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

껍데기가 왜?

by 인해 한광일

맴-

외마디 소리와 함께 매미가 수액을 뿌리며 날아가 버렸다. 매미를 향해 내뻗었던 손이 부끄럽게 되었다. 몸이 좀 굼뜬 2학년 아이 진호에게 대신 매미를 잡아주겠다는 호언은 간단히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몸을 돌이키려다 말고 다시 나무를 향해 돌아섰다. 나무 둥치에 붙어 있는 매미껍질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진호의 손에 가만히 매미껍질을 놓아주었다. 실망하던 아이의 얼굴에 다시 불이 켜졌다. 오히려 더 신기해한다. 매미껍질을 보물인 양 신기해한다. '꿩 대신 닭' 이 아니라 '꿩대신 봉황'이었나 보다. 그것으로 임무를 종결할까하는데 갑자기 다시 귓가에 매미 울음이 끓었다. 살펴보니 바로 그 나무 둥치에 새 매미가 날아와 붙어 있었다. 이번엔 조금 더 조심조심 다가가서 단번에 손을 덮쳤다. 결국 의기양양하게 진호의 손에 진품을 쥐어 주었다. 그러나 진호는 매미를 쥐곤 어쩔 줄 몰라 한다. 커다란 눈과 입과 얼굴 표정을 한꺼번에 일그러뜨리며 온통 겁을 집어 먹는다. 결국 다시 날려 보내기로 진호와 새로한 합의가 즉시 실행되었다.


진호는 틈만 나면 매미껍질을 만지작거렸다. 아마도 매미껍질을 매미의 헌옷이나 집쯤으로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녀석의 매미껍질을 넘겨다 보다 보니 저절로 어릴 적 시골 생각이 났다. 그러다가 마음이 찌르르 아파왔다. 내게도 매미 껍질처럼 벗어놓은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이다.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가 혼자 지내고 계신 시골집이 있건만, 나는 매미가 벗어놓은 껍데기를 다시 찾지 않듯, 시골에서 홀로 늙어가고 계신 어머니를 잘 찾아 뵙지 않았다.


저녁 무렵 비가 내렸다. 남들처럼 비 오니 막걸리 한 잔이 생각난다. 사람으로서 미물 매미처럼 귀하디 귀한 껍데기를 오래도록 돌아보지 않았다니, 매미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스스로 부끄러웠다. 결국 막걸리 잔을 기울이고 말았다. 아이들을 불러놓고 술주정을 부렸나보다. 너희들은 이 다음에 결혼하거든 애비 에미를 찾지 말고, 너희들의 삶이나 열심히 살라는 둥 실없는 자책을 늘어 놓았나 보다. 그 소리가 듣기 싫었는지 아내가 빨래감을 모으더니, 네 아버지처럼만 살지 않으면 된다며 맵사하게 한 마디 떨구어 놓고 일어선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랬던가? 여우도 죽을 때가 되면 제 살던 굴을 향해 머리를 둔다고 하는 그 말. 그것이 어찌 여우의 마음 뿐일까. 마지막 순간에 제가 나고 자란 곳을 그리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사람의 수구초심 역시 자기가 나고 자란 지붕과 마을과 개울과 들녘을 다 그리고 나서, 동무들까지 두루 그릴 것이다. 그리고나서 정말 마지막으로 그리는 그리움의 끝, 자신의 껍데기. 언제나 안타까움과 슬픔으로 빛나는 그 고귀한 껍데기, 어머니다. 어릴 때 밥 먹으라고 동생이 부르러 오기 전엔 해진 줄도 모르고 놀이에 빠졌었다. 그런 오래 전 습관 때문인지, 나는 지금도 사는 데 빠져 해지는 줄도 모르고 있는가 보다. 집에 돌아가, 아직도 소소한 저녁상 앞에서 내가 오길 기다리실 나의 소중한 껍데기는 생각도 못하고 있나 보다. 나의 귀한 껍데기와 마주 앉아 따뜻하고 정겨운 식사를 나눠야 했건만, 내 귀소(歸巢)는 너무도 드물어 저녁을 여러 번 거르신 어머니는 빼빼 마르셨다.


사람들은 종종 껍데기 귀한 걸 모르고 알맹이만 귀히 여긴다. 뭣하면, 대체 알맹이가 뭔데 한다. 껍데기라도 제법 쓸만 한 물건이 적지 않다. 고대의 함이나 합은 그속에서 어떤 알맹이가 발견되었든, 혹은 알맹이 없이 발견되었든, 껍데기 그 자체가 귀물인 경우가 허다하다. 언젠가 서해 바다에서 온전한 모습으로 건져 올려진 청자는 꿀을 넣었던 그릇이란다. 청자는 실상 무엇을 넣기 위한 껍데기가 아니었던가? 여러 나라에서 만들어지는 북은 아예 짐승의 껍데기인 가죽으로 만들어진다. 껍데기로 만들어진, 알맹이로는 어림도 없는 울림집이다. 과채류에 있어서도 껍질이나 껍데기에 비타민이 더 농후하다는 것은 이미 상식에 속한다.


껍데기가 외면받는 이유는 아마도 거친 느낌, 세련되지 못하고 다소 궁상스런 느낌 때문은 아닐까? 그러면 우리의 시골집은? 우리의 어머니는? 역시 다소 거친 느낌에, 다소 불편하기 때문인가? 어머니와 시골집은 우리의 소싯적 추억과 정감이란 알맹이를 담아낸 위대한 껍데기다.


매미를 미물이라 부르는 이유를 제가 나온 제 껍질을 온전히 버릴 뿐,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라 해석하면 많이 억지스러울까? 어머니는 물론이거니와 시골집 역시 우리의 유년의 껍데기, 귀한 옷이다.

매미껍질 덕에 매미같은 못난 잘못을 깨달았으니, 몸을 일으켜야겠다. 마침 어머니 생신이 가깝다. 어머니를 뵈러 갈 일이 생겨서 기쁘다. 그렇지만 생신보다 먼저, 어머니가 보고 싶은 어느 날, 갑자기 불쑥 어머니께 퇴근해 보련다.







밤송이




온 몸으로 품어서

비바람 막아 주었지


따가운 햇살 막아 주었지

벌레 막아 주었지


거의 다 그 속에서

토실토실 여물었지


지금은 저렇게

껍데기로 버려졌지만


알맹이들은 다

저 껍데기가

배 아파 낳은 것이란 걸


알까?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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