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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향 Galadriel Sep 09. 2023

아내의 육감

남편은 뭘 지우고 싶었던 걸까?

빵과 커피로 아침을 먹는데 커피잔 옆 셀폰이 부르르 떨며 원을 그렸어. '여보세요' 하는데 "여보! 내가 지금 어디 가는 거지?" 하고 물어.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또다시 물어. " 내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오늘이 며칠이야?" 하더군. 나는 스프링을 밟은 것처럼 튕겨져 일어나 지갑과 차 열쇠를 챙겼어. 농담하냐고 물을 필요가 없었지.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졌다는 걸 내 육감이 일러주었거든. 


*리오!

육감이 뭔지 아니?  영어로는 'sixth sense' 한문으로는 '六感'이라 쓰는 여섯 번째 감각은 오감을 사용하지 않고도 아는 능력이라고 해. 남자에 비해 크고 예민하게 발달된 여자의 육감은 때로 거짓말 탐지기가 되기도 하고 위기를 감지하고 위험에 대처하는 능력이 되기도 하지. 그런 여자의 육감을 남자들이 무서워한다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이 아내의 육감이란 걸 너는 알까? 평소에 농담을 즐기던 남편이었기에 장난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어. "여보!' 하는 한마디에 벌써 농담이 아니란 걸 알아챘다는 게 신기하지 않아?. 목소리 톤과 미세한 떨림만으로 장난이 아니라고 확신한건 이십 년도 넘는 시간을 함께한 아내의 육감일 거야. 한 손으로 셀폰을 들고 다른 손으로 옷을 갈아입으며 물었어. 옆에 뭐가 보이냐고.... 차, 나무,  벤치가 보인다더니 "휴게소 주차장인 것 같다"라고 그래. 


기가 막혔어. "휴게소 주차장 같다"니... 새벽 네시에 미국 출장길에 오른 사람이 휴게소 주차장 같아 보이는 곳에서 전화를 한 거야. 길을 잃은 건지 정신을 잃은 건지 날짜도 모르고 어딘지도 모른다고 했어. 다섯 시간이면 국경을 넘어가고도 남을 시간이었으니 시간상으로 보아 아무리 돌아가고 천천히 갔어도 시애틀이나 타코마 부근이겠거니 생각했지. 자신은 미국에 가지 않았고 캐나다 안에 있다고 하더군. 국경을 넘은 적이 없다고 말이야. 안 믿어지겠지만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상태인 것 같으니 옆에 지나가는 사람 중 아무나 전화를 좀 바꾸라고 했지. 다행히 친절하고 사려 깊은 분이 전화를 받았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위치를 물었어. 지도를 열어보니 국경에서 두 시간쯤 떨어진 고속도로변 휴게소였어. 일단, 차키를 빼서 남편 주머니에 넣어달라고 했어. 그러고는 "당신은 지금 절대로 운전을 해선 안 돼요. 당신은 지금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아내가 오고 있으니 올 때까지 차문을 잠그고 차 안에 앉아 있어야 해요."라고 자동차 핸들 위에 써 붙여 달라고 부탁했어.


전화를 끊고 내가 다니는 회사에 전화를 해 결근사유를 설명했어. 통화도중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오는 거야. 전화를 받으니 "여보! 내가 지금 어디 가는 거지?" 하더니 " 여기가 도대체 어디야?" 하는 거야. 생각보다 심각하구나 싶었어. 벌어진 상황을 설명하고 자동차 핸들 위의 메모를 읽어보라고 했지. 내가 지금 출발하니 절대로 어디 가지 말고 그냥 그 자리 앉아 있으라고 했어. 학교 갈 준비를 하는 작은아이와 야근을 하고 돌아온 큰아이에게 설명했어. 아이들에겐 자신의 일을 하라 했지만 "지금 아빠보다 더 중요한 일이 뭐가 있어요?"라며 따라나섰어. 그러는데 또 전화가 걸려 왔어. 또다시 같은 질문을 해왔고 나는 똑같은 설명을 했지. 집에서 출발해 국경을 넘어 남편이 있는 휴게소에 도착할 때까지 매 5분마다 전화가 걸려왔고 똑같은 대화를 반복했어. 남편에게 주어진 기억의 길이는 5분이었던 거야.


알려준 휴게소를 찾아 들어갔어. 주차장 맨 구석자리에 남편의 차가 있었어. 아이들은 차에 두고 조용히 다가가 차 안을 들여다봤어. 그곳엔 세상을 지고 가던 남편은 없더군. 대신, 상처 입은 들짐승 한 마리, 두려움에 떨며 웅크리고 있었지. 살며시 노크했어. 찢기고 할퀸 상처투성이 얼굴을 들어 잠시 나를 쳐다봤어. 손짓으로 문을 열라고 했지. 천천히 버튼을 눌러 차문을 열고는 작아진 어깨를 더 작은 공처럼 동그랗게 말며 고개를 숙이더군. 너무 낯선 표정이었어.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다 못해 오만하기까지 하던 '사나이'는 어디로 가고 코너에 몰린 들짐승 한 마리, 공포에 질려 떨고 있었지. 옆자리에 앉아 오른손으로 그의 손을 잡고 왼손으로는 작아진 어깨를 감싸 안았어. 그러고는 "이제 괜찮아요"하며 떨고 있는 그의 손을 꼭 붙잡았어.  남편은 작은 목소리로 물었어. "여기가 어디야? 왜 내가 여기 있어?"


"여기가 어디일까? 우리는 왜 이 낯선 곳에 서 있는 걸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동차 핸들을 돌렸어. 밴쿠버로 돌아오는 두 시간 동안 매 5분마다 똑같은 질문과 똑같은 대답을 주고받았어. 국경을 넘어 가장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갔지. 응급실에 도착한 지 여덟 시간이 지난 후 받은 진단 결과는 "일과성 완전 기억 상실증(transient global amnesia)"이었어. 꼬박 18시간의 기억이 하얗게 사라져 버렸더군. 그 전날밤부터 지워진 기억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어. 남편은 도대체 뭘 지우고 싶었던 걸까? 


존경받는 의사의 장남으로 태어나 주변의 기대와 사랑을 받으며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유학을 했어. 한국으로 돌아와 외국인 기업에서 승승장구했고 남편밖에 모르는 아내와 사랑스러운 두 딸이 있는 가정을 이루었지. 부러울 게 없었어. 지금은 조금 바뀌었겠지만 그때는 한국의 교육제도아래 그 제도를 따라갈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어. 남편과 나는 수능을 치르고 나면 먼지가 되어 사라져 버릴 것들을 위해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학교와 학원에 바칠 자신이 없더군. '아이들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만'이라는 조건을 달아 이민을 결정했어. 영어도 필요한 만큼 했고 미국에서도 인정받을 학력과 자격증, 많진 않지만 삶을 위협받지 않을 만큼의 돈도 있었어. 단 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연로하신 양가 부모님이었어. 그때 네 분 부모님들의 연세가 70대 초반 이셨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어. 길면 10년, 계획대로 이루어지면 6,7년 안에 다시 돌아올 것이었으므로.


그렇지만 리오!

계획한 삶이라고 계획대로 이루어졌다면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을까. 이민지의 삶은 녹록지 않았어. '믿는 사람'이라는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고 믿을 수밖에 없는 문서와 데이터에 속았어. 쓸고 닦아 반들거리는 집까지 내놓아야 했어.  아이들과 누울 방 한 칸을 걱정해야 하는 날이 올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지. 자상하고 정직한 남편이었지만 고생을 모르고 자라 나약할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단단했어. 우리는 아이들이 좋아하던 넓은 정원에 배나무가 있는 집, 손자손녀가 마음 놓고 드나들게 하고팠던 집을 정리해야 했어. 팔건 팔고 많이 기부하고 많이 내다 버렸어. 새 주인에게 집을 내어주며 청소를 대행해 줄 업체는 많았지만 1달러가 아쉽던 때라 업체를 부를 수가 없었어. 그 큰 집을 창문부터 방, 욕실, 부엌에 정원까지 깨끗하게 청소 한건 남편이었지.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털고 군데군데 묻은 얼룩을 닦았어. 닦고 털어 깨끗해진 집을 내어주고 빈손으로 돌아서는 남편 마음이 어땠을까? 


723년 전, 서른다섯 살에 망명길에 오르게 된 단테는 "우리네 인생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라고 했지. 자신의 인생 최전성기에 당파싸움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루아침에 망명자로 전락해 버린 자신의 처지를 서사시 "신곡"에서 노래한 거야.  단테처럼 모든 것이 안정기에 들어야 할 남자 나이 쉰, 인생 반고비에 모든 걸 잃고 바닥으로 떨어진 남자의 심정을 상상할 수 있겠니? 가장이기에 포기하면 안 되고 가장이기에 주저앉을 수도 없는 그 막막하고 무서웠을 마음을 말이야. 파도가 지나가나 싶으면 태풍이 몰아치고 태풍이 사라졌나 싶으면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바람이 몰아치는 망망대해에 던져진 작은 목선 같았지만 어떻게든 버텨야 했지. 버티면 이겨낼 줄 알았지만 각오만으로 이겨낼 수 없는 곳이 이민지였고 삶이었지. "다른 사람의 빵이 얼마나 짠지, 또 남의 집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뼈저리게 체험하는 생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그도 단테처럼 길을 잃었던 거야.


리오!

언젠가 새벽, 너를 붙들고 얘기하는 남편을 봤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수많은 불면의 밤을 건널 때 그날 새벽처럼 네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너라도 있었다면 위로가 되었을 텐데 넌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던 때였으니 남편은 말할 곳이 없었어. 그러니, 넘어지면 안 된다고, 어디를 향해 걸어야 하는지, 어디를 지나는 중인지도 모른 체 정신없이 달리던 그의 뇌는 과부하가 걸리고 말았나 봐. 그때 우리들의 신음소리까지 듣고 계신 분께서 "다시 시작해 봐"하시며 그의 전원을 꺼버리신 거지. 왜 있잖아. 여러 개의 창을 열어놓고 컴퓨터 작업을 하다 보면 과부하가 걸려 오작동이 일어나게 되는 현상 말이야. 그럴 때는 전원을 끄고 재부팅을 해야 제대로 작동하는 것처럼 과부하걸린 그의 생을 재부팅하라고 사방으로 열린 창을 모두 닫아 주셨던 거지. 과거의 실수와 아픔은 지우고, 화려했던 이력도 지우고, 다시 태어난 것처럼 시작해 보라고.... 


기억나니 리오? 며칠 전, 열어놓은 창문밖에 나타난 무지개말이야.  "무지개다"하며 셀폰을 들이대자 몇 장 담기도 전에 어느새 지워지던.... 무지개를 보려면 비를 견뎌야 한다고 해. 그런데 말이야. 비가 그치고 비바람이 지나갔다고 해서 언제나 그 자리에 무지개가 뜨는 건 아니야. 그렇지만, 바람이 잦아들고 물이 빠지면 크고 화려한 꽃들에 가려 보이지 않던 풀꽃과 클로버를 찾아내는 눈을 갖게 돼. 너무 흔해서 귀한 줄 몰랐던 세 잎 클로버와 노란 민들레꽃으로 식탁을 장식하고, 저녁이면 돌아와 식탁 앞에 앉을 가족을 기다리는 시간이 설레는 여자의 순한 눈 말이야. 이제, 묵은 계절은 가고 새로운 계절이 피고 있어. 비바람이 몰아칠 때 더 깊이 뿌리를 내린 벼처럼,  펭귄 무리가 혹독한 겨울을 건너기 위해 하는 허들링처럼, 뿌리를 내리고 허들링 하며 견딘 겨울이 가고 봄이 피고 있다는 말이야. 낮은 곳으로 발을 옮겨 터를 넓히는 꽃 백리향처럼, 작지만 향기로운 봄으로....  


*저희 집 강아지(오스트렐리안 쉐퍼드) 이름입니다.


충성스러운 리오와 쿠퍼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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