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의 형태에서 작아짐을 느꼈다.
파트타이머.
나도 일하는 사람이다.
고용의 형태에 대한 정확한 명명이 없을 때에는 ‘어느 가게에서 일합니다.’라고 이야기 했을 터, 파트타이머라는 이름이 나의 소속감을 떨어뜨린다.
팀으로 함께하고 싶지만, 그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 지 궁금하다.
분명 국가는 노동자들을 위해서 울타리를 쳐주는 느낌인데, 나는 되려 밖으로 밀려나는 기분이 든다.
정규직이라는 타이틀이 필요하다.
사랑을 하기 위해서도 정규직이 필요하다.
이 세 글자가 나를 지켜줄 것만 같다.
고용의 안정을 대표하는 이름이지만, 한낱 이름 뿐에 불과하지 않은가?
급을 나눈다.
계급사회는 존속되고 있었다.
계급사회는 더 새분화되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부정한다.
나도 일하는 사람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