 속에 남은 목소리, "자두 사세요"를 잊을 수가 있겠는지요. 즐거웠습니다. 많이 웃었어요. 


오늘 아침엔 지난해 6월에 발행하신 김혜남 작가가 파킨슨병을 앓으며 쓴 책"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를 다시 클릭했습니다. 코앞에 있는 화장실까지 가는데 5분이 걸리고 한걸음을 뗄 수 없어 "그냥 이 자리에 싸버릴까" 생각했다는 문장에 커다란 곰 한 마리가 올라앉은 것 같던 내 어깨가 얼마나 가볍던지요. 곰이 나비로 변하지는 않았지만 아기 고양이만큼 무게가 줄어드는 순간이었습니다. 누구에겐 화장실 가는 그 단순한 일을 파킨슨병을 앓는 작가에겐 각오하고 감행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아무런 각오 없이 아무 때고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는 나의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조금 불편하지만 내 의지대로 걷고, 조금 느리지만 혼자 밥 먹고 쓸 수 있는 대단한 일을 하는 내가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왼손으로 한 글자씩 톡... 톡 두드려 쌓여가는 글자 수를 바라보며 '일주일이면 이 편지를 끝낼 수 있겠구나' 합니다.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기어 목적지에 도착하고 마는 달팽이처럼 '멈추지 않으면 되겠구나'하면서.... 


자작님! 

한 번은 우표를 눌러 붙인 편지로 감사를 전하고 싶었던 책 읽는 자작나무님!

밴쿠버의 지난겨울은 드물게 길고 혹독했습니다. 혹독했던 겨울 뒤, 기다리던 봄 대신 다시 맞아야 했던 나의 겨울 속에서 언젠가 언급하신 "시절 인연"이 떠올랐습니다.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시며 사람들의 인연처럼 책에도 그런 시절 인연이 있다 하셨지요. 한때 마이클 싱어의 "상처받지 않은 영혼"은 당신이 유난히 기대고  의지해서 살아가던 책이라 하셨습니다. 자작님께 시절 인연이었던 책이 지금 나의 시절 인연이 되어 말을 걸어오네요. 당신이 밑줄 그어가며 낭독하고 제가 또다시 빨간색 하이라이트로 밑줄 그어 읽은 "당신이 허용하기만 하면 당신을 괴롭힐 일들은 언제나 생길 것이다. 삶을 즐기겠다는 이 선택은 당신을 영적 여정으로 안내할 것이다.(중략) 남은 평생을 행복하겠다고 말할 때, 진정으로 말해야만 한다. 당신의 한 부분이 불행해지려고 할 때마다 그것을 놓아 보내라. 이 일을 열심히 실천하라. 열려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라. 각오만 서면 그 무엇도 당신을 막을 수 없다. 무슨 일이 생기든지 당신은 그 일을 즐기기로 선택할 수 있다. 누가 당신을 굶기고 독방에 가두더라도 간디처럼 그저 기꺼이 경험하라.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그저 당신 앞의 삶을 즐겨라."


하루치의 즐거움이 배달되는 새벽, 조금 열어놓은 창틈으로 새소리와 함께 꽃 향기가 날아듭니다. 집 뒤 2킬로미터에 달하는 산책로에 핀 해당화 향이 새벽 공기를 뚫고 날아온 것입니다. 올해는 새순을 꺼내고 꽃망울을 밀어 올리는 일이 조금 늦어졌지만 그 어느 해보다 많은 꽃들을 피워내고 있습니다. 어제는 그 향기로운 길을 햇살과 함께 걸었어요. 걷다가 셀폰에 담아온 해당화 몇 송이, 향기체 동봉합니다. 혹독한 겨울 뒤에 피운 황홀하도록 향기롭고 고혹적인 자태의 꽃, 창가에 두고 보세요.  지금도 겨울 속에 묻혀있거나, 겨울을 건너고 있거나,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맞이하는 이들을 위한 등불처럼 걸어두고, 기도문처럼 읽어 주세요. 부디 그리하여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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