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이의 두 번째 전화였다. 심 선생과 마주 앉은자리에서였다.
- 무슨 전화가 그렇게 길어요?
- 에휴-. 이 선생, 술 한 잔 따라 봐.
- 왜 그러세요, 무슨 전환 데요?
- 이 선생도 이제 20년 넘었지? 특별히 기억나는 제자 있어?
- 그럼요. 해마다 카드 보내오는 애들에, 스승의 날을 챙기는 나이 든 녀석들도 몇 있는데요.
- 난, 잘 된 녀석들보다 가슴 아픈 애들이 나를 이렇게 종종 찾는구먼.
-.... 얘기 좀 해보세요.
- 내가 왜 선○초등학교 근무할 때, 고민 속에 지냈던 얘기 한 적 있지?
- 네. 그 학교 얘기 자주 하셨죠.
- 그 학교 졸업생 아이야, 지금 전화.
- …….
- 나이가 22살이 되었다네.
- 그런데 웬 한숨이세요?
- 21살에 시집가서 애를 낳았다네요.
- 지금 나이는 22살도 빠른데, 21살이면..., 엄청 빨랐네. 요즘 시절에요?
- 걔 6학년 때 내가 담임이었거든.
- 어떤 친군데요?
- 간단하게 말해서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아니었어. 아니 외려 거의 부진아 경계선쯤이었어. 자신감도 없었고, 친구도 없었고, 말도 없었고, 부모가 돈도 없었고…, 알겠지, 어떤 애였는지?
- 그런 아이 반에 한 둘쯤은 있잖아요?
- 그래, 그런 아이였어.
-......
- 신은 공평하다는 말, 사실 그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해, 난.
- 그건 그래요. 요즘이야 돈 많은 집 애들이 공부도 잘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운동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노래도 잘 부른다는 건 이미 상식에 속하는 거잖아요?
- 그래, 그렇지 못한 오문영이 이야기야. 먼저 술 한 잔 따라 줘 봐.
- 심각한 모양이네요?
- 내 어릴 적 생각이 나서 난 오문영 같은 애들 보면 1년 내내 마음이 아릿한 게 그래. 내가 뭘 어떻게 도와줄
길이 있어야지 말이야. 학원에 다닐 형편이 안 되는 아이라 방과 후에 데리고 보충 수업을 해 본들, 지적 능
벽이 보통 수준보다 많이 아래 수준이라 학력에 개선이 있나, 교실 바닥에 마주 앉아 공기놀이를 함께 한들
친구가 없으니 배운 것으로 함께 놀 친구가 있나. 또 워낙 손재주가 없으니 잘하지 못하니 쉽게 재미를 느끼
기를 하나, 이것저것 물으며 이야기를 붙인 들 고개만 점점 깊어질 뿐 마음이 열리기를 하나…, 무엇보다도 6
학년이니 수업이 좀 많나? 걔한테만 이걸 꾸준히 지속하기가 어렵더라고.
- 어떤 아이였는지 알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런 애들, 말썽을 잘 안 피우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면 편할 수도
있는데..., 애쓰셨네요.
- 하여간 그렇게 지내다가 졸업시켰지 뭐.
- 그래요. 뭐 우리가 그밖에 뭘 더 할 수 있겠어요?
- 그런데, 그 애가 이렇게 전화를 해 왔잖아.
- …….
- 교육청으로 해서 졸업한 학교에 물어서, 전에 근무하던 학교로 해서, 지금 내 전화번호를 알아냈다네. 몇
주일이나 걸렸대. 자식이 미안하게 만들잖아.
- ……, 그래도 요령은 생긴 모양이네?
- 아빠는 중학교 2학년 때 간경화로 돌아가셨고, 엄마도 몇 해 전에 돌아가셨대. 어린 나이에 너무 불쌍하다
는 생각이 들더라고. 걔 밑으로 남동생이 있는 걸로 알고 있거든. 그 아일 두고 21살에 시집갔다지 뭐야.
어쩌다 애 엄마가 되어서 어쩔 수 없이 결혼한 거래. 아, 물론 지금은 22살이고. 일반전화다 싶었는데 시댁
에서 전화하는 거래. 신랑이 25살이래.
- 그래도 선생님께 전화를 할 정도면 미몽은 벗은 모양이네요?
- 그럼…, 세월이 얼만데. 세월이 가르친 거지.
- 그런 거 보면 진짜 선생은 세월이에요, 그죠?
- 그래. 맞는 말이야. 세월이 많이 가르쳐주지.
- 그럼요.
-...... 참내, 내가 저한테 머리핀인지 머리띠인지를 사 줬다나…. 그때까지 선물 받아 본 유일한 기억이래. 부
끄럽게 그런 걸 기억하고 있다니….
- 그런 애들이 순수하다는 건 사실인가 봐요. 애틋하네.
- 아니..., 6학년인데 머리가 너무 부스스해서.
- 네에.
- 짜식이 친구를 묻는다는 것이, 완호라고 정말 비행이 심한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 소식 딱 하나 묻데.
-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경험으로 더 잘 아시겠지만 그런 친구들도 대부분은 걱정하던 것보다는 사회에 더
잘 적응하면서, 제 몫 다 하면서 살아가곤 하잖아요.
- 그래, 나도 그걸 믿지. 그렇게 믿으니까 우리들이 이렇게 계속 분필가루 마시는 거 아니겠어?
- 완호 소식은 왜 물었대요?
- 그냥 물었대.... 완호도 잘 살고 있을 거야.
- 그럼요, 또 한 잔 하시죠.
- 문영이가 그러네. 조만간 결혼식 올릴 거라고. 그때 자기가 초청하면 와 주겠느냐고.
- 결혼식을 안 올렸었구먼요. 간다고 하셨겠죠?
- 가야지. 아마도 자기 손을 잡고 입장할 아빠도 친척도 없어서 그런 것 같아. 내가 그럴 자격이 되든 안 되든
문영이가 필요하다면 그 역할해줘야지.
- 그래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런 거 마다할 입장은 아니죠.
- 맞는 말이야. 오랜 시간 음지에 살아온 문영이의 삶이 양지되길 기원하며 마지막 잔 들지.
-에필로그-
오래도록 마주 앉아 말을 트고 지내는, 후배와의 십 삼사 년 전의 술자리가 이토록 생생하다. 문영이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다녀왔다. 그렇게 떠들썩했건만 문영이는 결혼식 후 딱 한 번 다시 전화를 주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얼마 안 되어 이혼했단다. 그 후로 나는 문영이의 소식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후배하고 마주 앉는 자리에서 다시 이 이야기를 올리지 않는다. 인생은 변곡점을 가지는 희곡이므로. 다만 문영일 응원할 뿐이다.
예쁜 것만 예쁜 건 아냐
졸졸
가을 시냇물에
빨간 단풍잎
동동
떠내려온다
아가 손처럼
예쁘고 귀여운 단풍잎 한 장
졸졸
가을 시냇물에
벌레 먹은 단풍잎
둥둥
떠내려온다
애벌레 좀 키우느라
벌레 좀 먹은 단풍잎 한 장
시냇물이 떠 받들고
예쁘지?
예쁘지?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