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치는 사람들과

마주치는 기억들

by 일과이공

https://youtu.be/Ty2rLMnUF9A?feature=shared



3월이다.


두꺼운 수면 잠옷과 함께

새해를 맞이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가벼워진 옷차림에

봄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몸소 체감하는 중이다.


스무 살이라는 타이틀이 참 반짝여서 좋았는데,

이제는 조금 어른의 행세를 해야 할 것 같은

스물한 살을 맞이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스물한 살이라는 것에 위안을 얻었다


나이를 먹는 것에 유난을 떨기에는

아직 어려도 너무 어리니까.





날씨가 따뜻해지니

저녁 수업을 마치고 자전거를 탔다.


교복 입은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새학기를 맞이하며 새로운 반 친구들이 생긴걸까“

생각이 들면서도,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교실 문을 ‘드르륵’ 열고

발을 내딛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교복 입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있자니

춥고 탁탁하던 이 길거리에 생기가 돋는 느낌이었다.



페달을 다시 밟으며 길을 지나는데,

단정한 앞머리에 긴 생머리, 교복 치마를 입은

여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떠오른 것이 J의 얼굴이었다.


J는 나의 가장 오랜 친구이자 가족인 친언니다.


언니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우린 한 방에서 자랐다.


이사를 전전긍긍하며 우리는

‘나만의 방’이라는 것을 꿈꾸던 때가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언니와 나는

같이 쓸 수 있는 방 한 칸을 얻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동생과 한 방에서

사춘기를 보낸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언니는 그저 방이 생겼다는 것에

무척이나 기뻐했던 것 같다.



그렇게 이른 아침, 졸린 눈을 겨우 뜨면

언니가 교복 치마를 입고

와이셔츠의 단추를 잠그고 있었다.


그리곤 쿠션에 달린 작은 거울에 의지한 채

얼굴을 두드렸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언니의 긴 생머리가 흩날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때는 그 감정을

어떠한 단어로 형용하기가 어려웠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언니가

아름답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내 기억 속,

긴 생머리에 좋은 향기를 품던 언니가

내년이면 서른이 된다고 한다.


내겐 아직도 언니가 분주히 학교 갈 준비를 하는

여고생이어야 할 것만 같은데.


하지만 더 낯선 사실은,

내 기억 속 그 여고생의 나이를 나도

훌쩍 뛰어넘었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시간이 속절없이 흐른다



누구에게나 그 나이에 머물러야 할 것 같은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도 누군가에겐 그런 사람일지도


엄마가 내게 아직도 "아기!"라고 부르는 이유를

이젠 조금씩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다시 자전거를 타던 때로 돌아가자.

자전거 페달을 구르며 집에 다다르자,

내가 다녔던 학교의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이상하게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열아홉을 살 때 나는,

우리 동네를 거닐다 학교 교복을 입은

누군가를 마주치면

이름은 몰라도 모두 아는 얼굴들이라

반가운 마음이 들곤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반가운 마음이 앞설 수 없는 얼굴들이 늘어난다.







이 동네만 해도 머물던 아이들은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어디선가 온 새로운 아이들은

파릇파릇 자라난다.



그 일상의 장면에서도 나는 인생을 떠올렸다.



나 역시 잠시 머물다 갈 한 사람으로서

언젠가 아쉬워질 순간들을 앞두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생각에 잠겼다.


익숙한 길거리를 지나오며

“친구들과 더 많이 웃고 떠들며 놀 걸”

”저 떡볶이 집에서 더 많은 추억을 쌓을 걸“ 하는

마음이 깃들곤 한다.



이런 아쉬움,

저런 아쉬움을 겪다 보면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과

더 많이 웃어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게 된다


때론 아쉬움이

소중한 걸 깨닫게 해주 준다는 걸

깨달은 밤이었다.





오르막길에서 나는 맹렬히 페달 밟는 스물하나다.


땀 흘리다 보면 해가 져 있고,

익숙한 가게의 유리창으로

희미하게 내 얼굴이 비친다.


부디 누군가가 되어야 할 텐데.


지금보다 완성된 누군가.


그러나 아직은 아닌 나의 얼굴.




학생이라는 역할에서 멀어지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멀어진다는 건

다른 어딘가에 가까워진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디쯤인 것일까.


다른 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갈팡질팡한다

진흙 속에 발이 푹푹, 빠지다가도

손에 무언가 잡힐듯하다

찰방찰방 인중까지 차오른 그 쯤에서

손을 뻗고있는 기분이다

나뭇가지도 보이고, 돌도 보이고, 풀도 보인다.


그런 기분으로

”나는 어디쯤일까..“ 한다


어디쯤이든,

늘 머무는 그 ’쯤’마다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고자 마음 먹는다면

그 찌든 진흙탕이

햇살 가득한 정원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은 그런 생각을 했다.








20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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