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피겨

by 인해 한광일

거울처럼 싸늘하고 고요한 은반

겨울 하늘 빛을 닮았다


반질거리는 냉엄의 위로

가녀린 새 한 마리 날아든다


새는

잠깐, 아주 잠깐의 경직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풀어내며

궤적을 그리기 시작한다

궤적을 이끌기 시작한다

새의

투명한 날개와 깃털에

매끄러운 바람이 들러 붙어

파르르 자유를 나부낀다


오랫동안

뼈 속을 비워 왔으므로

새는

깃털처럼 가벼웁다


새가 빠른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얼음 위에는

뚝뚝 끊어진 길들이

수없이 열렸다 닫힌다


이때다,

새는 차가운 칼날을 딛고

견딜 수 없는 자유를 휘감으며 솟구쳐 오른다

한껏 솟구쳐 올랐다가

꽃떨기로 떨어져 내린다


새를 놓치고

넋이 나갔던 은반이 깜짝 놀라

수정 부스러기를 흩뿌리며

얼떨결에 새를 받아 든다


푸드득푸드득

연거푸 떨어져 내릴 때마다

새의 발목 통증은

은반 위에 하얗게 부서지고

그럴 때마다

새의 환희도 함께 흩뿌려진다

마침내 새는

잔여의 자유를 휘감아 여미고

스르르 회오리를 멈춰

한 송이 웃음으로 활짝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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