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에 살어리랏다’ 던 우리 고려의 선조는, 그러나 끝내 청산에서 구름처럼 물처럼 바람처럼, 미련도 욕심도 인간사의 부대낌도 떨쳐내고, 자유롭게 살아내지 못했나 보다. 사람을 떠나면 거칠 것 없는 자유로움과 가벼움만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 것과는 달리, 오히려 청산에서 사무치는 외로움과 시름을 겪느라 힘겨웠던가 보다. 사랑도 미움도 없이 살고자 하는 데도 느닷없이 돌팔매를 맞았나 보다. 해물이나 주워 먹으며 바다로 가 살겠다면서도 해금 소리에 이끌리고, 미혹되었나 보다. 술 익은 향기야말로 떨쳐내기 어려운 유혹이었나 보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처음 속세를 버리고 산중으로 들어갈 때의 심정이야 말해 무엇하랴. 얼마나 야속한 속세이고, 혐오스러운 세상이었을까. 살다가 무엇이 잘못되어 자연인(?)으로 사라지려 했을까? 생전 살아 본 적 없던 청산에서의 삶이 얼마나 고되었을까? 혹시라도 조금 나을까 하여 그는 다시 바다로 가보겠다는 것이었을까? 그곳에선 삶이 좀 나았을까?
굳이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정의가 아니더라도, 고독을 즐기며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람들조차도 한동안 옆에 누가 없으면 이내 고독에 빠지곤 한다. 더욱이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사람들의 청산행(靑山行)은 생각하기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들의 청산행은 곧 친구들과의 위락(慰樂)을 위한 등산행(登山行) 일뿐이리라.
사람이 물고기라면 사회는 물이라는 비유에 동의한다. 그러니 사람은 사람들 사이에서 삶을 일으키고 가꾸며 이야기를 나누고, 사랑을 지으며 그의 온 삶을 의탁한다. 그래서 사람에게 청산과 바다는, 귀의(歸依)하는 곳이 아니라, 삶을 위해 나갔다가 돌아오는 곳이다. 청산별곡이라는 게 이미 자연인의 삶이 얼마나 고독하고, 서글프고, 힘겨우며, 피폐한 지, 먼저 그리 살아 본 고려 선조의 노래가 아닌가.
젊은 시절, 근무지를 1년 만에 옮기게 되었었다. 1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정을 많이 받은 터라 아쉬움이 컸다. 그리고 새 근무지에서 다시 1년이 지나자 학급 감축으로 인해 또 근무지를 옮겨야만 했다. 참으로 묘하게도 이런 일이 계속되어 5년 만에 네 번째로 근무지를 바꾸게 되었다. 젊은 시절이었던 만큼 의기투합하던 벗들도 많았지만, 속절없는 근무지 변경으로 인해 저절로 벗들을 잃게 되었고, 내 다섯 번째 근무지로에서는 동년배를 거의 만나지 못한 불운까지 겹쳤다.‘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말을 실감하면서 그 시절 많이도 울적했던 것 같다.
다섯 번째 근무지는 칠, 팔십 명의 직원 수를 헤아리는 대규모의 학교였다. 그러나 비슷한 또래가 없고, 미혼자가 거의 없어 퇴근 후 만날 사람이 없다는 데에 나의 고독감은 기인하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도 그리 즐겁지 않았다. 퇴근하여 돌아갈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 따뜻한가. 다른 이들은 모두 퇴근하여 돌아갈 사람들에게 돌아가곤 했지만, 나는 퇴근하여 돌아갈 사람이 없었다. 홀로 될 ‘고독’으로 퇴근하는 것이 즐거울 리 없었다.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홀로 청산에 살던 고려의 선조와 별 다를 바 없는 한때였을 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비웃겠지만, 그때 나의 작은 방 하나는, 나 혼자 독거(獨居)하던 섬이거나 청산에 다름 아니었다. 이때로부터 아마도‘인생은 결국 혼자인 삶’이며, 어쩌고 하는 잘난 사람들의 말을 혐오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철학에 문외한이라서 그렇겠지만, 나는 그저‘사람 사는 게 결국은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는 일 아니겠어?’하며 나를 바라봐 주는 눈에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수년 전부터 자연인의 삶이 TV에 조명되곤 한다. 자연인의 삶엔 이유도 사연도 많지만, 그들은 자연에서의 삶에 나름대로 적응하여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모양이다. 청산에 사는 데 성공한 듯이 보이는 그들은 한결같이 자연이 자신의 것이란다. 청산을 소유하고 청산과 소통한다니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현대판 선인(仙人)들만 같다.
내 삶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자연인은 안될 것 같다. 사회 속에서 주고, 받고, 나누고, 돕고, 소통하고, 함께 해야 할 것 같다. 그를 향해 마주 보고, 웃어주고,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며 살아가게 될 것 같다. 세상일이 얄궂어 더러는 이런 삶조차 쉽지 않은 경우가 있는 모양이다. 그렇더라도 조금이라도 사람이 그리운 사람은, 그러나 그것 때문에 청산에 들어갈 일은 아니다. 사람 아닌 대상과 주고, 받고, 나누고, 소통하고, 함께하는 소양을 닦기 전엔 말이다. 그런 소양은 살아가면서 길러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와는 다른, 마음 그릇이 크고, 심장 근육이 튼튼한 비범한 사람일 것이다. 오히려 우리네 보통 사람들은, TV 프로그램의 자연인을 보면서도 청산에 살 생각일랑 접고,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사는 법을 좀 더 연구할 일이다. 나는 사람을 두고 나 혼자서 결코 청산에 들진 못할 것 같다.
사과나무 아래서
사과나무 아래서
철이와 영이가
마주 섰습니다
ㅡ 네가 먼저 사과해
ㅡ 내가 왜 사과해?
사과나무에 대롱대롱
빠알간 사과들
눈이 휘동그래집니다
비바람 잘 견디고
햇살 잘 담아내어
새콤달콤 잘 익은 사과들
눈이 휘동그래집니다
철이도 비바람 햇살
잘 견디었나 봐
사과나무 잎사귀들이
수근댑니다
ㅡ 받아쓰기 60점 맞은 거
민수한테 소문냈잖아
ㅡ 알았어, 그건 내가 미안해
사과나무 앞에서
철수의 얼굴이
사과처럼 바알갛게
익어갑니다
ㅡ 나도 너 뺄셈 못 한다고
윤희한테 말한 거 사과할게
사과나무 아래서
고개 숙인 영이도
사과처럼 바알갛게
익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