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서리

by 인해 한광일

애들하고 말싸움 지기 싫었어도,

암만 그랬어도,

울 할아버지 복숭아는

절대로 시금털털하지 않다, 자랑하는 게 아니었다


어쩌다 난

할아버지 과수원의

서리꾼 앞잡이가 되었을까?


딱 한 개씩 만이다 했건만

달다달다 일단 한 입 맛 본 녀석들의 손에

복숭아가 가지 째 부러지며

투둑 투둑 몸서리쳤다.


그만해, 그만해

멈출 줄 모르는 아이들에게 속상한 나는 결국

도둑이야 도둑이야 외치곤

나도 애들이 힘껏 벌려 준

철조망 아가리 사이를 빠져 달아나다가

바지를 찢고 말았다.


그날 저녁 해 떨어지고 난 뒤에야

어둠 속에 몸을 숨기며 집에 돌아왔지만

할아버지는 마구 부러진 복숭아 가지를

아는 체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왜 그날도 다음날도

찢긴 바지를 묻지 않으셨을까?


그날 이후 학교에서

울 할아버지 복숭아는 달기로 소문났고

철조망의 아가리는 점점 더 벌어졌다


할아버지, 복숭아 좀 잘 지키세요.

벌레 다 먹잖아요 해도

벌레도 좀 먹으라지, 먹으면 얼마나 먹겠니 하시곤

이상한 콧노래나 흥얼거리시던

내 유년의 할아버지


딸애의 화장이 좀 유난스러운 날엔

애 야단도 칠 줄 모르냐는 아내의 잔소리를 떼어내며

나도 모르게

할아버지의 콧노래를 흥얼거리곤 하는가 보다


사실 난

할아버지의 복숭아 하나 훔친 적 없지만

할아버지의 이상한 노래 옆에 서서

할아버지의 노래 가락 한 도막만은 훔쳐 내어

지금껏 흥얼거리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