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지향 Galadriel Nov 12. 2021

아내의 조건

돈은 인격이고 힘이다

모든 대화 끝에 “남자 인생에서 돈, 여자말고 더 중요한거 있어?" 하시는 에드 할아버지께서 황급히 빌딩을 빠져나오고 계셨다. 서둘러 주차를 하고 “어디 가세요?” 했더니 “내가 어디 가겠어, 여자 만나러 가지, 같이 갈래?” 하셨다. 아직도 너무 예쁜 아내와 재미나게 살고 계신 할아버지께서 아내를 두고 여자를 만나러 가신단다. 한때는 '돈'을 전지전능한 '신'으로 모셨고, 뭐니뭐니 해도 여자는 예뻐야한다고 말씀하시는 분이시다.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겠지?' 하며 “제가 쉬는 날 데려가세요" 했다.


매일 아침 중절모에 배낭을 메고 어디론가 외출하시는 할아버지는 2년 전 겨울, 이곳 리타이어먼트 홈에 입주하셨다. 하모니카 연주가 일품인 아내 오드리와 기타 연주가 특기인 할아버지는 입주민을 위한 연주봉사도 하시고 레슨도 하며 재미있고 보람된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 두 분의 싱어롱(sing-along)  타임이 되면 할머니께서 하모니카 연주를 시작하시고 할머니 연주가  끝나면 할아버지께서 기타 연주를 하신다.  할아버지 기타 반주에 맞춰 할머니께서 노래를 부르시면  할머니를 바라보시는 할아버지 눈동자 속엔 장미꽃이 만발한다. 54년을 함께 사셨지만 “아내는 아직도 날 설레게 해”하시는 할아버지는 순정만화에서나 만날 법한 투명인간이시다. 너무 솔직해서 속이 다 들여다 보이지만 부끄러울 것 없는 투명함이 할아버지의 재산이다. 


“돈은 인격이고 힘이야"하시는 할아버지는 돈을 벌고 싶었다. 가능하면 많이 벌고 싶었다. 돈과 자존심 중 하나를 택해야 할 땐 “당연히 돈을 택한다”는 것이 당신의 신념이었다. 돈을 향한 갈망이 얼마나 컸던지 돈 많은 여자와 결혼을 하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정작 돈만 많은 여자가 나타났을 때는 "아무리 돈이 좋아도 결혼을  돈과 할수는 없지" 했다. 부자가 꿈이었지만 결혼하고 싶은 여자는 따로 있었다. 까다롭지 않은 남자였기에 조건은 딱 세가지 밖에 없었다. 첫번째 조건은 "예뻐야 한다" 두번째도 "예뻐야 한다" 세 번째 역시 "예뻐야 한다" 였다. 할머니는 그 어려운 조건 세 가지 모두를 가지고 계셨다.  


예쁘기도 하지만 할아버지라면 끔찍이도 아끼시는 할머니와, 그런 할머니에게 푹 빠져 사시는 할아버지께서 매일 아침 아내 아닌 다른 여자를 만나러 가신다. 입주 후부터 여태까지 폭설이 내렸던 지난겨울 며칠과 주말을 빼고는 아침 일찍 나가셨다가 오후 두 세시가 되면 돌아오신다. 사적인 질문이나 특별한 이유 없이 입주민의 집으로 개인적인 방문을 할 수 없는 회사 규정상 궁금해도 먼저 말씀을 해 주지 않는 이상 내가 먼저 질문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니 가끔은 답답해 숨이 넘어가지만 어쩔수 없이 기다린다. 


할아버지는 4남 1녀 중 세 번째로 위로부터 세 번째 아래로부터도 세 번째로 태어나셨다. 순서나 성별에 상관없이 소중한 것이 자식이었지만 “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였어”하셨다. 자그마한 잡화점을 하셨던 부모님은 첫째는 첫째여서 막내는 막내여서 그리고 바로 아래 여동생은 하나밖에 없는 딸이어서 관심을 주셨다. 늘 혼자였고 혼자 힘을 내야 하는 자신은 몇 날 며칠 학교를 가지 않아도, 나무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지고 코피를 쏟으며 들어와도 걱정은커녕 오히려 말썽을 부리고 다닌다며 혼이 날 뿐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한 번은  같은 반 친구가 생일선물로 받은 축구공을 가지고 왔다. 모두가 함께 공을 차고 놀면서 에드는 끼워주지 않았다. 집에서 부모 형제들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초라한 행색에, 남의 과일이나 따먹고 다니는 에드는 친구들에게도 따돌림 당하는 외톨이였다. 공놀이를 포기하고 뒤돌아서는 에드를 향해 축구공이 날아와 뒤통수를 때렸다. 그 순간, 영혼 없이 던지는 한마디“미안”과 함께 “공이 왜 네 머리로 날아가냐?” 하며 사과 아닌 사과를 해서 오히려 놀림거리로 만들어 놓았다. 약이 오를 대로 오른 에드가 자신은 그보다 훨씬 좋은 축구공을 사고 말 거라며 주먹을 쥐어 보였다. 공교롭게도 그날 축구공이 없어졌다. 모두가 하나같이 에드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아무리 부인해 봐도 소용이 없었다. 무조건 믿어주는 부모가 필요했지만 부모님까지도 자신의 결백을 믿어주지 않았다. 남의 정원의 과일이나 부모님 가게의 사탕을 훔치는 일은 있었지만 먹는 것 외엔 남의 물건을 탐하거나 훔치는 일은 하지 않았다. 먹을 것도 없고 친구도 없어 늘 혼자였던 에드는 폐가에 숨어 사는 고양이들의 친구였고 지붕이나 나무 위에 올라가 행인들을 구경하며 혼자서도 잘 노는 아이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동네에서 뭔가 없어지거나 차 유리창이라도 깨져 있으면 모두가 에드를 의심했다. 그러니 똑같은 공을 사고 말 거라 주먹까지 쥐어 보인 에드가 당연히 범인이었다.


누명을 쓰고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로부터 매질까지 당한 에드는 몇 날 며칠을 학교도 못 가고 외출금지에 집안일을 도맡아 하며 지냈다. 얼마나 억울하고 서러웠던지 교회도 나가지 않던  에드가 “범인을 잡아 주시면 다시는 남의 것을 훔치지도 않고 훌륭한 사람이 될 터이니 꼭 누명을 벗겨주세요”하고 기도했다. “그런데 협상은 잘 이루어지지 않았 어” 하시며 껄껄 웃으셨다. 그렇게 쉬이 느끼던 허기도, 식욕도 잃었다. “그냥 죽어 버릴까, 가출을 할까” 하고 고민할 때였다. 바로 밑의 여동생 다이앤이 “누가 뭐라고 해도 난 오빠를 믿어” 하면서 빵 한 덩이를 손에 쥐어 주었다. 동생이 가져다준 빵을 다 먹고는 공책 한 장을 찢어 "나는 백만장자가 될테다"라고 써서 침대 옆에 붙여 놓았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방청소를 하고는 굴러다니던 책을 읽었다. 배고픔을 잊기 위해서도 뭔가에 집중해야했지만 할수 있는건 공부밖에 없었기에 형들이 읽던 책은 물론이요 신문, 잡지, 광고지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읽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에는 졸업생 대표로 연설을 하고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 공부를 마친 에드는 화학 선생님이 되어 교단에 섰다. 너무 가난해서 받았던 수모 때문에 돈이 벌고 싶었다. "돈은 인격이며 최고의 가치"라 믿었지만 같은 학교 교사였던 지금의 아내 오드리를 만나면서 가치관이 바뀌고 삶의 목적이 바뀌었다. 교과목이나 성적보다 정직과 신의를 강조했고 편견의 위험을 가르쳤다. 영어단어 Prejudice(편견)의 뜻을 몰랐던 내가 Prejudice 가 뭐냐 고 물었을 때 “편견은 경솔함과 무지가 만들어낸 색안경”이라며 친절한 설명을 덧붙여 주셨다.


“부정적 편견은 죄”라 하시는 할아버지께서  편견 없는 여자를 만나 보겠냐고 하셨다. 할아버지의 여자가 궁금했던 나는 ‘케이크를 사 갈까? 스카프를 한 장 살까? 아니 꽃이 좋겠다’며 설렘으로 채운 일주일을 보냈다. 약속한 날 아침,  서둘러 꽃을 사다 포장을 하는데 할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미안해, 오늘은 나 혼자 가야 할 것 같아” 하셨다. 다음날 출근을 하는데 눈 주위에 시퍼런 멍이 든 할아버지께서 나를 보며 멋쩍게 웃어 보이시고는 아무런 말씀도 없이 빠른 걸음으로 외출을 하셨다.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도 못하고 할아버지 뒷모습만 좇으며 또 한주가 흘렀다. 내일은 물어봐야지 하며 잠자리에 드는데  할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셨다. “얼마 안 남은 것 같아”하시며 이야기를 시작한 할아버지는 여자와의 긴긴 사연을 조근 조근 들려주셨다. 


할아버지께서 매일같이 찾아가는 여자는 “오빠를 믿어” 하던 여동생 다이앤이었다. 남편과 사별을 한 여동생은 치매환자 전용 시설에 2년째 살고 있다. 최근에 부쩍 심각해진 치매는 달맞이 꽃같이  얌전하고 조용하던 동생을 집어 삼키고 엉겅퀴 꽃을 토해 놓았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한번 한적 없는 다이앤이  갑자기 난폭 해져서 직원 가족 할 것 없이 아무에게나 욕설과 주먹을 휘두른다고 하셨다. 그렇게 증상이 악화될 경우 가족 외에 외부인의 방문을 금지하고 방문자수와 시간을 제한하게 된다. 난폭함이 사라지자 이젠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잠을 자며 지내신다. 밤낮없이 잠을 자고 깨어 있을 때에는 자꾸만 피곤하다며 누워 계신다. 할아버지 말씀처럼 지상에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나에게 전화를 하시던 엊그제, 잠자는 동생의 귓전에 “너무 힘겹게 싸우지 말고 이제 편히 쉬렴, 내 걱정일랑 말고..."라고 속삭이셨지만 차마 놓을 수 없는 여동생의 손을 붙잡고 “내일 또 올게" 하고 돌아오신 거였다. 


“고마웠다고, 사랑한다고 좀 더 많이  좀 더 일찍 말해줄 걸 그랬어”하시던 할아버지께서 오늘도 외출을 하셨다. 일기예보를 보니 오후엔 비가 온다는데 우산도 없이 나가셨다. 무심히 부는 바람, 가을을 쓸고 가는 창밖에 비가 내리고, 어둠이 드리울 때까지도 할아버지는 돌아오시지 않았다. 



작가의 이전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와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