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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해 한광일 Nov 16. 2022

환상의 맛

이 이야기는 어떤 연수의 드라마 대본의 원재료였다는 걸 이제야 밝힌다

  지금이야 무상급식이 학교의 당연한 일상이지만 2,000년 이전엔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1990년 대 중반만 해도 학교 급식은 몹시 갈망되었으나, 쉬 이루어지지 못하고 교사와 학생의 도시락 지참이 상식이었던 때였다. 도시락 세대들이야 그 시절이 아련한 추억이라고 입들을 모으곤 하겠지만, 그건 아마도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묘약인 '세월 저 편의 일'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1994년의 안양 모초등학교의 5학년 o반 교실도 점심시간이 일견 즐거운 분위기인 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모두가 다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점심시간은 빈부의 격차가 여실히 드러나는 시간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가난이 죄이기야 하겠는가마는 다소 심각한 가난은 그 자녀들에게 부끄러움과 소심함과 자기 폐쇄를 겪게 만들곤 했었다. 시어버린 김치 조각, 며칠 째 변치 않는 깍두기, 싱거운 콩나물 반찬만으로는 달걀말이나 소고기 장조림, 불고기 반찬이나 생선 튀김 조각, 견과류가 섞인 멸치 볶음, 다채로운 과일 후식들과 나란히 내어 놓고 내 반찬도 먹어보라고 권하기엔 아이들이라도 자신감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아이들이라서 더 상처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이런 점심시간의 불편은 시골 양평에서나 도시 안양에서나 마찬가지였다. 학교의 점심밥만이라도 평등할 순 없을까 하는 생각은 발령 초창기부터의 고민이며 안타까움이었다.


  양평에서 근무할 때의 도구와 재료들을 다시 챙겼다. 커다란 양푼과 주걱, 고추장과 참기름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 섰다.


  "단맛 짠맛 쓴맛 신맛 중 어떤 맛이 가장 좋을까?"
  이상한 질문에 아이들은 즉답을 못하고 잠시 어리둥절한 뒤에야 단맛이요, 달고 조금은 짠맛이요 하며 자기 취향을 말한다.
  "그리고?"
  '답정너'라는 요즘 말처럼 결국 한 아이가 내 마음속에 이미 정해져 있는 정답을 말한다.
  "단맛 짠맛 쓴맛 신맛이 다 섞여 있는 맛이요."
  녀석 덕분에 드디어 내 환상의 맛 작전을 자연스럽게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준비해 온 양푼과 주걱, 고추장과 참기름을 교탁에 올렸다.
  "오늘부터 모둠별로 그 모든 맛에 감칠맛까지 더한 환상의 맛 점심시간을 시작하고자 하는데, 너희들의 생

  각은 어떤지 모르겠네."

  아이들이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였다.
  "이 커다란 양푼에 선생님 도시락은 물론, 너희들의 도시락 모두 여기에 모을 거다. 물론 모든 사람의 반찬  

  도 다 들어갈 거고. 거기에 마법 참기름과 특제 고추장을 함께 넣고 이 큰 주걱으로 새 요리를 탄생시키는 거다. 너희들이 말한 모든 맛을 가진 환상의 점심시간이 되는 거지."

  "와, 재밌겠다."
  "재밌겠어?"
  "와 맛있겠다."

  환상의 점심시간은 이렇게 안양 oo초등학교에서도 펼쳐졌다. 점심시간만 되면 아이들은 책상을 모두 사방 벽쪽으로 밀어붙이고, 모닥불을 마주하는 듯 가운데 놓인 양푼을 중심으로 교실 바닥에 철퍼덕 둘러 앉았다.

  "진짜 맛있어요."
  "진짜 환상의 맛이다, 그치?"
  인기 많은 재복이가 뚜껑을 반쯤만 열고 혼자 도시락을 먹어치우던 근식이한테 즐겁게 말을 걸었고, 근식이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순간이었다.

  "선생님. 밥이 모자라요."

  "그러냐?"
  내 도시락만 커지면 될 일이었다.

  "선생님, 내일은 저하고 윤덕이가 주방장이에요."
  "그래. 솜씨 기대 할게."
  명희와 윤덕이가 설거지를 마친 양푼을 들고 내게 내밀며 기대에 부풀어 있다.

주방장은 두 명씩이고, 주방장이 되려면 전날 설거지를 해야 했지만 아이들은 매일매일 자기 순서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아이들이 점심시간을 너무 좋아해요."
  가끔씩 아이들의 어머님이 오셔서 참기름과 고추장을 협찬하시며 웃어주시곤 했다.
  "아이들에게 감사할 일이죠."
  그렇게 감사를 아이들에게 돌렸지만, 그 시절 나의 대답은 나의 진심이었다. 마음 아픈 점심 시간이 해결되었으며 아이들이 한결같이 맛있다는 말을 입에 달았으니, 환상의 맛이 인정된 셈 아닌가. 거기다가 영양적으로도 분명히 업그레이드 되었을 한 끼 식사였을 테니까.


  옆반 선생님이 지나가시면서, '선생님도 한솥밥 하시는구나' 하며 지나가셨다. 그때에야 이런 걸 다른 사람들은 한솥밥이라 하신다는 걸, 그리고 적지 않은 선생님들이 이런 점심 시간을 운영한다는 걸 알았다. 어렵던 시절 점심밥이 평등하지 못했던 시절, 교묘한 꾀로 아이들의 도시락을 모아 마구 뒤섞은 뒤, 새로 공평을 나눠 먹던 시절의 추억이며 낭만이다. 때때로 그 시절의 추억을 돌아보노라면, 생각 거울에 아이들의 얼굴이 동글동글 떠오르곤 한다. 하나같이 즐겁고 행복한 얼굴들이다.


* '답정너' 를 풀면- '답은 정해져 있어, 너는 그걸 대답하면 돼'라나.





거울



[1]

볼 때마다 항상

내가 고여 있다


행복하고 싶어

혼자 웃어보곤 한다


어제와 그제

주말의 부스러기를 떼어내며


나는 가끔

나에게 행복을 주곤 한다


[2]

물가에서

거울을 볼 땐


얌전한 나무도 전봇대도

빌딩도 산도


흔들흔들

허리 춤을 추어보곤 한다


물 밖에선

시치미 뚝 떼고 있는 저들도


거울을 보며 추억처럼

버들치와 붕어와

즐거움을 기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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