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일기1

아이들을 기다리며

by 인해 한광일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인해 아이들을 집에 가두고 온라인 수업만을 운영했던 것이 2020년도 였으니까 벌써 1년 반 전의 일이다. 보통 선생들은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과 하루 종일 부대끼며 지내다가 오후의 허리 쯤에서 종례로써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난 뒤 갑자기 텅 빈 교실에 홀로 남는 심정이 참으로 복잡 미묘하다. 병아리 선생 시절엔 이 순간이 더없이 후련하고 짜릿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묘하다. 때로는 허전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느 순간 지독히 고독하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2020년 그때는 그런 아이들조차 볼 수 없었다. 그땐 아이들이 학교를 그리워하듯 학교도 아이들이 정말 그리웠었다. 부분 등교를 거쳐 아슬아슬하게 전면 등교를 유지해 온 지 벌써 한 학기가 다 가고. 우습게도 선생님들은 또다시 아이들의 소란스러운 태도나 쉬 잡히지 않는 질서, 소소하나 끊임없는 말썽들, 두더지 게임처럼 불쑥불쑥 올라오는 다툼들에 머리가 아픈 모양이다.


자료를 정리하다보니 2년 전의 일기를 발견하게 되었다. 하던 일을 놓고 잠시 일기에 빠졌다. 그때를 생각하니 내 유치한 감정이 좀 부끄러웠지만, 개구쟁이들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선생님들에게 용기를 내어 공개하기로 한다.




아침에 나가 학교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오늘도 여전히 운동장이 텅 비었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까르르 깔려야 할 운동장이 벌써 몇달 째 비어 있다. 이런 풍경이 방학이라면 여유롭고 고즈넉한 맛이나 있을 텐데 2학기를 개학하고도 아이들이 여전히 운동장에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는 텅 빈 운동장은 그야말로 살풍경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운동장이 텅 비어 있진 않았다. 무언가 작은 것들이 운동장에 한 발짝 한 발짝씩 발을 들여놓고 있다. 흔히 잡초라 불리는 쇠비름 바랭이 여뀌 뭐 그런 것들이다.

운동장은 웬만해선 풀들이 자라기엔 최악인 환경이다. 일단 그 속살이 부엽토 등 영양가라곤 한 점 없는 맹탕이고, 표면은 또 모래가 덮여 있곤 하나 또 단단하기 그지없다. 거기다가 학기 중이라면 운동장은 매일매일 적어도 한두 반의 수업은 꼭 받들곤 했으니 말이다. 쉬는 시간이든 점심시간이든 틈만 나면 아이들이 공을 따라 이리 우르르 저리 우르르 밟아대는 통에 풀들은 그곳에 뿌리를 내리기는커녕 풀씨가 싹 틔운 예도 거의 없을 지경인 곳이 운동장 아닌가.


그런 땅임에도 이번엔 달랐다. 달라도 많이 달랐다. 코로나19 감염병인지 뭔지가 창궐하여 학교는 개학일이 지났는데도 학교는 온라인 수업을 한다며 교문을 걸어 잠갔었다. 그러면서도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봄처럼 기다렸다.


'아이들이 봄입니다. 학교엔 아이들이 와야 봄이 옵니다'는 식의 글귀를 적은 현수막을 내걸었다. 질병 본부와 의료진의 노력으로 코로나19 감염증이 잦아드는가 하더니만 이번엔 서울 이태원에서 새로이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이 폭증했다. 아무리 그래도 교육은 포기할 수 없으므로 학년 별로 차례를 정해서, 몇 명씩만이라도 직접 얼굴 보며 가르치고자 했지만 그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감염자 수가 더욱 늘어나면 다시 학교를 닫아야 했었다. 학교에 나와서도 아이들은 함께 여럿이 모여 깔깔대며 놀지도 못하게 했다. 깔깔대기는커녕 마스크로 아이들의 웃음마저 틀어막아야 했다. 조금 나아지는가 싶어 다시 조금씩만 요일별로 나누어 등교할 수 있게도 해 보곤 했지만, 광화문 발 코로나19 감염병은 가히 폭발 수준 증폭하여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아이들은 운동장을 밟아보지도 못했는데 다시 코로나19 감염자 수가 폭발하고 말았으니 이젠 엄격해진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실개천 같던 학생들의 등굣길은 다시 막혔다. 이 상황에서는 전면 등교에 대한 기대는 요원하기만 한 것 같다. 학교에서도 더는 상황이 나아지기만을 기다릴 수가 없으니 온라인 원격수업이 전면 확대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비대면 수업이란 뭔가 한참 부족하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학교도 아이들의 영상이 아니라 실체를 부르고 싶다. 학교 운동장도 아이들의 뜀발과 축구공과 때르르 구르는 웃음소리를 받고 싶다. 그러나 감염병 상황은 사람들이 서로서로 더 떨어지라고 요구한다. 구체적으로 코로나19 감염병의 전파 차단을 위해 서로 만남을 줄이고, 규칙적인 운동도 줄이고, 웬만해선 집에서만 지내는 준감금 생활을 견디어 내라한다. 이런 와중에도 자연은 제멋대로여서 장마와 태풍이 한반도를 내습했다. 그것이 본 모습이겠으나 도대체 자연이란 봐주는 법이 없다. 45일을 넘겨 가며 장마가 전국을 흥건히 적시고 찢어댔다. 뒤이어 태풍이 세 개나 다시 우리나라를 훑고 뒤흔들며 지나갔으니 학교 운동장도 마를 새가 없었다. 한 번은 덩치 크고 웃음 좋은 남자 선생님 한 분이 신기하다며 우렁우렁한 목소리고 운동장 한가운데 버섯이 피었더라는 소식을 전해 주고 간다. 얼른 업무를 정리해 놓고 나가보니 과연 운동장 가운데 쯤에서 버섯 하나가 갓을 펼쳐진 채 비를 맞고 있었다.


아마 그즈음부터였을 것이다. 담장 주변에만 둘러 앉아 있던 바랭이 쇠비름 여뀌 제비꽃이 슬그머니 운동장으로 발을 들인 것은, 이렇듯 아이들의 발길이 끊기고 장대비가 연일 퍼부으면서 그 단단하던 운동장이 물러지기 시작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강인한 생명력. 도저히 풀이 자라기 힘들 것 같은 운동장에 풀들이 푸릇무릇 발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잡초의 생명력이 경이롭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학교 운동장은 풀들이 놀(?) 곳은 아니다. 운동장은 이리 우르르 저리 우르르 공을 따라 몰려다니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쏟아져야 할 곳이다.


한참 서서 운동장을 바라보다가 운동장 건너 편 국기 게양대 쯤에 나처럼 운동장을 바라보고 계신 교장선생님을 발견했다. 교장선생님께서도 운동장에 발을 들이고 있는, 잡초라 불리는 그것들을 보셨을 것이다.




큰일났다


큰일났다.

바랭이 여뀌 환삼싹, 냉이풀


애들 없는 운동장이라고

슬쩍슬쩍 발 들여 놓는 거


교장선생님이

다 봤다.


늬들

이제 큰일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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