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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해 한광일 Aug 17. 2023

하지 않겠다, 그리고

아마도 그는 그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큰일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 커다란 용서]


  명예훼손의 성립 요건은 특정성, 비방성, 공연성이라 한다. 그가 누구인지, 어디에 근무하고 있는지, 어느 소속인지 밝히는 것을 특정성이라 하겠다. 누군가를 어떤 존재라며 당사자가 아닌 다른 여러 사람을 향해 지탄하는 것이  비방성일 것이다. 공연성이란 문자 그대로 널리 알리는 것이 되겠다.


  이번 집회에서 수많은 선생님들이 연단에 올라 자신이 받은 모욕과 갑질과 악성 민원에 대해 성토하고 있다. 그러니 비방성과 공연성은 성립된다 하겠다. 그러나 자신이 비방하는 그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으므로 특정성의 요소는 비꼈다 할 것이다. 그렇지만 좀더 조심해야 했을 연사도 있었다. 그는 한 지역에 오래도록 근무해 왔고, 또 현재 근무하고 있는 대규모의 학교에서도 스스로 6년째 근무 중이랬다. 그가 아무리 선글라스를 쓰고 연단에 올랐다 해도 동영상 자료의 그의 얼굴은 너무도 선명하다. 광장에는 4만 명쯤의 선생님들이 모였다고 했다. 그가 아무리 그를 콕 집어 특정하지  않았다 한들, 광장에 있던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사람이 그가 어느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지 알았을 것이다. 더욱이 그는 동학년 선생님들과 함께였다. 동학년 선생님들을 는 다른 학교 선생님들도 적지 않을 테다. 그와 그의 동료들이 특정 지역의 여러 학교를 옮겨 다니며 근무한 까닭에, 그들이 지나온 여러 학교의 이전 동료들이 적지 않것이었다.

  

  선생님 한 분께 전화가 왔단다. 광장에서 그의 연설을 듣다가 몇 마디도 듣기 전에 그가 어느 학교 선생님인지 대번에 알았다는 것이다. 그는 연설자의 지탄을 들으며, 요즘 교장선생님이 고민하던, 3주째 병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고 있다는 바로 그 선생님이란 걸 대번 알겠더라  하더란다. 줄곧 고민이 많던 그 선생님이란 걸 알겠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박수 받는 그 연사의 이야기가 자신은 더 이상 공감되지 않아 그만 몸을 일으키며, 교장선생님이 걱정되어 전화를 드리는 중이라 했단다. 나흘 쯤 뒤엔 학부모로부터 전화가 왔단다. 그의 연설을 동영상으로 보고 교장선생님 이야기도 기가 막히지만, 일이 옳게 처리된 것인지 딱 두번 물은 걸 가지고 자기가 왜 악성 민원인이냐 더란다. 학부모 모임 카페에 교장선생님과 자기 애가 실명으로 오르내리게 되는 거 아니냐는 걱정도 드러내더란다. 상황이 이럴진대 광장에서 자신이 누구고, 어느 학교 소속이고, 교장이 누구인지 특정하지 않았다고해서 불특정성이 유지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처음에는 의아해 하던 두 변호사들도 동영상 자료만으론 특정성을 단언할 수 없다고 했지만, 지금의 상황 전파성만은 추후 자기들의 의견이 조정될 수도 있다고 했다지 않는가. 학부모들이 본격적으로 교문으로 모여드는 개학날 아침, 이 불특정성은 여전히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명예훼손은 형사법 저촉 사항이라 한다. 그는 더 많이 주의했어야 했다. 거의 2, 3년 많아야 10년 이내의 새내기 교사들 중 30년 가까운 경력의 그는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선명하게 인식되었을 다. 한 학교에서 5년 이상 근무한 교사는 적지 않은 수의 학부모에게 인지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 명예훼손은, 설령 그가 사실을 공표한 것이라 해도 처벌되는 특성이 있는 데다가, 더욱이 허위 사실이라면 가중된다.


  시절이 아무리 선생님들의 교권회복 운동의 시기라 하지만, 사실을 왜곡하진 말아야 했다.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지근 거리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잖이 그 학년의 문제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고 했다. 문제에 관해, 학교 안에는 해당 연사와 생각이 다른 선생님들이 적지 않다 했다. 연설자와 그를 동행한 선생님들의 지독한 결집성과 독특한 사고 방식에 고개를 젓고 혀를 내둘러 온 다른 동료들이 여전히 학교에 근무 중이랬다. 1학기 내내 쌓인 수많은 사실들 대부분은 버려두고, 누군가를 악덕으로 내모는 주장은 왜곡과 호도의 의구심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을 모르는 일반 대중들을 향한 일방적인 주장은 악의적인 편집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 대중이 아니라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학교의 동료들에게 그의 주장은 진실을 담보할 수 있을까?


  작은 것을 크게 키워 침소봉대하는 것도 크게 유의했어야 할 사항이다. 사람들에게 거짓된 미움을 크게 불러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면서, 다른 이의 이야기에 그를 급히 당겨 붙여 마치 그 두 인물이 한 인물인 것처럼 들리도록, 음악의 당김음 효과를 사용한 것에 교장선생님은 그의 부도덕성을 질타한다. 동료 직원이 잘못된 상황에서 누군가 웃으(?)면서 퇴임했으며, 슬픔을 자르고 현 교장이 부임하여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학교가 급하게 시작되었다는 말로써, 부임 순간부터 이전과 연결된 자신은 악덕 교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불과 6개월에 접어든 신임 교장을, 악덕 교장으로 규정하는데 훌륭하게(? )성공하고 있다며 헛웃음을 웃으신다.  


  악덕 교장 그가 결심했단다. 자기 학교 교사로부터 느닷없는 저격을 당하고 나서 한 일주일 쯤 지옥 속에서 지냈단다. 억울하기도하고 배신감도 너무 커서 그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마음을 다지고 또 다졌다고 했다. 하도 괘씸하여 그간 그의 비방을 반박하는 자료를 수북이 모으고 정리해 왔다 했다.  녹음자료도, 메세지 파일도, 공문 파일도, 심지어 교무수첩도 반박자료는 어디에나 존재해 있다고 했다. 준비가 다 끝났다고 생각하자 비로소 악덕 교장은 차 한 잔을 책상에 놓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차를 마시는 동안 비로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했다. 법원에 제출할 자료가 충분할수록 그는 빠져나갈 도리가 없을 것이라 했다. 자료가 완벽하고 반박이 정교하면 정교할수록, 그 연사는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랬다.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렀을 때, 교장은 불현듯 겁이 났더란다.  명예훼손이 형사적 사안이기 때문이었단다. 급히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명예훼손은 사실이든 허위든 비방성, 공연성, 특정성의 요건만 갖추면 성립된다던데, 아는 법조인 서넛의 의견을 덧대보니 결과가 무서워졌단다. 그는 선생님의 이름을 잃는 정도가 아니라 어떤 식이든 형벌을 받게 되지 않겠느냔다. 그렇게 되면 그는 지금의 자신만큼이나 괴로울까? 힘겨울까? 원래 거짓된 주장이었으니 명예를 잃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거푸 물었단다. 서울의 그 선생님, 견디다 못해 자신을 버렸다는데, 그도 거기까지 몰리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될까?


  멈추기로 했단다. 정말 바보처럼 그렇게 크게 얻어 맞고도 멈추기로 했단다. 명예살인 정도의 충격을 당하고도 그는 멈추겠다고 한다. 세상에 태어나 별로 좋은 일 한 기억도 없는데, 이참에 정말 큰 용서를 한 번 해보기로 했단다. 그리고 지금은 자기의 무너진 명예와 치욕감보다도 세상의 모든 선생님들의 교권을 일으켜 세워야 할 때라고 한다. 그렇게 말은 하지만 그의 미간의 주름은 그의 깊은 고뇌를 말하고 있었다. 광장에 우뚝 서서 4만 집회자들 앞에서 벼린 칼을 함부로 휘둘러 자기 교장을 난도질 한 그는 시기를 잘 탔다. 그는 정말 좋은 교장을 만났다.




 [ 현대판 노예 해방운동]


  초임 교사를 갓 벗어나 세상에 자신감이 조금 생겼을 때 쯤, 그는 가끔 지인들에게 사람이 밥만 먹고 사는 건 아니잖느냐고 묻곤 했었다. 물론 주석(酒席)이었으므로 어떤이는 '그럼, 그럼' 하고 대답하며 동의해 주었지만, 또 궂은 누군가는 '그럼, 밥도 먹고 술도 먹고 살아야지' 하며 웃음거리를 만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웃자고 대답한 친구가 실은 그런 말을 가장 많이 하던 친구였다. 그런데 한참 시간이 지난 요즘 문득 다시 이 말을 곱씹는 중이다.


   선생님들이야말로 밥만 먹고 사는 존재들은 아닐 것이다. 선생님들은 밥 말고 보람을 먹고 사는 존재라 말한다해도 너무 높였다 말할 이가 있을까? 자본주의가 충분히 성숙한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들의 목표는 어쩌면 더 좋은 그릇에 1등급 경기미의 고봉밥을 제일 목표로 추구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선생님들의 밥그릇은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다. 게다가 밥이 고봉으로 담기지도 않은 밥그릇이다. 덜 찬 밥그릇으로도 그동안 선생님들이 즐거운 식사를 해 온 것은 부족한 부분에 보람이란 걸 채워 밥술을 떠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선생님들의 얼굴에서 황달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밥상에 앉은 선생님들의 밥그릇이 이상해 보였다. 예의 그 부족한 부분에 채워졌던 보람이라는 것 대신에 엉뚱한 것이 솟아 있었다. 절망이라는 것이었나보다. 좌절이라는 것이었나보다. 적지 않은 선생님들이 밥을 잘 뜨지 못한 채 식사를 마치곤 하는 것이었다.  선생님들의 황달기는 십여 년 전쯤부터 얼비쳐 오던, 제법 병력이 깊은 증상이었지 싶다.

 

  서울 모 초등학교 교사가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가 유명을 달리한 지 한 달을 넘기고 있다. 하지만 그를 추모하는 선생님들의 곡소리는 오히려 더욱 높아지고 있다. 아니 선생님들의 울음 소리가 이제는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르치는 보람을 밥으로 알던 선생님들이었지 않은가. 그런 선생님에서 십여 년만에 급전직하(急轉直下)하여 현대판 교노(敎奴) 수준의 처참한 존재가 되었으니 말이다. 이제 선생님들은 누구에게나 함부로 다루어지고, 꾸지람을 맞고, 천대되고, 책임의 덤터기를 쓰고, 무시의 대상이 되어, 목소리는 언제나 녹음되고, 자글자글 끓는 악성 잔소리를 귓속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낮은 존재, 교노가 아닌가. 지금의 선생님들이란 높으신 시민들의 자제를 가르치는 교노의 처지 딱 그쯤이다. 차제에 가신 선생님 추모의 자리에서 자신들의 울분이 어찌 함께 쏟아져 나오지 않겠는가. 지금의 이 거대한 파도는 말하자면 선생님들의 노예 해방 운동 쯤이라고 비약하고 싶을 지경이다.  선생님들의 울분과 괴로운 곡 소리를 온 나라가 똑바로 들어야 한다. 국가와 국민은 선생님들을 교노(敎奴) 신분에서 건져 올려야 한다. 아무리 공복(公僕)이라지만 시민과 선생님은 어깨 높이가 같아야 한다. 교노에게 가르침을 받는 자녀가 아니라, 모두가 믿고 사랑하는 선생님께 자녀교육을 맡겨야 한다.


  물론 웅덩이 물이 흐려지는 것은 모든 물고기들이 한꺼번에 물탕질을 해대서가 아닐 것이다. 조상들은 옛부터 한 두 마리의 미꾸라지를 경계했다. 실제로도 학교가 흙탕물이 되는 건 한 두 마리 미꾸라지 때문일 것이라는 것 쯤은 우리도 잘 안다. 선생님이 교노(敎奴)의 처지가 되자. 학교마다 같잖은 수염 좀 있다고 유세하고픈 미꾸라지들이 학교란 맑은 물을 흐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선생님들께 다시 교육권이란 올바른 관을 씌워 모든 시민들과 평등한 지위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미꾸라지를 대등하게 대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한 두 마리의 미꾸라지 때문에 학부모란 이름의 국민들 대다수는 고개를 떨구고 있다. 서울 모 초등학교 선생님께 아무런 책임이 없으면서도 광장에 모인 선생님들의 울분을 이해하면서도 더불어 매도되는 듯한 분위기가 적잖이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적을 색출하려는 것이 아니다. 선생님이고 싶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고,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을 가르칠 환경을 회복하고 싶은 것이다. 그들은 선생님을, 여전히 아이를 가르쳐주는 사표로서 존중하는 지성들이다. 선생님과 진심으로 자녀의 문제를 상담하고자 하는 그들의 정당한 민원에는 함께 진지한 마음으로 마주 앉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오히려 선생님이 해당 학부모님을 정중하게 모실 것이다.


  너무 급히 밥을 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서울 모 학교 선생님의 안타까운 죽음은, 가뭄에 바싹 마른 풀밭에 불을 댕긴 듯  온 들판을 일거에 태우 듯, 지금 우리는 충분히 생각하지도 않고 들불처럼 타오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처럼 큰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의 고뇌와 공청회도 없이 긴급히 대책이 나오려 하고 있다. 한달 여 만의 긴급한 대책이란 것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내모는 졸속에 불과하게 될까 걱정이다. 뜨거운 불에 급히 지은 탄 밥이 될까 걱정이다. 폭탄 돌리기 말고 폭탄 해체가 되어야 한다. 모두가 안전하고 모두가 안심해야 한다. 조금만 더 신중하면 안 될까? 폭탄에 대한 전문가를 좀더 모으고 공청의 과정을 좀더 가지면 안 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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