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번호 82, 그리고 119
"마음에만 존재하는 그리움, 그것은 실현될 때 증발하는 기체 같은 것이죠"라고 김도형 시인께서 댓글을 달아주셨어. 내가 답글을 달았어. "실현될 때 증발하는 기체, 어느 바다로 가면 이런 문장을 건져 올릴 수 있나요?"
라고.
생각나니?
데친 상춧잎같은 네 목소리가"내일 지구에 종말이 왔으면 좋겠어"하며 내 가슴으로 무너졌어. 몇 년을 소식을 끊고 살던 네가 한밤중에 전화를 해서 한 말이야. 나는 애써 웃으며 "지구에 종말이 오면 뭐 할 거야.?" 했어. 네가 대답했어. "너에게 갈게" 내가 다시 물었어."왜 그때까지 기다리는 건데?"라고.... 그날의 대화를 "그냥 오세요"라는 제목을 달아 책갈피에 끼워 두었지. 행여, 올 수 없는 네 마음이 긁힐까 보내지 못하고 한겨울 칼바람 속에 선 네 마음을 오래도록 바라만 봤어. 살아내야 하기에, 올 수 없는 네 마음이 다칠까 봐 보내지 못한 그날의 내 마음을 이제는 보여줘도 될 것 같아 펜을 들었어.
펜을 들고 보니 너에게 손 편지를 보내던 때가 그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그때, 매일 만나도 매일 보고 싶어 쪽지를 주고받던 네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했어. 아니, 시집을 갔어. 아버지의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유학을 포기하고 결혼을 택한 넌 대단할 것 없는 대단한 집으로 시집을 갔지. 내가 대단할 것 없는 집이라 말하는 딱 한 가지 이유는 가진 거라곤 돈밖에 없는 집이여서지. 내가 그저 돈 많다는 이유로 부자를 경멸한다거나 돈이 필요 없어서가 아니란 걸 너도 알 거야. 나도 돈이 많으면 좋겠어. 돈이면 해결되고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시간은 물론이요 '인심'까지 살 수 있는 돈의 위력이야 무슨 설명이 더 필요 하겠니?. "광에서 인심 난다"는 말까지 있으니 말이야. 어떤 색깔의 힘이 든 간에 그 돈의 위력을 느껴서였을거야. 결혼식을 앞두고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가는 심청이 같아"라는 말로 시작한 편지는 "그래도 잘 살아보고 싶어, 잘 해낼 거야"라고 두려움인지 각오인지를 눌러 적은 글이 너의 마지막 손 편지가 되었어.
친구들의 부러움을 안고 담장 높은 집으로 시집을 갔는데, 그 집은 담장만 높은 게 아니었어. 시부모님과 시누이는 가정을 지키고 어린 딸을 지키겠다는 인내와 각오로도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이었어. 그 또래 여자들이 하루에도 몇 통씩 주고받는 전화 한 통을 넌 벽을 넘어야 할 수 있었어. 전화 한 통, 외출 한번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높은 벽으로 둘러쳐진 집. 돈 좀 가졌다 하는 모든 남자들이 그런 것도 아니건만 외도가 가진 남자의 권리나 특권인양 당당하던 남편이었어. 그런 아들을 지지 옹호하다 못해 "남자가 사회생활하다 보면 바람도 피우고 하는 거지, 잘나고 돈 있는데 바람도 못 피우면 등신이지 그게 사내냐? 네가 들고 다니는 가방도 네 남편이 번 돈으로 산거야" 했다는 시어머니는 '넘다가 네가 죽을 벽'이었지. 하나뿐인 딸의 양육권까지 강탈당하며 이혼을 했고, 이혼만 해주면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홀로서기가 쉽지 않았던 네가 방황 끝에 한 말, "내일 지구에 종말이 왔으면 좋겠어."
기억나니?
내가 한국을 떠나오기 전, 모든 것을 잃은 네가 나에게 복어국을 사주었어. 복국을 먹으며 “혹시라도 먹고 죽음 어떻게 해?” 하자 유치원생 딸을 둔 네가 "죽는 게 무섭구나?" 했어. 죽는 게 무섭지 않냐는 나의 물음에 "잃을 게 없는데 무서울 게 있겠어?" 하던 네가 생의 끈을 놓고 싶다고 했어. 밴쿠버로 떠난다는 내 말에 "빨강머리 앤의 초록지붕, 같이 볼 수 있겠구나" 하던 네가 "죽으면 이 고통도 끝나겠지"했어. 무서웠어. 통화가 끝나면 국가번호 82를 누르고 119를 눌러야 하나 망설이며 가만히 듣고 있었어. 한참을 얘기한 끝에 네가 결론을 내렸어. "나, 다시 일어날 거야, 난 엄마잖아"
18년 전 그날 밤 너는 밤새 칼을 갈았어. 활을 들고 첼로를 연주하던 네가 활 대신 시퍼런 복수의 칼을 갈며 희뿌연 새벽을 맞았다고.... 칼을 들고 일어선 너는 복수 대신 요리를 택했어. 요리사가 되고 몇 년 후, 넌 내게 선물을 보내왔어. 몸서리치게 그리워하던 딸과 함께 냉면 가락을 들어 올리며 웃는 사진 속에 보랏빛 수국처럼 환한 네 얼굴을.....
사랑하는 선!
대학시절의 넌 모두가 뒤돌아 볼만큼 예뻤어. 흰 면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긴 생머리를 바람에 흩날리며 캠퍼스를 활보했지. 눈부시도록 예뻤고, 아직 너무 예쁜 네가 홀로 밤을 맞이하고 홀로 밥을 먹을 때 "내가 원하던 삶은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어. "그때 그 사람을 선택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때 어떻게든 공부를 계속했어야 했는데, 그때 끝까지 딸을 안고 싸울걸" 하며 수없이 많은 "그때"를 턴테이블 위에 올려 돌리고 또 돌리는 사랑하는 내 친구 선아! 나 역시 지금의 내 삶이 내가 원하던 삶이 아니란 걸 너도 알아. 그렇지만 난 이 삶을 사랑하고 감사해. 원하든 원치 않든 내가 선택한 순간들이 쌓여 지금의 삶이 되었고 최선을 다해 살았어. 그러니 우리가 꿈꾸던 삶은 아니지만 이만큼 살아낸 너에게도 나에게도 '멀고 험한 길 오느라 수고 많았어, 계속해서 잘해보자'라고 말해주면 어떨까. 우린 아직 다 살지 않았잖아?
한국시간 11월 27일 오전 7시 30분... 지금쯤, 생일엔 한아름 장미를 안고 온다는 딸과 함께 생일밥을 먹고 있을 네가 며칠 전에 그랬지. "그리워, 네가 그립고 네가 사는 밴쿠버가 그리워"라고. 그런데 선아, 내 친구야! 우리 이제 그만 그리워해도 되지 않을까?. "실현되고 증발해버리는 기체"가 될지라도 난 네가 보고 싶어. 그래서 생일 축하한다는 말 대신 18년 전 그날 밤 보내지 못한 내 마음... 이제는 보낼게.
그냥 오세요/ 박지향
당신이 물었습니다
"지구에 종말이 오면
무얼 할 거냐"라고
내 대답이
'당신께 가려구요'
당신은 또 물었습니다
"왜 그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밴쿠버시간 2022년 11월 26일 너의 향
PS: 그거 알아? 우리 집 대문엔 자물쇠가 없어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