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신성(Supernova) 폭발]
질량이 큰 별이 생애 마지막 단계에서 급격한 중력 붕괴를 일으키며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하고 폭발하는 현상. 이때 발생하는 밝기는 은하 전체의 밝기와 맞먹으며, 별의 내부 물질을 우주 공간으로 강력하게 방출시킨다.
처음 시작할 때 별은 알았을까.
아주 작게 시작한 중력이 얼마나 많은 물질을 끌어 들일 수 있는지.
그 안의 원소가 핵융합하며 더 무거운 물질을 만들고,
그로 인해 얼마나 뜨거운 에너지를 낼 수 있는지를.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울 때까지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이 열병의 끝은 곧 붕괴라는 것을.
파멸이라는 것을.
모든 내부 자원을 다 사용하고 나서야
별은 일생 중 가장 찬란하게 빛났다.
중심 깊은 곳에 응어리 진 블랙홀을 남긴 채.
처음 시작할 때 우리는 알지 못했다.
작은 우연들이 모여 의미가 되고,
의미들이 모여 얼마나 많은 진심을 만들어내는지.
그로 인해 얼마나 뜨겁게 타오를 수 있는지 말이다.
진심은 맹세를, 맹세는 기대를, 기대는 실망을 낳았다.
더 이상 끌어모을 실오라기 한올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서로를 향해 전부를 내던졌다.
그 끝이 파멸이라는 것을 알았다 해도 다른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중력을 향해 붕괴하는 별도 어쩌지 못했던 것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찬란히 빛났던 '우리'.
허공을 떠도는 폭발한 마음의 잔해.
그 중심 깊은 곳에 검은 응어리로 남은 나의 첫사랑.
[강착 원반(Accretion Disk)]
블랙홀의 강력한 중력에 붙잡힌 가스와 먼지 등 성간 물질들이 그 주위를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며 형성하는 거대한 원반. 물질들이 서로 격렬하게 마찰하며 수백만 도 이상의 고온으로 가열되어 X선을 방출한다. 이 과정에서 물질들은 회전 에너지를 소모하며, 결국 블랙홀의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나선형 궤도를 그리며 사건의 지평선 안쪽으로 서서히 끌려 들어간다.
처음 마주한, 강렬하고 뜨거우며 거대한 그 감정을 어찌할 줄 몰라 쩔쩔맸던 것 같다.
매일이 환희였다가 금세 지옥불에 떨어지곤 했다.
인간이 처음 불을 발견했으나 제대로 다루지 못했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우리는 서로의 마음에 데고 또 데었다.
깊이 사랑한 만큼 깊이 상처받았다.
어설프고 울퉁불퉁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조각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잘 다듬어보려 덤빌수록
날카로운 말들이 서로를 베고 또 베었다.
가속이 붙은 두 마음이 속도를 줄이지 못해
매일 정면 충돌하며 산산조각 났다.
관계의 끈을 놓지 않으려 발버둥 칠수록
더욱 어긋나는 우리는
궤도를 이탈한 천체처럼 방황했다.
우리는 그렇게 빛을 잃고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
블랙홀의 강한 중력에 의해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시공간의 경계면. 이 지점을 통과한 모든 물체와 정보는 블랙홀 안쪽으로만 향하며, 결코 밖으로 되돌아 나올 수 없다.
손을 잡고 나란히 걸었지만,
우리 사이엔 사건의 지평선과 같은,
보이지 않는 선이 차갑게 존재했다.
한번 깨진 유리잔은 다시 영롱히 빛날 수 없는 것처럼,
금이 간 관계를 되돌릴 방법을 찾을 길이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무엇이 너를 그 지평선 너머로 보냈을까.
나는 그저 내 모든 것을 남김없이 태웠을 뿐이었다.
그래, 그게 문제였다.
태양과 적정 거리를 유지한 지구에서
생명이 탄생할 수 있듯이
우리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어야 했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른 시간 지연]
블랙홀의 강력한 중력장 근처에서는 시공간이 극도로 휘어지며 시간의 흐름이 느려진다. 사건의 지평선에 접근하는 물체를 외부에서 관찰할 경우, 물체의 시간은 무한히 느려져 결국 지평선 바로 위에서 멈춘 것처럼 보이게 된다. 물체는 결코 선을 넘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으로 관측되지 않으며, 단지 붉은색으로 변하다가(적색 편이) 서서히 희미해질 뿐이다.
불에 덴 상처가 너무 뜨거워
꺼낼 수도, 마주 볼 수도 없었다.
한동안 ‘우리’의 잔해들이 주위를 떠돌며
나를 괴롭혔다.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빨려 들어간 추억들은
박제된 듯 그곳에서 여전히 나를 지켜봤다.
날 향해 웃어주던 순간에도,
그는 이미 깊게 가라앉아
블랙홀에 발을 딛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추억은 추락한 사랑이 남겨놓은 허상일 뿐.
둘 사이의 무수히 많은 맹세들은 허망하게 흩어져
우주의 별이 되었다.
그것들을 저버린 그의 뒷모습을
영원히 용서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초신성처럼 빛났던 순간들의 잔해 속에서
돌아올 수 없는 경계 너머의 그를
한동안 원망 섞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알고 있다.
우리가 했던 맹세들의 모든 순간들이 진심이었음을.
다만, 영원히
그때의 ‘우리’로 되돌릴 수 없을 뿐이라는 것을.
수많은 화상을 입고서야 익숙히 불을 다루듯,
모든 것을 던져보고 나서야 깨닫는 것들이 있다.
덕분에 조금 더 성숙하게 마음을 다룰 줄 알게 되었다.
차마 마주 볼 수도 없이 뜨겁고 깊었던 상처는
희미한 흉터로 남아 적색편이와 함께 사라져 간다.
흩어지는 붉은 잔상과 함께
무모하고 서툴렀지만 뜨거웠던,
그때의 ‘우리’를
이제는 잘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다.
은하보다 밝게 빛났으나,
어둠보다 더 어두웠던,
굿바이 나의 첫사랑. 나의 첫 이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