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도 어머니의 주무시던 자리가 움푹한 것이 어머니는 새벽을 일구러 나가신 것이 틀림없다. 여름의 하루 중 농촌에서 쓸 만한 시간이란 어둠이 허옇게 까무러치기 직전의 새벽뿐이라던 어머니이셨다. 나는 아버지의 삐그덕거리는 자전거가 익지 않아 빈 새벽 어둔 길을 덜 깬 잠으로 비틀거리며 저어간다.
울타리가 낮아서 안마당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집 한 채가 길가에 유난히 바짝 붙어 있다. 게다가 대문까지 반쯤 열려 있다. 저절로 들여다 본 그 집 안마당에는 녹슨 자전거와 녹슨 경운기가 나란히 안채를 바라보고 서 있다. 모든 것이 정지 영상이다. 아니다. 갑자기 젊은 아낙이 파를 다듬던 손을 멈추고 쪼그려 앉아 새벽 신문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장면이 잠 덜 깬 내 눈에 고스란히 들어와 박혔다. 나는 부지런히 어머니가 옥수수를 따는 밭으로 자전거를 저으면서도 대체 오늘 신문에 무슨 뉴스가 났을까 궁금하기 이를 데 없다. 저 아낙 외엔 아무도 깨어있을 것 같지 않은 신 새벽. 전깃줄을 메고 가는 전봇대를 따라 조붓한 농로가 풀어져 있다.
새벽안개에 뿌옇게 낮아진 밭이었지만, 어머니께서 엊저녁 해거름에 들깨 모를 물려놓은 곳곳마다는 두꺼비 새 집 지은 듯 새까맣게 봉긋봉긋하다. 어머니는 벌써 한 자루나 되게 옥수수자루를 우둑우둑 꺾어 내는 중이셨다. 나는 언제나 옥수수 껍질을 벗겨내는 일이 즐겁다. 껍질을 한 잎씩 벗겨 낼 때마다 티끌 없이 깨끗하고 순수한 속내를 점점 더 깊이 만나게 된다. 그럴 때면 나도 때 묻은 마음의 껍질을 한 잎씩 한 잎씩 아니 벗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의 속살 앞에서 그러나 나는 마음의 껍질이 벗겨질 때마다 점점 더 내 지난날의 이기심에 따른 부끄러움이 선연해지고 만다. 잠자리 날개처럼 얇은 속껍질을 벗겨내면 마침내 드러난 것은 진주알처럼 아롱거리는 옥수수 알들이 수많은 이를 드러내며 와르르 웃는 웃음이다. 내 손끝에서 껍질을 벗는 옥수수마다 내게 처음 보여주는 순수의 웃음들이다. 나는 이 새벽 어머니의 뒤를 쫓아 나온 당장의 보람이 행복하다.
새벽은 여전히 동을 틔우지 못했다. 새벽으로 나가셨던 어머니와 함께 다시 새벽을 저으며 돌아온다. 어머니와 나는 각각 두 개씩의 바퀴를 굴리며 새벽을 나섰다가 아직도 벗겨낸 양파 속껍질같이 희끄무레한 새벽길 위로 나란히 두 개씩의 동그라미를 저으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어머니의 자전거는 아버지께서 저 세상으로 떠나시기 바로 전에 어머니께 남기신 마지막 선물이다. 평생 자전거 타는 사람이 부럽다시던 어머니가 아버지 살아계신 마지막 순간에야 자전거를 배우신 일은 참으로 아슬아슬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께서 가시기 전에 그렇게 어머니께 하늘색 자전거를 선사하신 일은 정말이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머니의 하늘색 자전거가 점차 밝아지는 새벽길을 저어간다. 나는 어머니의 자전거를 아버지의 녹슨 자전거로 삐그덕거리며 따라간다. 길가의 담장 낮은 집은 여전히 대문이 반쯤 열려 있었지만, 신문 보던 아낙은 마당에 없다. 아침을 지으러 부엌으로 든 모양이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자전거가 담장 낮은 집의 늦은 새벽을 들여다보며 지나간다.
오늘 신문에 무슨 소식이 났을까? 담장 낮은 집의 아낙을 떠올리며 손도 씻지 않고 신문부터 주워들었다. 그러나 나는 오늘의 신문을 집어 들면서 발아래 새똥이 잔뜩 묻은 헌 신문지를 또한 발견했다. 문간 위의 제비 둥지를 쳐다보았다. 빈 둥지라서 아쉬웠다. 지난번엔 새끼 제비 너댓 마리가 듬성듬성한 솜털머리로 호박 꽃잎 같은 노란 입을 벌리고 재재거리던 둥지였다. 자전거를 세우시던 어머니께서 나의 아쉬움을 눈치채셨는지, 제비들이 다 자라 해가 진 뒤 잠자러만 들어오고 새벽같이 둥지를 나선다며 묻지도 않은 궁금증에 답을 주셨다. 제비 보기가 예전 같지 않은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개량된 주택은 사람 살기에 더욱 적합해졌는지 모를 일이었겠으나 제비가 함께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처럼 각박한 양옥에 제비가 둥지를 튼 것은 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네 어른들의 싱거운 소리처럼 어머니도 무슨 까닭인지 제비를 아버지로 여기신 적이 있었다. 아버지 가신 뒤 육 개월 만에 맞는 첫봄, 마당에 내려앉았던 제비가 어머니 손에 닿을 듯이 가까이 가도 날아가지 않았다는 게 이유이시다. 나도 이유 없이 제비가 반가웠었다. 빈 제비 둥지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아버지의 자전거처럼 주인 없는 둥지는 아무래도 좀 허전하다.
동네에 새벽 신문을 다 넣고 되돌아 나가시는 이장 아저씨의 자전거가 밖이 투명하게 비치는 유리창 한 장을 마치 TV 화면 속인 양 지나가신다. 신문을 주워드는데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광고지였다. 다음 주에 있을 고장 행사에 유명한 가수가 출연하는가 보다. 노래자랑도 겸하는 행사이고 상품으로 대형 TV와 냉장고 등이 걸렸단다. 담장 낮은 집의 며느리는 유명 가수가 보고 싶었던 걸까? 아니 노래에 정말 자신이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아직 해가 산봉우리에 걸려 우리 동네로 넘어오기 전에 어머니의 화덕에 옥수수를 삶는 장작불이 먼저 피어올랐다. 시침이 이제 겨우 6시를 가리켰다. 여름이 게으름을 피우는가 보다. 찜통이 뚜껑을 덜덜거리자 들큼한 옥수수 익는 냄새가 마당으로 번졌다. 아버지 가신 후 어머니께서 혼자 지으신 농사의 첫 수확이다. 어머니가 샛노랗게 익은 옥수수를 예쁘게 골라놓고 해뜨기를 기다리셨다. 어머니는 옥수수를 삶아 놓고 서둘러 아버지께 가고 싶으신 것이다. 생전에 옥수수를 무척 좋아하신 아버지이셨다.
아버지 산소에 잔디가 푸르른 것을 보니 왠지 목이 메었다. 다가가는 발소리에 이슬을 핥던 어리디어린 풀벌레들이 놀래어 풀썩거리며 이리저리 흩어지기 바쁘다. 아버지 묘비 앞에 카네이션이 빨갛게 새로이 피어난 것을 보니 어둡던 가슴에도 빛이 들었다. 지난 어버이날 막내동생이 꽃을 좋아하시는 아버지께 심어놓은 식물이다. 아버지께서는 아이들이 조그만 두 손으로 움켜다 준 도랑물만으로도 이렇게 선홍색 카네이션을 싱싱하게 가꾸고 계셨던 것이다. 어머니께서 카네이션을 몹시 아끼시는 것이 나는 또 몹시 안타깝다.
어머니께서 방금 삶은 옥수수를 내가 사 온 햇포도와 나란히 받쳐놓고 술잔을 채우셨다. 아버지께서 어머니의 새벽 옥수수를 흠향하신다. 어머니의 첫 수확을 흠향하신다. 피워놓은 향연(香煙)이 아버지 누우신 산소를 휘감다가 옅게 흩어진다. 햇살이 금싸라기처럼 아버지의 봉분으로 부서져 내린다. 아버지가 그리운 아침이다. 내가 말없이 아버지 앞에 고개를 떨구고 있는 사이 어머니의 손엔 벌써 잡초가 한주먹이다. 어머니를 따라 잡초 몇 뿌리를 뽑다 보니 안경알에 땀방울이 떨어져 시야가 불편했다. 임시로 옷자락을 당겨 안경알을 닦았더니 안경알이 온통 혼탁해졌다. 땀 찬 옷자락으론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그만 내려가시자며 어머니를 돌아보다가 야윈 어머니의 옆얼굴을 보게 되었다. 애처로웠다. 뜨거운 햇살 아래 오히려 자꾸만 가슴이 시렸다. 어머니의 야윈 얼굴을 보다가 나는 갑자기 새벽에 뒤따르던 어머니의 자전거 뒷바퀴에 바람이 좀 적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아버지께서 계셨다면 어머니는 그렇게 바람이 빠진 자전거를 타지 않으셨을 것이다. 나는 온통 바람 빠진 자전거 바퀴 생각에 어머니를 재촉하여 하산을 서둘렀다.
상추
어머니께
또 상추를 받아간다
그 어떤 젊음보다
생생하고 시퍼런 상추다
자주 내려오지 못했으니
상추는
내가 주는 물을 받아 먹은 적이 없다
이른 봄에도 바빴으니
텃밭은
내 힘으로 일구어 진 적 없다.
내가 내려와 있는 동안
어머니는 일 안 하는 척
내 이야기 듣기만 즐거운 척 하셨지만
노상 어머니의 늙은 손은 젖어 있었다
노상 어머니의 손톱엔 흙때가 끼어 있었다
어머니의 손금엔 방금 전 물든
푸른 물이 들어 있었다
내게도 흰 머리가 나느냐며 어머니는
시퍼렇게 젊은 상추를
한 보따리나 안겨주신다
상추에
단 한 잎의 지분도 없는 나는
어머니의 텃밭에서
가장 싱싱한 상추를 거두어 시동을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