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방비로 굴업도에 가다
꿈 하나가 느닷없이 실현되었다. 굴업도를 밟게 된 것이다. 나는 종종 서해의 어느 먼 섬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성격이 소심하여 이것저것 따지는, 결단력 없는 나는, 그래서 결국 일을 망치고 말 때마다 종종 먼 서해 바다의 해무(海霧) 속으로 흐릿하게 지워지고 싶기도 했던 것 같다.
쾌속선이 인천대교 교각 사이를 빠져나가더니, 화선지에 번진 물감처럼 흐려진 수평선을 향해 질주했다. 한 시간쯤 지났으니 연안부두에서 보자면 나를 태운 배는 완전히 지워졌으리라. 배에 있으면서도, 나를 연안부두에 남겨 두어, 바다 저 멀리로 사라진 나의 흔적을 좇아 아득한 눈빛으로 두리번거리는 유치한 장면을 떠올리며 홀로 웃었다.
#1
꼭 굴업도일 필요는 없었다. 사실 굴업도는, 소박한 꿈이 과하게 실현된, 과분한 섬이었다. 처음엔 서해의 섬이란 그저 연안부두에서 한두 시간쯤 떨어진 곳이려니 여겼다. 서해 바다이니만큼, 어느 섬이건 간에 부두의 비릿한 내음과 새우과자를 조르는 갈매기 떼를 즐길 수 있는 화려한 외출쯤으로 상상하고 있었다. 선수에서 거센 바람을 맞으며, 쾌속선일 필요도 없었는데 하며 황송하게 생각하는 사이에 덕적도 선창에 닿았다. 흔들리는 배에서 안전하게 내릴 수 있도록 승무원들이 먼저 내려, 더러 중심을 잡지 못하는 사람들의 손도 잡아 주며 승객들의 하선을 도와주는 장면이 좋아 보였다. 덕적도에 내려 눈으로는 갈매기를 찾고, 코로는 비릿한 내음을 찾았지만 허사였다. 공기는 비릿하지도 않았고, 갈매기는 다른 문명의 새들인 것 마냥 멀리서 뜨악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게다가 굴업도로 이어지는 배로 곧바로 갈아타야 했다. 대체 비릿하고 펄펄 뛰는 서해 바다는 어디로 갔을까? 이쯤에서 회 한 접시쯤 할 수 있으려니 했지만 그것도 실패였다. 모든 내 고정관념의 기대를 여지없이 깨며 배는 거친 야생의 들짐승처럼 우르릉 포효하며 선착장을 이내 떠나고야 마는 것이었다. 배마저도 내가 아는 배가 아닌 것만 같았다.
매캐한 매연 때문에 가끔 콧속이 맵싸했지만, 여기가 다도해가 아닌가 싶게 아름다운 섬들이 스쳐 지나갔다. 서너 시간을 달리는 동안 다채로운 서해의 섬들이 각각 다른 개성을 보여주며 다가서고 멀어지고 하였다. 서해에서 한려 해상 국립공원의 아름다움을 말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을 듯한 바다였다. 나는 서해바다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던 모양이다.
배가 몇 차례 작은 섬에 닿을 때마다 몇몇 승객이 배에서 내리거나 배에 올랐다. 승선하는 사람들 중 한복을 입은 이들이 있어 아직 추석 연휴였음을 상기시키곤 했다. 노부부의 아들 며느리인 듯한 젊은 부부와 손주쯤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배에 올랐다. 그들을 배에 태워 보내 놓고 부두에 서서 한참이나 이녁을 바라보다가 등을 돌려 돌아가는 헐거운 잔등이 자그마하니 애잔하다. 노인네들, 어쩌면 저렇게 어머니에게서 떠나올 때마다 내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시곤 하던, 사이드 미러 속의 어머니의 모습을 닮았을까. 그 섬에도 고깃배는 없었다.
둘째 동서가 가리키는 손끝으로 멀리 바다로 우뚝 솟은 바위기둥이 보였다. 형제바위랬다. 형제바위에 가까워질수록 갑판 위로 나오는 사람들의 수가 늘었다. 바위기둥은 보기에 따라서는 한 개의 덩어리였다가 두 개도 되고 세 개도 되었다. 둘째 동서 형님이랑 삼국사기인지 삼국유사인지에 나오는 만파식적이, 낮에는 둘이었다가 밤에는 하나가 되는 대나무로 만들었다더니, 옛날 같았으면 저 형제 바위도 하나가 되었다가 둘도 되었다가 또 셋도 되는 신기한 섬이었지 않았을까 하는 농을 주고받으며 실없이 웃었다. 이윽고 형제바위는 세 기둥으로 되어 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정도의 거리로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 카메라와 휴대폰을 꺼내 들기 시작하였다. 배가 그 곁을 스칠 때쯤 준비한 망원경으로 살펴보니 그중 가운데 바위의 머리 꼭대기에 풀이 자라고 있는 모습이 선연히 들어왔다. 갈매기 몇 마리도 쉬고 있었다. 그래, 저렇게 망망한 바다라면 갈매기도 날개 짓을 쉴 만한 쉼터가 필요할 터였다. 삼 형제 바위를 지나 얼마나 더 가면 굴업도일까 하고 좀 지루해지려는데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몸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짐을 정리하여 갑판 위로 다시 나왔을 땐, 배를 탔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선을 대기하고 있었다. 내리지 않는 사람들은 아마도 우리 같은 섬 여행객이 아니라, 섬에서 뭍으로 돌아갈 사람들 이리라. 아침 8시에 탄 배가 몇 분 지체도 없이 달려 오후 2시 30분이 되어서 결국 굴업도에 도착했다.
#2
굴업도 선창가가 붉은 물결로 웅성거렸다. 굴업도의 무엇이 이들을 불러들이는 걸까? 섬 여행을 한다면서도 굴업도에 대한 조사가 적었던 나는 굴업도의 인기 요인을 알지 못했다. 순전히 동서의 연구에 편승한 까닭이다. 굴업도에도 비린내는 없었다. 대신 해변에 셀 수 없이 방치된 거대한 닻이 붉게 녹슬고 있었으나 어선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서해의 본래 모습이 이러했는지 자꾸만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논벌처럼 질척거리고 쑥쑥 빠지는 갯벌과 물씬 풍기는 비린내, 통통배, 그리고 그 위를 연 축제라도 벌이는 양 하늘 가득 너울거리는 갈매기 떼, 선창가 술집…, 그런 것은 다 어디에 있는가?
굴업도에서 우리를 맞이하고 있는 것은 노인이 끌고 오신 경운기였다. 부두는 경운기뿐 아니라 몇 대의 트럭도 배에서 내린 손님들의 짐을 네 손님 내 손님 구분 없이 받아 싣느라 분주했다. 짐을 받아 실은 경운기를 앞세워 보내고 해안으로 난 도로를 따라 걸으며 굴업도가 펼쳐놓은 해안 절경을 느릿한 걸음으로 우선 맛보기로 하였다. 그러나 생뚱맞은 장면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수많은 폐어구들과 각종 쓰레기들이 해안가에 무더기로 산재하거나 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중국 불법 어선들의 폐어구가 서해안 섬 구석구석까지 떠내려 와 이 모양이 되었다더라 하는 동서의 설명이 아니었다면, 이 섬을 찾은 부도덕하고 양심 없는 관광객들의 짓으로 치부하고 함부로 힐난할 뻔하였다.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굽은 길로 들어서며 그늘 덕을 좀 보려나 싶을 때쯤, 예약된 민박집에 도착하였다. 간소하게 늦은 점심을 먹으며 붙임성 있는 맏동서의 민박집 주인장에게 이것저것 묻는 덕에 낯가림이 좀 있는 나도 금방 민박집이 편안해졌다.
내게 굴업도의 기회가 온 것은 순전히 바로 셋째 처형 내외의 배려였다. 두 내외는 벌써 20여 년의 전문 산악인으로, 산악 가이드로, 인천에서 명성이 자자할 뿐만 아니라, 강인한 체력으로 주로 트래킹을 즐기는 분들이다. 나와 아내도 산이 좋기는 하고, 한 동안 작은 산 몇을 즐겨 본 적도 있으나 우리의 산과 그들의 산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들을 따라다니며 즐길만한 체력이 못되었으므로 아예 엄두를 내지 못하는 편이었다. 그런 그들이 산에서 발길을 돌려 맏동서 내외와 우리 내외에게, 험한 고산 협곡이 아니니 유유자적하자며, 바다 쪽으로 길을 열 테니 함께하자고 손을 내민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리킨 손끝은 아이들과 더불어 몇 차례의 경험이 있는 남해안 쪽도 동해안 쪽도 아닌, 내가 '언젠가는'으로 마음의 벽장 속에 넣어 두었던 서해의 섬이었음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3시쯤에 민박을 나서서 아까 보았던 그 바닷가로 향했다. 그 바닷가는 모래 언덕이 양쪽 바다 가르며 건너편에 우뚝 솟은 덕물산과 연평산 발치께까지 닿아 길이 되어 있었다. 방파제를 겸한 도로에서 막 모래밭으로 내려서서 덕물산으로 향하려는데 덕물산 쪽에서 모래밭을 건너오는 하산객이, 바닷물이 합쳐질 수 있으니 산에 다녀오시려면 서둘러야 한다 충고를 건넸지만, 섬 나들이가 즐거운 우리들 중 그 말을 새겨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래밭을 건너며 내가 '서해 바다도 먼바다에 나오니 뻘이 아니라 백사장이군요.' 했더니 바로 손위 동서가 부정한다. 그래도 서해인데 여기만 그렇지 다른 덴 뻘이 아닐까 생각한단다. 굴업도가 처음이니 찬반으로 의견을 지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바, 더 이상 누구도 우리 둘의 어떤 편에서 설 생각을 안 했다.
모랫길을 가면서 나무 전신주가 이어져 있는 것이 눈에 두드러지게 띄었다. 전선은 하나도 걸려 있지 않았고 그 대신 우리들 가슴께 높이로 붉은 칠을 반지처럼 두르고 있는 것이 무슨 표식인 듯했다. 우리 중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지만 별로 개의치도 않았다. 모랫길 양쪽으로 모두 바다가 펼쳐져 있어 경관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한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질 만큼, 예의 그 폐어구가 모랫길 양쪽으로 너무나 어지럽게 상륙(?)하여 흩어져 있는 것에 분노가 끓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종종 우리 앞바다에서 벌어지는 중국 어선의 불법 어획에 관한 뉴스는 왜 불법 어획에 관한 것뿐이었을까? 중국 어선의 폐어구 투기로 몸살을 앓는 섬 이야기는 그저 숨겨 두어도 괜찮은 것일까? 너무 큰 중국에게 우리는 그만한 용기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도 또 누구의 앞바다를 마구 훼손하고 있기 때문인 것일까? 우리 중 누구도 이렇게 먼 섬까지 와서 이렇게 혀를 차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덕물산까지 가는 길은 그리 험로는 아니었으나 운동 부족의 아내는 벅찬 숨을 몰아쉬며 온몸을 땀으로 적셨다. 중간중간 쉴 때마다 청색도 뗬다가 진청색도 띄는 바다의 아름다운 색깔과 섬의 뻗어 앉은 자태가 황홀경이었다. 마침내 정상. 비로소 아내도 시원한 바람을 마음껏 들이켰다. 그러나 역시 트래킹을 전문으로 하는 두 산악인은 그 정도로는 감질이 나는 모양이었다. 숨도 충분히 고르지 못한 우리를 다그쳤다. 배낭을 다시 둘러메며 맞은편의 연평산까지 가야 한다며 몰아붙였다. 힘에 부쳐하는 아내의 상태는 다 함께 하면 할 수 있다는 말로 격려될 뿐이었다. 아내도 체력보다는 의지가 강한 여자였다. 거대하고 가파르게 기울어져 있는 암반이며, 수직에 가까운 밧줄 길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끝내 정상에 발 디딤을 한 아내에게 칭찬이 퍼부어졌다. 둘째 동서의 커다란 배낭이 열렸다. 연평산 정상에서 동서는 더없이 맛있는 커피를 저었다. 따끈한 커피의 휴식은 달콤하기만 했다. 그러나 휴식은 커피잔만큼뿐이었다. 이 멋진 풍경을 어찌 그냥 두겠느냐며 동서는 카메라 플래시를 마구 터트려 댔다. 해가 이울었다 싶었을 때에야 하산이 결정되었다. 가파른 산길 한 고개를 미끄러져 내려갔을까, 그때였다. 우리 중 누군가가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다.
#3
"길이 사라졌다, 바다가 합쳐졌어!"
순간 서로들, 바다와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산을 서둘렀다. 어떻게 하산했는지 모를 지경으로 정신없이 산을 내려왔지만 우리 앞은 길이 없었다. 시퍼렇게 출렁거리는 바다는 모랫길을 삼켜 버렸다. 거센 파도가 우리가 걷던 사라진 모랫길 위를 겹겹으로 덮어오며 잔뜩 겁먹은 우리를 더욱 위협했다. 우리 남자 셋이 누구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공포를 떨치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더 늦으면 낭패가 더욱 커진다는 게 우리의 지론이었다. 남자 셋이 바다를 서로 먼저 건너려고 나선 것은, 서로가 불확실한 깊이와 거친 파도의 험로에 길잡이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나도 그저 그중 키가 제일 컸으므로 깊이에 대해서는 내가 적격이라 생각하고 길잡이를 감행한 것이었다. 바다를 건너며 보니 다행히 나무 전봇대의 붉은 칠 부분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그제야 짐작할 수 있었다. 전봇대의 붉은 칠이 보이지 않으면 건너선 안 되는 바다라는 표식일 것이었다. 서둘러 바다를 건너면서도 물살이 너무 세거나 물이 허리 이상 차오르면 뒷사람들에게 되돌아가라 소리칠 생각이었지만 다행히 물은 아직 허벅지쯤이었다. 무사히 건너자 우리 여섯 명의 얼굴에 비로소 해바라기 웃음이 켜졌다. 여전히 물이 들어오고 있었으므로 지체할 수 없었다. 다시 모두들 열심히 움직였다. 바다에서 도로로 오르는 층계를 다 올랐을 때, 비로소 한숨을 쉬며 뒤돌아 보았을 때, 우리는 모두 기함을 해서 소리쳤다. 바로 그때 바다도 그 층계의 첫돌까지 차올라 우리의 뒤꿈치에서 찰랑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부두로 나가는 도로도 모두 물에 잠겨 지워져 있었다. 실로 모골이 송연했다. 우리 중 누군가가 산전수전 다 겪는다며 농을 던졌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누구도 말 한마디 없이 숙소로 향했다. 갑자기 덕적도에 있다는 굴업도 관리 관청에 은근히 부아가 났다. 섬 어디에도 물의 위험에 대한 글귀가 단 한 줄, 단 한 글자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요? 오늘이 여섯 물인가?"
민박에 돌아와 할머니께 놀란 일을 말씀드리니,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시는 것이 또한 어처구니가 없었다. 민박을 나서기 전에 우리의 행선지를 말씀드렸건만, 바다의 위험성을 알렸어야 했지 않았느냐며 따지려다 말았다. 저녁 상에 다시 민박집 할아버지를 모시고 이것저것 묻고 나서야, 비로소 할머니의 반응이 이해될 것 같았다. 굴업도 주민은 그 당시 정확히 열 가구랬다. 열 가구의 손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도 그 모자란 손으로 버젓이 마을을 이루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일이 차라리 용할 지경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밀물의 위험성에 대해선 할아버지든 할머니든 이야기를 해 주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진했지만, 살아 돌아왔으니 그것으로 됐다며 서로 잔을 마주 하는 것으로 위안 삼았다. 밤늦은 시간까지 남자들끼리 소주잔에 밝은 달을 띄워 우려 가며 마시다가 새벽이 다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비교적 잠이 없고 호기심이 많은 우리 부부는 어제의 그 바다를 다시 보고자 새벽길을 나섰다. 20분이면 닿을 거리라 충분히 감행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었다. 바다로 내려가려면 예의 그 계단이 연해 있는 산길을 통해야 한다. 산길로 20여 미터나 접어들었을까, 갑자기 왼쪽 앞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꽃사슴이었다. 잘 뻗은 나뭇가지 같은 뿔을 인 두 마리의 수컷 꽃사슴이었다. 꽃사슴의 크고 아름다운 모습에 아내가 감탄하는 동안 꽃사슴도 몇 걸음 앞의 우리에게 놀랐는지 꼼짝도 않고 우릴 마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나 두렵다고 생각하진 않았는지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먼저 돌아섰다. 꽃사슴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며 아내가 마치 행운을 본 것 같다며 즐거워했다. 부두 쪽으로 넘어가는 계단을 다 내려서기도 전에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황당해했다. 바다가 참으로 멀찍이도 물러나 있었던 것이다. 이쪽 섬에서 덕물산과 연평산까지 다시 널찍한 모랫길이 놓여 있었다. 계단 끝을 내려서서 도로 아래를 보니 수면으로부터 도로 위까지는 족히 삼 사 미터는 충분할 것 같은 높이였다. 눈으로 처음 만난 심한 조석간만의 차이, 오래간만이다. 서해 바다에 대한 무지로 생긴 어제의 일이 새삼 무서웠다.
#4
아침을 간단히 해결하고 나니 7시가 못 되었다. 굴업도의 또 다른 면모를 보기 위해 다시 민박집을 나섰다. 개머리 언덕이야말로 반드시 봐 두어야 할 풍광이랬다. 마을 뒤로 산을 오르는 길에 손길이 미치치 못한 묵은 밭이 나타났다. 밭은 잡초의 들녘이 되어 있었고, 들깨들이 잡초들에 섞여 자생 식물처럼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열 가구의 손이 얼마나 모자라는 손길인지 실감되었다.
사진 촬영을 좋아하는 둘째 동서가 민달팽이를 발견하고 셔터를 눌렀다. 그래도 하나도 늦을 게 없는 산책 같은 아침 길이었다. 나이 40 후반, 50대, 50대 후반의 여인들이 꽃이 핀 곳이면 어디에서나 발을 멈추고 좋아라 했다. 여자는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아이가 아닌 바에야 소녀인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산등성이를 타고 산을 올랐다. 산이 온통 강아지풀과의 수클영으로 가득했다. 아주 커다란 수클영 카펫이 산등성이를 온통 뒤덮고 있다고 해야 할 판이었다. 손끝으로 수클영 꽃이 강아지 꼬리만큼이나 부드럽게 스쳤다. 우리보다 일찍 하산하는 사람들인가 싶었는데 그들의 배낭이 예사롭지 않았다. 남자나 여자나 배낭이 그들의 머리끝보다 몇 뼘이나 키가 컸으며 무게에도 짓눌린 듯한 모습이었다. 개머리 능선 끝자락쯤에 와서야 비로소 의문이 풀렸다. 비박 야영객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너무나 깨끗했던 어제의 굴업도의 달밤이 떠올랐다. 저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굴업도를 즐긴 것이다. 그들 중 어제 배에서 본 듯한 낯익은 얼굴도 몇몇 보였다. 저들의 굴업도는 붉게 노을이 지는 저녁이었을 것이다. 저들의 굴업도는 아침에 솟아오르는 바다에 씻긴 태양이었을 것이다. 저들의 굴업도 밤하늘에선 유성이 빗금을 긋던 밤이었을 것이다. 풀벌레들이 온통 또르릉거리던 아름다운 불면(不眠)이었을 것이다.
동서 형님의 튼튼한 어깨 덕분에 또 한 번 향기로운 커피로 굴업도 아침 등반의 방점을 찍을 수 있었다. 아내의 다리가 후들거리긴 했지만 끝까지 무사히 산을 내려와서 다행이었다.
#5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알만한 대기업이 이 먼바다 섬을 사서 왜 골프장을 지으려는 걸까? 외려 지금처럼 많은 이들이 이 섬을 맘 놓고 사랑할 수 있도록 배려할 순 없는 것일까? 기업의 사회 기여 차원에서라도 이 섬을 온전히 공공재로 넘겨주는 관용을 보였으면 좋으련만…. 이제 저들의 뜻이 관철된다면, 더 이상 젊은 사람들과 한국의 참멋을 보고파하는 상당수의 외국인들은, 굴업도 개머리 능선에 밤새 누워 쏟아지는 별과 바람과 파도소리에 낭만적으로 눈 마주치며 귀 기울일 수 없으리라. 대신 거만한 샷과 아부의 '나이스 샷'을 외치는 웃음소리만이 간간이 굴업도 앞바다까지 굴러 떨어지리라. 그래선 안 된다며 대기업의 행동을 막으려 한다는 민간 환경단체의 저항이 너무 가냘프게만 느껴지는 것이 나 혼자만의 느낌일까?
굴업도를 나가려면 오후 2시 30분 배에 맞춰야 한다. 이미 굴업도 선착장에 많은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앉아서 아무렇게나 쉬며 담소로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무 명 가까운 외국인들도 어제 우리와 함께 굴업도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점심 먹을 곳이 없어서 애를 먹던 것 같았는데 그래도 어떻게든 점심을 해결했는지 표정들이 모두 밝았다. 배가 왔고, 경운기를 몰고 나온 할아버지가 따뜻한 미소로 배웅해 주셨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배에서 사람들이 또 쏟아져 내리고 우리들이 또 물밀듯이 배에 올랐다.
하늘에서 보면 엎드려 일하는 사람의 형상이라는 이 섬 굴업도로 삶에 지친 사람들이 우르르 진짜배기 휴식을 찾아 몰려온다니, 이름에 비해 좀 재미난 아이러니다. 삼 형제 바위가 다시 우리 배 앞으로 다가왔다가 배 옆을 스쳐 지나간 뒤 뒤로 아득히 멀어져 갔다. 내가 서해로 가장 멀리 나가 본 섬은 이제 굴업도가 되었다.
볼펜 한 자루의 용량
막 생각해 보아도
대략 지금까지
노트 필기 팔천 칠백 자
낙서 팔천 자
비밀 일기 삼천 육백 자
네 얼굴 그림 스물일곱 장
손끝
꽁꽁 언 날 아침마다
잉크마저 얼어
노트 한쪽에 풀어놓은
헝클어진 동그라미 4.7m
정도는 썼을 거야
정말은
나 자신한테도
몰래 감춰 두고
쓰지 못한 그리움 이천 오백 자
그러고도
손톱 때 만큼
까맣게 고여 있는,
아직
얼마나 더 쓸 수 있을지 몰라
버리지 못하고 있는
너의 용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