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신청에 응함

by 인해 한광일

파주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었다. 한겨울 눈밭에 오줌 누고 난 아이처럼 휴대 전화기가 부르르 몸을 내떨었다. 메시지였다. 공개 수업 구상으로 바빴지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주머니를 뒤져 결국 전화기를 열었다. ‘데이트 신청’이란 낱말이 액정에 도드라진 글씨체로 불거져 있다. 성인 업계의 통신 스팸 메시지로 여겨 지울 뻔 하다가, 발신 표시부에 정은서란 이름을 뒤늦게 발견하였다.


첫 발령지의 제자 정은서일 것만 같았다. 정말 그 아이라면 놀라운 일이다. 그 아이는 나와 겨우 한 학기를 넘기고 전학 간, 그 아이일 것이었기 때문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그냥 스팸 처리하기엔 껄끄러웠다. 작업 중이던 컴퓨터 모니터와 전화기 메시지를 번갈아 보다가 정말 은서일까? ‘메세지로 확인이나 해 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데이트에 응할 용의 있음’이라고 짧게 응답 메시지를 전송하고, 다시 컴퓨터 모니터로 눈길을 돌렸다. 그러나 곧바로 다시 전화기가 몸을 떨었다. 다시 전화기를 열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지금 출발할 것이며, 대구 밖은 초행에 초보운전이라서 전화를 못 받을 수도 있다며, 목숨 걸고 오겠단다. 초보운전이라는 문장과 초행이라는 문장에, 대구라는 지명까지 예기치 못한 답장에 몹시도 당황스러웠다. 통화버튼을 눌렀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정말 그 정은서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정말 은서일까? 은서면 그 은서겠지. 아니, 나야 첫 발령 때 제자니까 기억한다지만, 그런데 녀석이 어떻게 아직 나를 기억할까? 그런데 정말 대구에서 오겠다고? 지금? 파주가 얼마나 먼 곳인데…. 퇴근 시간도 지나야 할 텐데…, 나 사는 일산으로 안내해야 하나? 아침부터 은서 때문에 한꺼번에 수업 준비가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초보운전이랬지. 갑자기 아내의 운전 솜씨를 떠올리며, 나 때문에 은서가 겪을 복잡하고 어지러운 상황이 걱정되어 손발이 저릴 지경이었다. 다행히 휴게소라며 전화가 걸려 왔다. 메시지로 만나는 데이트가 아니었느냐며, 정말은 오지 말고 돌아가면 좋겠다고 했더니, 이미 대구 밖으로 나섰는데 데이트 신청을 거부하느냐며 핀잔이 돌아왔다. 그래도 나는 아무래도 은서의 결행(決行)이 두려웠다. 몇 마디 달래는 말을 앞세운 뒤, 그럼 다음에 남편과 함께 오라는 말을 끝으로 서둘러 통화를 마치고자 했으나 은서 쪽에서 전화가 먼저 끊겼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자며 추가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장 메시지도 역시 더 이상 없었다. 한참이 지나서도 은서의 메시지가 더 오지 않으므로 가슴을 겨우 쓸어내리며 커피 한 모금을 넘겼다.


6학년 담임교사의 일이 그렇듯, 일은 이상하게도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경향이 있다. 교실을 미처 정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스피커에서 긴급한 회의가 있으니 빨리 참여하라 채근하는 통에 계단을 뛰어 내려가야 했다. 회의가 끝나고 또 다른 회의가 연석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었지만, 부장 선생님이, 교실에 손님 한 분이 아까부터 와 기다리고 있노라 했다. 아차, 그제야 경희 어머니가 오시기로 한 날이 바로 오늘이었구나 깨달았다. ‘그렇게 쉽게 따로 살기로 결정할’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며, 울먹이시던 경희 어머니의 목소리가 안타깝게 떠올랐다. ‘같이 지내진 못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해 의논하고 싶은 게 있다’시던 깊고 어두운 목소리의 그 경희 어머니와의 상담 날짜를 잊고 있었던 게 죄송스러웠다. 회의가 길어지는 바람에 이미 퇴근 시간이 지났으므로 더욱 미안한 마음이었다.


다행히도 경희 어머니는 불쾌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내게 간간이 눈빛을 맞추면서 미소마저 띠셨다. 나는 그렇게 마냥 기다리셨으면서도 시종 웃음기를 잃지 않는 모습에 미안하고도 한편으론 다행이다 여겼다. 얼른 상담일지를 펼치며 비로소 마주 앉았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경희 어머님.”

“경희 어머니 아닌데요.”

“그럼, 누구…?”

은서였다. 놀람이 너무 커서 말이 막혔다. 정리되지 않아 엉망인 교실 상황에서 더욱 당황스럽고 황당했다. 기어이 대구에서 이곳 파주까지 달려왔다니 뭘 어찌해야 할지 머릿속이 얼크러지기만 했다. 그런 내 앞에서 은서는 자꾸만 배시시 웃으며 앞뒤로 몸까지 흔들어댔다. 비로소 반가움에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어수선한 속에 전기 포트를 찾아 물을 끓이고, 종이컵에 휘휘 저어 커피 한 잔을 내밀었더니, 은서가 내게

‘선생님’ 하며 다정하게 부른다. 왜 그러느냐 물었지만, 대답 없이 내 얼굴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내 잔을 마저 저어 다시 은서와 마주 앉았다. 이번엔 내가 염치 불구하고 은서의 얼굴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이 삼십 중반의 여인에게서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은서를 찾아낼 심산이었다.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의 부끄럼쟁이 정은서의 얼굴이 옅으나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21년 전의 얼굴과 21년 후의 얼굴을 한 얼굴에서 보고 있자니 재미있기도 하고 감격스럽기도 했다. 비로소 아침 열 시쯤의 문자 메시지가 지금 내 앞에 이렇게 은서의 실체가 되어 앉아 있다는 게 기가 막혔다. 그제야 길은 어렵지 않았느냐, 먼 길인데 힘들지 않았느냐, 초행길에 길은 잘못 들진 않았느냐, 밥도 못 먹었겠구나 물었다.


자리를 옮기기 전에 경희 어머니의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이미 늦기도 했지만, 다른 일이 생겨서 부득이 상담을 다음으로 미루고 싶다셨다. 잠시 마음이 무거웠지만, 은서와 나눌 이야기는 아니었다.


여전히 과분하기만 했다. 21년 전 한 초임 교사는 아이들에게 줄 것이라곤 서툰 수업과 가끔 허둥대는 어설픈 판단과 행동, 그리고 풋살구처럼 시큼한 제자 사랑 그뿐이었을 것이었다. 초행길을 자기 말대로 목숨을 걸고 예까지, 21년을 거슬러 오다니 무모한 아이다. 설익어 작고 부끄러웠던 나의 21년 전에 대하여 21년 후의 내 앞의 은서는 정말이지 과분한 선물이었다. 과분하게 돌려받으니 미안했다. 30대 중반의 그녀는 내게 꽃다발을 사 들고 오지 못한 것을 무척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학교 주변엔 꽃집도 없을뿐더러 나는 이미 추억과 기쁨과 고마움과 흥분과 미안함의 들뜬 기분을 꽃다발처럼 가득 안고 있었으므로 정말 괜찮았다.

5학년 2학기를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대구로 전학 간 아이였다. 아이나 어른이나 끼리끼리 어울리는 법인지 그때까지 은서는 조용하고 말 없는 편인 저와 비슷한 성격의 두 아이하고만 도란도란 지내고 있었다. 내게 한두 번 장난을 걸어온다는 것도, 퇴근길의 내 뒤를 졸졸 몇 걸음 따라오다가 저희들끼리 또 킥킥 웃고 하는 정도의 수줍음이 전부였던 아이들이었다. 초임 교사이면서도 나는 우리 반 학생 수가 많은 것이 좋았다. 아이들 욕심이 좀 많았기 때문인지 그때까지 전학 가는 아이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 좋았었다. 그래서 은서가 전학을 간다는 것이 아쉬웠었다.


강원도에 빚이 있다. 강원도 동해시에서의 교편생활은 짧디짧은 일 년뿐이었다. 선배 선생님들로부터도 아이들로부터도 많은 사랑을 받기만 하고 돌려주지 못한 채, 경기도 양평으로 근무지를 옮긴 빚쟁이였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강원도에 진 빚을 갚을 길이 없을 것이다. 가끔 나는 지금도 나의 초임지를 혼자서 한 바퀴 돌아보고, 누구에게도 머물지 않고 몰래 돌아오곤 한다. 학교라는 곳이 다 그렇지만 도색을 새로 하고 화단을 새로 가꾸어도 아이들의 첫 웃음이 떨어진 자리는 지워지지 않는 법인지, 나는 그곳에서 여전히 오래전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긴 빚진 사람이 어찌 자기 빚을 평생 잊겠는가. 교문을 나서다 보면 나 사는 곳을 알아내겠다며, 몰래 내 뒤를 밟던 수줍은 은서의 얼굴과 장난기도 따라나선다. 하지만 은서에 대한 기억은 거기까지이다. 이튿날 은서는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가방을 메고, 대구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며, 혼자서 교실을 나갔기 때문이다. 우리 반 학생 수는 기어코 그렇게 한 명 줄어들었다.


2학년 아이의 엄마라는 은서는 내가 그대로라서 고맙다고 했지만, 내가 그대로라는 것은 과장일 것이다. 아마 은서가 내 모습을 보고 어느새 흰머리가 이렇게 많아졌느냐고 솔직하게 말했어도, 나는 하나도 서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거짓말에 기분 좋게 웃었다. 은서는 내 웃는 모습을 보며, 내가 여전히 푸르게 웃는다지만 그것도 역시 과장일 것이다. 아마도 내가 은서의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나서야 5학년 은서의 흔적을 찾은 것처럼, 은서에게도 푸른 웃음은 미세한 흔적뿐일 것이다. 우습게도 나는 은서에게 젊었던 시절의 윤기 있는 모습이 아니라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번엔 은서도 솔직했다. 이렇듯 퇴색되어가는 빛이라도 고맙단다.


그리움이 많고 정이 많은 은서가 남편과 잘 살아가고 있다니 고마웠다. 얼마 전 회갑을 앞두고 돌아가신 안타까운 아버지를 잘 참고, 어른답게 아픔을 통제하며 지내는 모습이 대견했다. 두 아이를 기르는 일이 기쁘다는 말이 기뻤다. 이틀 전 내비게이션을 사서 달아주며, 1박 2일의 일정을 내어 주었다는 은서의 남편이 고마웠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번쩍 깨달았다. 은서가 초행길인 것을 잊고 밤늦은 시간까지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와 함께 재워 보내려 했지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단다. 그러면 1박 2일을 접고 가족에게 늦게라도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은서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내 앞에서 다시 유쾌하게 말 잘 듣는 초등학생이 되겠다며, 밝은 웃음으로 시동을 걸었다.


10시가 넘어서 출발했으니 아마 상당히 늦게 도착할 것이다. 은서를 보내놓고 나는 이내 후회했다. 그제야 나는 은서의 난시가 있다고 한 말도, 신호등 체계가 대구와 달라서 몇 번이나 정지 신호를 그냥 지나쳤다는 말도 생각났다.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결혼 10년 동안 아이 둘을 키우느라 대구 밖을 나서 보지 않았다는 은서가, 대구 밖 초행길 목적지를 내게로 잡은 것이 또다시 미안해졌다. 안전 운전하라고 메시지를 넣을까 하다가 운전이 위험할 것 같아 그만두었다. 휴대 전화기를 아내의 화장대 위에 옮겨 두었다. 바람 속의 깃발처럼 걱정이 나풀거려 눈이 감기지 않았다. 붙들어 재워 보낼 것을 그랬나 보았다. 딱히 은서가 내게 감사할 일도 추억될 일도 나눠 준 바 없이, 이런 은사 대접이 합당이나한가, 별생각이 다 들고 나고 하는 통에 자꾸만 뒤척거렸다.


아내의 화장대 위에서 드디어 풍뎅이 날개짓 소리가 들렸다. 은서가 잘 도착했다는 메시지였다. 오전 2시 32분이었다. 행복한 졸음이 쏟아졌다. 졸음 속에서 한동안 찾아뵙지 못한 은사님이 생각났다. 웃음이 좋으신 분이신데 큰 수술로 몹시도 고생하신 분이라서 생각만 해도 애달파 지는 분이다. 날짜를 고르다가 잠이 들었다.








논 거울



트랙터가 물논에 들어가

빈자리 하나 없이

골고루 분탕질하며

논을 삶아대고 나면


논은

세상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없는 흙탕물이 된다

그런 뒤엔


마음을 다해

마음을 가라 앉히고


마음을 다해

마음을 가라 앉히고


마음을 다해

마음을 가라 앉혀


마침내

해맑은 거울이 된다


모내기하기 전

논은

마음을 다해


꼭 한 번은

거울이 된다


논도 이렇게

농사짓기 전


꼭 한 번은

온 마음을 다해

하늘을 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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