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아프게도 내 기억 속에 젊고 힘이 넘치는 어머니의 모습은 거의 없다. 왜 어머니를 떠올릴 때면 늘 현재의 나이 들고, 힘없고, 안쓰러운 모습만 떠오르는 것일까? 어머니의 젊었을 때 모습을 기억하려고 애쓰다 보면 어머니는 빛바랜 흑백 사진으로만 떠오른다. 콧속이 매워온다.
내 고향은 반농반어의 섬이어서 어머니께서는 일 년 열두 달 내내 일에 묻혀 사셨다. 늘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었고, 한시도 편안하게 앉아서 식사를 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온 가족이 들에서 일을 하다 해가 뉘엿뉘엿 서쪽 산으로 향하면, 어머니께서는 저녁을 준비하시려고 부리나케 집으로 향하셨다. 사방이 어두워져서 더 이상 들일을 할 수 없을 때쯤, 우리도 일손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니께서는 흙이 묻은 발을 씻지도 못하시고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시고 계셨다. 온 가족 모두 깨끗이 씻고 앉아서 저녁을 먹을 때도 어머니께서는 맨발로 계속 부엌과 마루를 오가며 식사 시중을 드시면서 겨우 마루에 걸터앉아 식사를 하셨다.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의 그런 모습이 안쓰럽고 속상했다. 그리고 ‘나는 커서 절대 엄마처럼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곤 했었는데......
하지만 내 기억 속에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내 어머니의 모습에는 생기와, 힘과, 낭만이 있었다.
늘 바쁜 어머니셨지만 어머니에게도 일손을 멈추고 쉴 수 있는 날이 있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국민학교(초등학교) 운동회는 온 마을의 축제날이었다. 그날 하루만은 어머니께서도 일손을 접고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맛있는 반찬을 준비하셔서 특별한 나들이 때만 쓰는 찬합세트에 정성스럽게 점심을 준비하시고 마치 소풍 오시 듯 그렇게 들뜬 모습으로 학교에 오셨다. 운동장 군데군데 삼삼오오 모여 왁자지껄 웃음꽃을 피우며 점심을 먹을 때, 약간 상기되고 들뜬 어머니의 새로운 모습, 그리고 이어달리기에 출전하여 운동장을 활주 하던 젊은 내 어머니의 모습, 내가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어머니의 모습이다.
내가 어머니의 모습에서 ‘아! 우리 어머니도 감성이 풍부한 여자구나!’하고 여자로서의 감성과 낭만을 보았던 때도 있었다. 그날 나와 어머니는 밭에서 김을 매고 있었다. 김을 매느라 더위에 지친 나에게 어머니께서는 밭에서 당근을 쑥 뽑아 옷에 쓱쓱 닦은 후, 먹기 좋도록 낫으로 껍질을 깎아 나에게 건네신 후 한 입 베어 맛있게 드시며 ‘혜정아, 이것 좀 봐라. 이런 흙 속에서 어쩌면 이렇게 빨갛게 예쁘고 달콤한 당근이 만들어지는 걸까? 참 신기하지 않냐?’라고 하셨다.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 같기도 하고, 한 편의 시를 쓰실 시인 같기도 하고, 한편 금방이라도 사랑에 빠질 것 같이 풍부한 감성을 가진 수줍은 처녀 같기도 하셨던 그때 그 어머니의 모습. 늘 손발에 흙을 묻히고 일만 하시는 어머니인 줄 알았는데, 그날 그런 어머니에게서 뜻밖의 모습을 발견하고 난 참 기분이 좋았다. 내 기억 속에 어머니는 그런 모습으로도 크게 자리 잡았다.
그 후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에도 ‘혜정아, 너도 이제 대학생이 되었으니 술 한 잔쯤은 마실 줄 알아야 한다. 나는 농사일을 할 때도 막걸리 한 잔만 마시면 발걸음이 새털처럼 가벼워져서 아무리 힘든 일도 기분 좋게 할 수 있더라. 너도 나를 닮았으면 술을 좀 할 수 있을 것이니 이리 와서 나랑 술 한 잔 하자.’ 하시며 나에게 처음으로 술을 가르쳐 주셨던 낭만 가득한 우리 어머니. 밭에서 김을 매며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처녀 시절의 로맨스를 은근하게 펼쳐 놓으시던 그 낭만과 추억으로, 그리고 우리들 커가는 모습을 보시는 것으로 어머니는 일 년 열두 달 내내 계속되는 힘든 노동의 시간을 견디셨을 것이다.
어두운 밤 시골집에서 혼자 텔레비전을 벗 삼다가 주무실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아마 자식이 그렇게 살고 있으면 절대로 혼자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지금도 시골에서 혼자 계신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14년 동안 어머니는 혼자의 시간을 겉으로는 당당하고 건강하게 살고 계시는 듯 보이지만 어쩌면 그 시간들을 견디고 계시는 것일 수도 있다. 자식이 일곱이나 있는데도 오늘 밤 텔레비전을 친구 삼다가 주무실 어머니.
짜인 틀보다는 낭만을 즐기실 줄 알고, 정해진 것보다는 도전을 더 좋아하셨던 어머니셨지만 90세가 넘으시면서부터는 우리와 함께 나들이 가시는 것을 불편해하신다. 지금도 마음만은 펄펄 날아다니시고 싶으시겠지만, 당신 마음과 달리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까 자식들과 함께 나들이 나갔다가 짐이 될까 봐 아예 나가시는 것을 꺼리시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좀 더 건강하고 젊으셨을 때 잘해 드리지 못했던 것이 크게 후회된다. 자식은 참으로 부족하고 못났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동영상이나 천연색이 아니라 흑백 사진으로만 기록되어 있는 것은 왜일까? 그리고 어머니의 기억 속에 일곱 자식들은 어떤 색깔로 남아 있을까? 아마도 어머니의 추억 속에 있는 일곱 남매는 아무리 재생해도 끝나지 않는 영상으로 남아 있지 않을까 짐작된다.
조금이라도 어머니와 대화를 더 나누고 싶어서 매일 전화기를 든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 97세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고 카랑카랑한 어머니의 목소리와 웃음소리를 들으면 나도 덩달아 호탕하게 웃게 된다. 반갑고 고맙고 그리운 우리 엄마.