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비어있지 않은.
어릴 적 살던 마을에 공터가 하나 있었다. 야트막한 두 동짜리 아파트와 좁은 골목 하나를 마주하고 늘어선 빌라촌 끝자락에 자리한 공터는 족히 빌라 세 동은 들어앉을 만큼 넓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동네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한쪽에선 사내 녀석들이 공놀이를 하고, 다른 한쪽에선 계집아이들의 고무 줄 놀이가 한창이기도 했다. 그러다 공놀이가 무료해진 어느 한 녀석이 고무줄이라도 끊고 달아나면, 놀이는 금세 추격전으로 바뀌었다. 뛰다 지친 아이들은 풀썩 주저앉아 흙장난을 하며 놀기도 하다가 벌레를 잡는데 열중하기도 했다. 이처럼 공터에서의 놀이는 그 정해진 모습이 없었다. 아이들의 기발한 상상력으로 공터는 정글도 되었다가 커다란 성이 솟기도 했고, 출렁이는 바다가 되었다가 안락한 집으로 변하기도 했다.
얼마 전 우연히 듣게 된 노래 중에 ‘보물’이라는 노래가 있다. ‘술래잡기, 고무 줄 놀이, 말뚝 박기, 말 타기, 망 까기 놀다 보면 하루는 너무나 짧아.’ 공터에서 놀았던 나의 모습과, 어린 시절 즐거웠던 기억이 고스란히 녹아있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 시절로 추억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다.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공터는 말 그대로 비어있는 땅이었을지 모르지만, 나에게 그곳은 결코 비어있는 곳이 아니었다. 하루가 짧을 만큼 다양한 놀 거리가 마법처럼 끝도 없이 솟아나는 곳, 기억을 떠올리는 일만으로도 내 가슴을 꽉 채우는 곳을 어찌 비어있는 땅이라 할 수 있겠는가.
열 살 무렵 정월대보름이었을 것이다. 늦은 저녁 부모님과 함께 큰집에서 돌아오던 길이었다. 평소라면 어두컴컴해야 할 공터에 도깨비불 같은 것들이 빙빙 돌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깜깜한 밤의 어둠을 가르며 휭휭 돌던 불덩이들이 지나간 자리로 언뜻언뜻 비치는 친구들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넋을 잃고 바라보는 딸의 속내를 아셨는지 아버지는 금방 빈 깡통 하나를 구해오시더니 깡통 바닥에 구멍을 숭숭 뚫으셨다. 철사로 단단히 손잡이를 만들고 그 안에 나뭇가지들을 넣어 불을 붙이셨다. 아빠의 굵은 팔로 깡통을 몇 번 휘휘 돌리자 자그맣던 불씨가 금세 활활 타오르는 모양이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니었다. 불이 잦아들면 마른 가지를 넣고 다시 몇 번 돌리고, 그러면 다시 불길이 기운차게 살아났다. 아빠의 기막힌 손재주가 만들어낸 깡통에서 불씨는 꺼질 줄 몰랐고, 동네 아이들이 내 깡통에서 불씨를 얻기 위해 줄을 설 정도였다. 깡통을 돌릴 때 흩어지던 불씨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춤을 추던 축제의 밤. 공터에서 누렸던 그날의 희열은 내 기억 속에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아들이 거실 한구석에서 장난감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평소 같으면 저녁 늦게까지 밖에서 뛰어놀았겠지만 겨울이 되면서 유치원을 마치고 바로 집으로 들어오는 일이 잦아졌다. 자고로 아이는 밖에서 뛰어놀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지만 함께 뛰어놀 친구가 없으니 집으로 올 수밖에. 이 동네에서 우리 아들은 밖에서 잘 뛰어노는 것으로 유명하다. 처음 본 엄마들도 아들의 이름을 들어봤다며 인사를 건넨다. 그저 나 어릴 적 생각하고 나가자면 두말없이 밖으로 나가 맘껏 뛰어놀게 했을 뿐이다. 그런 아들이 거실 한구석에서 어깨가 축 늘어져 별 감흥 없이 장난감을 깨작이고 있으니 나도 마음이 짠하다. 딱한 마음에 간식거리라도 챙겨주려고 고구마를 냄비에 올렸다. 솔솔 고구마 굽는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그 시절, 우리의 공터는 겨울에도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 아이들은 공터에 구덩이를 파고 그 곁에 돌을 쌓아 화덕을 만들었다. 집에서 가지고 나온 감자며 고구마를 그곳에 넣고 불을 지피고는 옹기종기 모여 앉아 불을 쬐며 종알거렸다. 뒤통수는 매서운 바람에 시린데 반해 불을 마주한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면, 몽롱한 기분에 취해 넋을 잃고 불꽃을 바라보며 앉아있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불이 사그라지려 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파지와 잔가지를 주워 와 모닥불에 던졌다.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불장난에 감자와 고구마를 숯검정으로 만드는 일은 다반사였다. 새까맣게 탄 고구마 감자를 호호 불어가며 껍질을 벗기면 그 속에 숨어있던 속살이 검게 타버린 껍질과 대조되어 더욱 노랗고 하얗게 빛을 발했다. 도란도란 마주 앉아 입가에 숯검정을 묻혀가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와 감자를 먹을 때의 그 꿀맛이란. 냄비와 오븐에 아무리 그것들을 맛있게 구워보려 했지만 아직도 그 맛을 흉내조차 낼 수 없다. 아마 지금 다시 불에 굽는다 해도 그 맛은 결코 재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때 먹었던 것은 고구마와 감자만의 맛이 아니라 겨울의 묘미였고, 친구들과 함께하는 웃음의 맛이었고, 놀이의 맛이었기 때문이리라.
타이머가 울리는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든다. 고구마가 노랗게 잘도 익었다. 아들은 호호 불어가며 타지 않은 깨끗한 고구마 껍질을 홀홀 벗겨 먹는다. 나는 왠지 내키지 않아 먹으려고 집어 들었던 고구마를 다시 내려놓았다. 그 옛날 나만 진짜 맛있는 고구마를 먹었던 것 같아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이 아이가 커서 열어볼 추억상자에도 꺼내 볼 수 있는 추억거리가 가득 찰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여의치 않은 현실이 갑갑하게 다가왔다. 그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맛있다며 씽끗 웃어주는 아들이 측은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나에게 늘 즐거움을 주었던 공터지만, 그런 공터도 질리는 날이 있다. 만날 밥을 먹으면 어느 날은 라면이 먹고 싶듯이 놀이기구가 있는 놀이터에서 놀고 싶은 날도 있었다. 그러면 동네 아이들은 맞은편 아파트 놀이터에 가서 놀곤 했다. 손바닥만 한 놀이터였지만 그네, 미끄럼틀, 시소가 모두 갖춰져 있어 모자랄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노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경비아저씨가 나타나면 영락없이 쫓겨났기 때문이다. 아파트 주민이 아닌 근처 빌라의 아이들이 놀러 와 기물이 파손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공터에서 다 함께 어울리던 아이들은 놀이터에 가면 아파트 주민과 빌라에 사는 아이들로 나뉘곤 했다. 잘 놀다가도 아파트 아이들이 수가 틀리면 놀이터에서 텃세를 부렸기 때문에 빌라 아이들은 다시 공터로 쫓겨 나와 분을 삭여야 했다. 나도 꼭 아파트에 살아서 놀이기구가 있는 놀이터에서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놀아보리라 다짐하곤 했다.
그런데 그런 날이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공터가 놀이터로 개발이 된 것이다. 빨간 띠가 공터 주변에 둘러지더니 몇 날 며칠 공사로 시끄러웠다. 그리고는 맞은편 아파트의 손바닥만 한 놀이터와는 견줄 수도 없는 커다란 놀이터가 생겼다. 빌라의 아이들은 깡충깡충 뛰며 좋아했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새로 생긴 놀이터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하자며 결의를 다지기도 했다. 처음 며칠은 새 놀이터가 그렇게 근사할 수 없었다. 거대한 정글을 통째로 옮겨놓은 것 같은 스릴만점의 흔들 다리와 동굴들에서의 잡기놀이는 짜릿했다. 날렵한 맵시를 자랑하는 이층짜리 로켓미끄럼틀 꼭대기에 올라가면 하늘에 오른 기분이었다. 동그란 우주선을 닮은 뺑뺑이에 매달려 세게 돌리면 몸이 붕붕 날아올랐다. 온갖 신기한 놀이시설들이 그 넓은 공터에 가득 찼으니 놀이기구를 돌아가며 한 번씩만 놀아도 하루가 다 갈 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공터에서 놀던 것이 그리워졌다. 소꿉놀이를 할 때 손만 뻗으면 닿았던 잡초들과 돌멩이가 모래로 덮여 버렸고, 나뭇가지로 헤집던 개미집들이 사라졌다. 놀이터 가득 깔린 모래 때문에 구슬치기나 딱지치기를 하려면 놀이터 옆 도로로 나가야 했다. 잘 지어진 놀이터에서도 나름 재미있게 놀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던 공터 시절만큼 다양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필사적으로 놀 것을 찾는 일은 줄어들었다. 여름이면 냇가에서 잡아온 가재나 개구리를, 겨울이면 고구마, 감자, 밤 등을 구워 먹는 일도 점점 줄어들었다. 나는 그저 우리가 자라 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놀아달라고 하면 막막할 때가 있다. 술래잡기도 하고, 무궁화 꽃도 피워보지만 엄마와 노는 것은 한계가 있다. 놀이터에서 기다려 봐도 다른 아이들을 구경하기 어려운 날이 많다. 조금 더 크면 학원 때문에 다들 바빠진다던데, 밖에서 노는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 더욱 어려워질 것 같아 걱정이다. 아이들의 잘 짜인 학원 스케줄을 들을 때면, 그 옛날 우리의 공터에 놀이터가 들어서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시절의 나와 같이 지금의 아이들도 그들만의 공터를 빼앗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공터를 즐기고 사랑했던 것과 달리, 우리의 동생들은 새로 생긴 멋진 놀이터를 사랑하지 못했던 것 같다. 놀이터는 공터처럼 늦게까지 아이들 소리로 북적이지 않았다. 세월이 변했기 때문인지, 공터가 변했기 때문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이제 그곳에 우리가 사랑했던 공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비어있는 곳을 채우면 오히려 그것이 갖는 고유한 가치를 잃게 될 때가 있다. 공터도 마찬가지다. 공터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무한한 가능성을 줄 수 있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 시절 우리에게는 멋진 놀이터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빈 공간. 아무것도 갖춰있지 않았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
우리는 그것으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