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 모음1

행복한 물고기

역지사지, 지하철 전차 시점

by 인해 한광일

나는

길고 긴 사다리를

뉘여 뒤집어 놓고 다니는

비늘도 지느러미도 없는

쇠로 된 물고기다

식인 물고기다


낚시꾼들은

물고기가 모여드는

포인트를 찾아다닌다던데

내겐, 내가 서는 곳

그곳이 곧 포인트다


먹잇감이라니, 후훗

사람들은

먹잇감에도 순서가 있다며

차례 지켜 줄까지 서는 걸, 뭐

포인트에 잠깐 멈춰 서서

옆구릴 열기만 하면

사람들이 스스로 내 뱃속을 채우는 거지


도심으로 들어갈수록

나는 점점 과식을 하게 돼

날마다 이쯤에선

약간의 복통을 앓기도 하지

건너편에서 헤엄쳐 오는 녀석도

폭식의 소화불량을 품은 눈치야


소화불량은 어쩔 수 없어

나는 위도 소화액도 가지지 않았거든

그러니 사람들은

내가 서서 옆구릴 열 때마다

졸음을 떨쳐내고

다시 멀쩡히 살아나

제 길을 갈 수 있는 거지


도심을 벗어나

교외를 향해

빛나는 길을 달릴 땐

비로소

공복의 행복에 몸이 가벼워져


먹었던 것을 모두

온전히 방생함으로써

나는 먹은 게 하나도 없는 거지

비만 같은 건 걱정 안 해


먹이들아,

내게서 뭐

배울 건 없을까?


이로써 내 먹이는

이로써 내 생은

내일도 풍요로울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