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빨래는 거의 세탁기로 한다. 간편하고 신속한 스위치 하나면 끝이다. 하지만, 그 간편함이 지치고 구겨진 마음까지 씻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풀어내야 할 억울함이나 한이 가슴속에 쌓일 때, 나는 손빨래를 한다. 비눗물에 담갔던 빨래를 바닥에 패대기칠 때마다 느껴지는 손맛이 통쾌하다. 삶의 무게에 눌려 기절한 것처럼 널브러진 빨래를 심폐소생술 하듯 꾹꾹 누른다. 억울한 듯 빨래들도 버럭버럭 거품을 토해낸다. 첨벙첨벙 맑은 물에 여러 번 담금질하여 말끔히 헹궈내니, 답답했던 내속도 후련해진다. 탁탁 털어 빨랫줄에 널고 나면, 젖었던 순간을 까마득 잊은 빨래들이 햇볕을 즐기며 웃고 있다.
첫째 아이 일곱 살 즈음 일이다.
유치원에서 아빠학교가 열린다는 공지가 왔다. 한 주 내내 토요일에 있을 아빠학교에 대한 이야기가 친구들 사이에서 화젯거리였단다. 평소 활발했던 아들은 그 이야기에 끼지 못해 의기소침한 한 주를 보냈다. 아빠학교 참가 티켓인 '아빠'는 주말이면 더욱 바쁘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 해주기 위해 주말도 반납하고 열심히 살고 있는데, 모순되게도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이 부족했다. 아빠학교에 가고 싶다고 떼쓰는 아이에게 다른 곳에 놀러 가자고 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나도 그 자리에 주저앉아 같이 울고 싶었다.
그때, 쌓여있던 빨래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속상하고 답답한 마음을 추스를 길이 없었는데 잘 되었다 싶어, 평소에 잘하지도 않던 손빨래를 시작했다. 물먹은 빨래를 바닥에 척척 패대기 쳐가며 비누가 으스러질 듯이 비누칠을 하고는 분풀이하듯이 바닥에 빨래를 벅벅 문질러 댔다. 아들의 훌쩍이는 소리 위로 어릴 적 나의 울음소리가 오버랩되어 들려오는 듯했다.
갓 중학교에 입학해 큼직한 교복이 어색하던 어느 날, 부반장이라는 직함이 내 이름 앞에 붙었다. 사람 좋아하는 성격 탓에 여기저기 까불고 다닌 것을 학급 친구들이 좋게 봐준 덕이리라. 스스로 대견스러운 마음이 자꾸만 얼굴 어딘가로 삐져나올 것만 같아 표정관리에 애를 먹었다. 엄마가 좋아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부풀어올라, 집에 오는 내내 발이 땅에 닿긴 닿았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펑!' 부풀었던 마음이 터지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칭찬을 잔뜩 기대하며 서있는 딸에게 보인 엄마의 반응은 북풍한설 보다 더 차가웠다. 돈 들어가게 그런 것은 뭐 하러 해왔냐며 오히려 나를 나무라시는 것이 아닌가. 발가벗고 얼음물 얻어맞는 것 같이 차가운 말들이 살을 에었다. 남들은 못 시켜서 난리인 임원자리인데 기뻐하시기는커녕 속상해하시는 엄마를 보니 계모인가 싶었다.
사춘기 딸의 눈물 바람에도 아랑곳없이 엄마는 빨래를 시작하셨다. 그 작은 체구에서 무슨 힘이 났는지 빨래마다 으스러질 듯 비누칠을 하고 손으로 북북 치대더니 빨래방망이로 사정없이 두드리셨다. 비눗물이 튀는지 이따금씩 고무장갑 낀 손이 눈언저리를 맴돌았다. 퍽퍽 빨래들이 두들겨 맞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내 가슴도 퍼렇게 멍이 드는 것만 같았다. 나는 더 이상 엄마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방망이를 휘두르는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고 서 있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유년의 기억 한 조각을 불러왔다.
기억은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학년이 된 몇몇 선배들이 걸스카우트 단복을 입고 학교에 오는 날이 있었다. 황토색 원피스와 빵모자, 주렁주렁 달린 배지들은 단박에 어린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운동장에 질서 정연하게 모여 두 손가락을 들고 선서하는 모습은 어서 그들의 세계로 오라는 손짓 같았다. 고학년이 되면 꼭 단원이 되기로 친한 친구들과 굳은 약속까지 했다. 그런데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엄마는 단칼에 거절하셨다. 이유는 '형편'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어린 나이에 형편이 무엇인지 알 턱이 없는 철없는 딸은 그것도 못 해주냐며 대성통곡을 했다. 그날도 엄마는 더 이상 말이 없으셨다. 욕실 밖에서 계속되는 나의 간청에도 아랑곳없이 묵묵히 빨래만 하셨다. 엄마의 침묵 속에 몽둥이찜질을 당하는 빨래들의 비명소리가 엄마의 대답을 대신하는 듯했다. 마치 그 방망이질이 나를 향한 것 같아 더욱 서럽게 울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그 모진 매질이 무엇을 향한 것이었는지를.
젊어서 한 고생은 젊어서 끝나면 좋으련만, 함부로 쓴 몸이 이제 탈이 났셨나 보다. 병원마다 원인을 모른다는 답뿐, 엄마의 불편한 다리는 나아지질 않는다. 단발머리 나부끼던 어린 시절부터 온 동네 아이들은 다 업어줄 정도로 아이들을 좋아하셨다는 엄마. 그런데 정작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본인 손주들을 업어주지 못하니, 그 마음이 오죽하실까. 그래서인지 오실 때마다 애들이 사달란 대로 과자며 장난감을 다 사 주신다. 처음에는 애들 버릇 나빠지게 하는 것 같아 만류했지만, 엄마의 이 말씀을 들은 후, 나도 못 이기는 척 넘어간다.
“내가 너 어릴 적에 하고 싶다는 것 못 해준 게 그렇게 미안했는데,
손주 새끼들한테라도 해 줄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그때의 절절한 엄마의 목소리가 아직도 가슴속에서 먹먹하게 울린다.
세탁기가 없는 집에는 탈수기라도 있었던 그 시절, 우리 집에는 세탁기도 탈수기도 없었다. 그런 우리 집의 빨랫줄에 유난히 하얗게 빛나는 빨래들이 바람에 나부끼며 춤을 추곤 했다. 빨래판 위에 치대고 몽둥이로 두드리며 마음의 검은 그림자를 말끔히 씻어내고 싶으셨을 엄마. 자랑스러운 딸에게 장하다고 말할 수도 없는 '형편' 앞에서 엄마가 할 수 있었던 것이 애먼 빨래에게 방망이를 휘두르는 일 말고 딱히 무엇이 있었을까.
엄마가 삶에 지치는 것 같은 날이면 더욱 깨끗이 빛나던 빨래들. 시커멓게 타버린 마음을 씻어내 듯, 깨끗해진 빨래를 보며 느꼈을 엄마의 카타르시스.
며칠 전 전화하신 엄마는 대뜸,
"티브이에서 후랑크소시지 볶는 게 나왔는데.. 너 어릴 때 저걸 그렇게 좋아했는데 내가 못해줘서.
아이고, 지금은 실컷 해줄 수 있는데" 하신다.
"엄마, 나 지금 너무 먹어서 이렇게 됐어! 이제 그만 먹어야 돼. 보다시피 너무 컸잖아. 그러니까 전혀 미안하지 않아도 돼~" 농담으로 받아넘겼지만 마음이 아려온다.
지난한 세월 동안, 엄마는 내가 느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손빨래를 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 아직도 자신을 향한 방망이질을 멈추지 못하신 것 같다.
전자동 세탁기가 집집마다 있는 지금이지만,
엄마의 마음은 내가 손빨래해드리고 싶다.
무수한 방망이 질에도 지우지 못한 미안함의 얼룩을 깨끗이 빼낼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