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버스정류장의 성선설

혹한 속으로 버스가 연착하다

by 인해 한광일

어머니를 기다리는 아이의 눈빛이 저러할까?

사람들은 60번 버스를 고대한다

사막의 미어캣마냥 다 같이 한쪽을 바라보고 서 있다


턱뼈에 얼음이 박히는 기다림은

'오늘도 당신은 나무 한 그루를 심으셨습니다'

문득 떠오른 공익광고 문구에 부아가 난다


아무리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탄다고

땅 속 깊이 뼈가 박힌 이 겨울,

나는 어디에 나무를 심고 있는 건지 알지 못한다


쉬 오지 않는 겨울 아침의 버스는

오래전에 잊었던 욕지거리를

다시 언 입 속에 물려주기 일쑤다


오십 줄의 남자가

기다린 지 20분도 넘었다며 분노를 끌어올린다

그보다 내가 먼저 왔으니까

그가 기다린 건 실은 14분 정도였을 것이다


오늘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나무 한 그루 심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오늘 일부러 늑장 부렸을 리 없는 60번 버스 기사를 증오한다

성선설은 내 안에서 바스러진 지 20분을 넘었다


차를 끌고 지나가고 있다면 나는

부실한 입성으로 냄비 뚜껑처럼 오들 거리는 초등학생 아이를 태웠을 것이다

종아리 발갛게 언 여중생을 태웠을 것이다

담배 연기보다 짙은 입김을 내뱉는 아주머니를 태웠을 것이다


안으로 남모르게 욕지거리를 해 대던 나는 스스로 놀라

조금 전 내던졌던 성선설을 주워섬기며 , 착한 생각을 잠시 일으킨다

인내심의 모퉁이를 돌아 60번 버스가 왔다

먹이를 본 잉어 떼처럼 사람들이 와르륵 모여들었다

버스 안 쪽에 앉을자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얼른 줄의 앞 쪽에 서기 위해 어깨를 들이밀었다

아이가 내 뒤로 밀렸다

내 뒤로 아주머니가 또 끼어들었다

아이가 또 뒤로 밀렸다


버스에 오를 때 주머니에서 무엇인가 툭 떨어졌다

막 움직이는 차창 밖으로

방금 다시 주워 들었던 성선설이 나동그라져 있었다

이전 08화늦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